무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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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종로구
개요
- 대상
- 무계원
- 인증번호
- 2021-008
- 주소
- 종로구 창의문로5가길 2
- 선정연도
- 2021년
- 이력사항
-
- 1953년 개업
- 1972년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북한 부수상 박성철이 7.4 남북공동성명을 사전 논의한 장소로 유명
- 2023년 별채 공간의 확장 및 리뉴얼을 거쳐 재개관
- 보존필요성
-
- 서울시 등록음식점 1호로써 상징적인 의미가 큼.
- 오진암은 오래된 음식점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한옥 자체가 50~100년 전 지어진 전통 한옥 양식이라는 점에서 건축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공간.
- 오진암의 목조 자재가 무계원의 건립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무계원은 오진암을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설명
사진
주변현황
- 대중교통
(버스) -
- 부암동주민센터, 무계원(1020번, 7022번, 7212번)
- 도보시간: 2분 ~ 2분
- 대중교통
(지하철) -
- 경복궁역에서 버스 환승필요
- 도보시간: -분 ~ -분
- 위치
-
조사목록
| 분류 | 명칭 | 저작권자 | 출처 | 상세보기 | 참고자료 |
|---|
무계원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의 별장인 ‘무계정사(武溪精舍)’가 있었던 터로, 당대 문인들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곳이다. 무계정사지(武溪精舍址)는 안평대군이 꿈을 꾼 도원과 흡사해 안견에게 3일 만에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리게 하였고, 정자를 지어 글을 읊으며 활을 쏘았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공간이다. 무계원이란 건물명 역시 무계정사 터에 세워진 점을 감안해 붙여졌다고 한다.
무계원의 전신인 오진암은 마당에 오동나무가 있어 이름 붙여진 곳으로 조선 말기 내관 출신 화가 이병직이 살았던 집이다. 본채와 별채 등 내부 시설들은 50~100년 전 시기를 달리해 지어진 전통 한옥 양식으로, '소궁궐'로 불렸을 정도로 건축미를 자랑했다. 1953년 한정식집으로 개조돼 서울 음식점 1호로 등록되었고, 군사정권 시절 청와대가 운영하던 12개의 안가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자 오진암 등이 이를 대신하였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 측근이었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김두한 전 의원 등 정·관계 유명 인사들이 단골이었다고 한다. 또한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7·4 공동성명에 대해 논의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강남 등지로 인구가 이동하면서 영업이 쇠퇴하게 되었고, 결국 2010년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던 중 2010년 무계정사 공터를 공영주차장으로 이용할 계획을 세운 종로구는 오진암이 사라지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오진암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무계정사 터에 옮겨서 건축하고 복원을 진행하였다. 옛 오진암의 건물의 목조 자재들은 부암동 전통문화공간 ‘무계원(武溪園)’을 건립하는 데 사용되었다. 현재 오진암이 있던 곳에는 2013년 호텔이 들어섰다.
무계원의 기본 골조는 오진암에서 가져온 것으로, 대문을 비롯해 안채의 지붕 기와, 서까래, 기둥 등에 오진암을 이루고 있던 자재들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다. 무계원을 둘러싼 석축은 청진동을 재개발할 때 지하 4m 아래서 출토된 조선시대 시전행랑 등 건물지에서 출토된 오백년 이상 된 돌들로 쌓아 옛스러운 멋을 더하였다. 마당에는 오진암이 이전해 오기 전부터 있던 배롱나무를 그대로 살려 터와 한옥의 조화가 이뤄지도록 했다. 마당과 한 동선으로 이어지는 뒤뜰에는 아기자기한 멋을 살린 꽃밭이 있으며, 부레옥잠, 물배추가 가득한 작은 연못도 구경할 수 있다.
무계원 관리를 맡고 있는 종로문화재단은 무계원을 “풍광 속에서 한옥을 체험하며, 전통과 문화를 통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무계원의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는 세미나, 강연, 회의실 등으로 사용 가능하며, 안채 마루, 안마당과 뒷마당 등 부대시설에서는 다양한 전통문화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2023년 1월 무계원의 별채를 리뉴얼하여 재개관 하였으며, 기념으로 종로를 중심으로 활동한 시인인 윤동주, 이상, 백석 등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획전시를 개최하였다.
무계원을 통해 조선 후기 서울 옛 집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으며, 1960~70년대 인사동의 화려했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서울미래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