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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서울미래유산 동행매력투어 15회차 부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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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0 조회434 작성일2023-12-19 16:27:53.0

설명(자막)
2023 서울미래유산 동행매력투어 15회차 부암동
저는 오늘 서울미래유산 투어 진행을 맡은 안지영 해설사입니다. 반갑습니다. 미래유산은 두 개 정도가 지금 포함이 되어 있고 중간 중간에 일반적인 역사 문화 유산들이 포함된 구간을 걷게 되실 거고 지금 뒤쪽에 보시면 도로가 하나 있고 오른쪽에 윤동주 문학제라고 건물이 하나 보이시죠? 그리고 왼쪽으로 다 지금 집이 쭉 연결되어 있는 데가 보이실 겁니다. 여기 아래쪽에 종로구 일대가 쭉 펼쳐지게 되는데 아랫동네로 내려가면 누상동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여기 밑에 어딘가에서 예전에 윤동주가 하숙을 했습니다. 윤동주가 하숙을 하면서 그때 같이 지냈었던 하숙 친구 중에 또 ‘김송’이라고 소설가 분이 계세요. 그분하고 같이 학창 시절에 머리가 막 답답하고 복잡하면 여기가 산책하기 좋으니까 등산 겸 산책으로 올라와서 여기 뒤쪽을 걸으면서 산의 능선을 보면서 시상을 가다듬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윤동주라는 이름이 갑자기 여기서 나오니까 조금 생뚱 맞다고 느끼실 수 있는데 그럴 만하다고 지금부터 생각이 되시죠? 윤동주의 학창 시절에 몇 안 되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워낙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하고요.

여러분들 윤동주 사망 원인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왜 죽었는지 알고 계세요? 그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혀 가지고 의문의 주사를 계속 맞고 사망을 했다고 되어 있어요. 그 형무소에서 일종의 생체실험 같은 걸 했던 건데 그 전쟁터에서 다치면 피를 많이 흘리잖아요. 이 피를 수혈을 받아야 되는데 피를 공급받을 수가 없으니까 생리식염수를 가지고 소금물을 가지고 혈액을 대체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실험했던 거예요. 그래서 그거를 혈액 대신에 주입을 했을 때 사람이 살 수 있나 살 수 없는가를 계속 실험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그냥 그렇게 생으로 맞으면 안 돼요 사실은. 우리가 영양수액을 맞기는 하지만 그래서 여러 가지 버전의 소금물을 투입을 받았던 것 같아요. 이게 윤동주한테 가해진 실험이라고 추정되고요. 실제로 윤동주 말고 이 비슷한 실험을 여러 사람한테 했는데 우리가 ‘마루타’라고 들어보셨잖아요. 또 이런 게 있어요. 생리식염수는 깨끗한 식염수잖아요. 깨끗하게 만든 소금물인데 그게 또 환경에 따라서는 만들 수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바닷물을 퍼다가 쓸 수 있지 않을까?’ 그 실험도 합니다. 이거 맞은 분들은 다 죽었죠. 바닷물 되게 미생물이나 이런 게 굉장히 많잖아요. 실제 생 바닷물을 주입한 사람도 있고 하지만 이 윤동주 같은 경우에는 식염수 농도를 조절해서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투약을 받았던 식으로 이 주사 실험을 시작하고 나서 반년도 안 돼서 사망을 했죠. 윤동주가 사망한 게 1945년 2월 16일입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으로 지금 평가를 한다는 얘기죠. 문학적인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윤동주를 기억을 합니다.

저희 지금 창의문 앞에 서 있는데요. 한양도성, 서울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입니다. 조선이 세워질 때 이성계가 여기를 수도로 정하면서 여기다가 울타리를 가장 먼저 치는 작업을 합니다. 이거 무려 18.4km나 됩니다. 우리가 한양도성은 18.6km고 거기에 동서남북의 대문이 4개가 있었죠. 지금도 대문 4개 중 하나 빼고는 다 자리가 남아 있죠. 없어진 문 하나 서대문 없어졌죠. 돈의문, 돈의문은 지금 도로가 지나가는 자리라서 거기는 복구를 못하기로 했고요. 대문이 4개 있고 사이에 소문이 4개가 있었죠. 사문이라고 그러죠. 이거는 사소문 중의 하나입니다. 그 사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그때 만들어진 뼈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소문은 여기밖에 없어요. 창의문이라고는 잘 안 하고 이 동네가 창의문의 별칭으로 이 문을 더 많이 부릅니다 자하문이라 그러죠. 여기를 왜 자하문이라고 그럴까요? 불국사 가면은 불국사 올라가는 문에 자하문이라고 돼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여기가 옛날에는 여기에 산새가 있고 계곡이 흐르니까 얼마나 경치가 수려했겠어요. 그래서 이 동네 분들이 여기 경치가 꼭 저기 북한의 개성에 있는 자하동이라는 데가 있어요. 거기랑 경치가 비슷하다 명승지다. 그래서 개성의 자하동을 닮았다고 해서 자하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 자하동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이 문을 자하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이제 우리가 들어갈 데가 무계원인데 중요한 것은 이 무계원은 지금 복원된 집이고 원래의 무계원이 있었던 원래 자리는 여기 옆에 주차장 위에 있죠. 저쪽이에요. 그러니까 실제 무계정사가 있었던 자리에 한 건 아니에요. 여기가 원래 이 건물이 이 자리는 바로 위에가 무계정사지라고 해서 안평대군 이용이라는 사람의 별서정원이 있었던 자리예요. 안평대군 하면 대군이면 왕자잖아요. 세종의 세 번째 아들입니다. 이 사람은 나중에 역모로 몰려가지고 죽게 됩니다. 실제로 이 무계원이 안평대군이 살았던 집은 아니에요. 이 집은 원래 오진암이라고 하는 옛날의 그 우리나라 서울의 3대 요정으로 유명했던 곳입니다. 삼청각이랑 대원각이랑 오진암이 3대 요정이었어요.

마지막 요정으로 운영되던 곳이 여기 오진암인데 이 오진함이 문을 닫고 주인이 건물을 매각해요.그러니까 개인집이었기 때문에 그것도 매각을 하고 한옥은 다 팔았대요. 원래 구성하고 있었던 한옥의 목재는 다 팔았대요. 다 팔고 기와의 일부하고 서까래 목재, 대문짝만 오리지널을 갖고 온 거예요. 그래서 그거의 원형을 우리가 가지고 와서 여기다가 복구만 시켜놓은 건데 오진암이 원래 누구 집이냐면 이병직이라는 사람의 집이었어요. 잘 모르실 거예요. 이병직은 우리나라 마지막 내시, 내관이라고 해야 되는 대한제국 마지막 내관입니다. 그런데 이병직이라고 검색을 하시면 내관이라는 얘기는 제일 마지막에 나오고 이 사람은 서예가, 수집가라고 나와요. 실제 서예로 입선을 상당히 많이 했었던 사람이에요.

여기가 원래 무계정사지입니다. 철문 안쪽에. 예전엔 이 안을 볼 수 있었는데 (사유지라서 진입 불가) 사실 우리가 일제강점기에서 광복이 됐을 때 땅에 대한 어떤 소유권이 불분명하게 된 데도 좀 많이 있어가지고 문화재로 지정은 하지만 이것을 마음대로 공개해라 마라는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건 개인 사유지라서 안쪽에 못 들어가게 완전히 막아놨는데 실제 정확하게 무계정사의 자리를 찾는다면 여기서부터 아래쪽까지 이정도가 실제 무계정사가 있었던 자리로 추정됩니다.

여기 가보신 적 있으실까요? 석파정, 서울미술관이에요. 서울시의 미술관인데 여기를 들어가려면 유료 매표를 해요. 석파정만 보려고 해도 9000원을 내야 해요. 실제 그 별서 장성이 뒤쪽에 다 있어요. 뒤쪽에 있고 석파정 건물이 몇 채가 남아있는게 있어가지고 저쪽에 있고 미술관 본채 건물이 따로 있는 거예요. 지금은 미술관으로 운영이 되고 있는데 ‘석파’ 하면 누구 생각나지 않으세요? 흥선대원군. ‘석파’가 그분의 호 잖아요. 실제로 흥선대원군이 난을 엄청 잘 쳐가지고 그걸 석파란이라고 따로 분류해서 부르기도 해요. 그분이 난을 원체 잘 쳐가지고 아예 한 파트로 그렇게 따로 떼기도 합니다. 그때 대원군이 소유하고 있었던 석파정이라고 하는 그 집의 일체가 원래는 위치가 여기예요. 여기도 나중에 관리가 잘 안돼서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걸로 좀 쓰이다가 일부가 매각이 됐는데 그 매각된 집의 일부가 또 아래쪽의 석파방이라고 따로 있는 거고 석파정이랑 석파랑은 지금 각각 다른 곳에 있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뒤쪽에 계곡을 같이 끼고 있는 커다란 실제 흥선대원군이 난을 쳤다고 전해지는 집이 몇 채가 모여 있습니다.

여기 쪽으로 와주세요 여기가 석파랑입니다. 지나가면서 입구에서도 볼 건데 저 위에 언덕에 올라가 있는 게 원래 석파정 별당채입니다. 근데 여기 전체가 석파랑이에요 한정식집이에요. 그런데 이 집은 석파정의 일부고 지금 이 집 있잖아요. 이 집은 그 옥인동 가옥이라고 해가지고 순종의 생가 건물을 또 뜯어서 여기다 조합을 한 거예요 두 집이 조합되어 있어요. 그리고 여기 맞은편에 있는 그냥 일반 가옥도 하나 있는데 그건 그냥 일반인이 살던 집이에요. 거기가 송재형이라는 분이 살았던 집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여기는 전체를 묶어서 송재형 선생이라는 분이 여기다가 자기 집에다가 건물을 만들어 놓은 것이죠. 원래는 송재형 선생이 자기 딸한테 물려줬는데 그분이 다른 분한테 매각을 하셔가지고 그래서 한정식집으로 지금 운영이 되고 있어서 완전 사유지예요. 여기 하고 저기 다 연결해 가지고 다 이렇게 한정식집이에요. 여기를 저 건물을 따로 떼가지고 사실은 원래 석파랑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여기 전체를 합쳐서 석파랑이라고 하거든요. 석파가 그 집 앞에 바위가 있어서 산들이 다 바위산이예요. 그래서 석파예요.

여기 송재형 옛 가옥이라고 서울미래유산 표지석이 있습니다. 여기는 2014년에 미래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근데 여기도 바위가 똑같이 있어가지고 여기가 석파정 본체였다고 착각을 많이 하시는 거죠. 실제로 원래 위치는 서울미술관 위에 언덕인데 집만 하나 떼서 여기로 옮겨놨고 여기는 옥인동 가옥이고 이게 원래 거주했었던 집에 일부가 또 들어와 있어요. 이것도 옥인동 가옥의 일부를 같이 가지고 왔어요.

여기가 세검정이랑 탕춘대성 중간 지점이라 제가 설명을 마무리를 여기서 해볼게요. 여기서 여기를 타고 올라가면 세검정 터가 있습니다. 저기 지붕 보이세요? 저기가 탕춘대성 들어가는 문인 홍지문입니다. 지금 저기도 뭐 공사하고 있어요. 여기가 쭉 연결돼요. 그래서 이쪽으로 쭉 산 능선으로 도성이랑 연결되는 성벽 구간이 복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검정이라는 거 때문에 여기 칼 보이세요? 세검정이라 칼 모양이에요. 그리고 여기에 지금은 음악표시 같은 거 막 돼 있잖아요. 여기가 예술이 살아 있는 동네라고 조형물을 이렇게 설치한 겁니다. 원래 여기에서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서 가다 보면 진짜 유명한 별서지가 하나 더 있기는 해요. 백사실 계곡터에 있었던 백사실 별서라는 곳이 또 있어요. 거기는 좀 멀어서 저희가 안 갔는데 완전히 골짜기 안쪽에 들어가 있거든요. 거긴 지금 이렇게 주춧돌들 밖에 안 남아 있어요. 그 집의 원소유주가 누군지를 모르다가 여기가 누구의 별서터인지를 모르다가 2012년쯤에 자료들이 나와가지고 거기를 최종적으로 소유했던 집안이 김정희 집안이라는 게 나왔어요. 추사 김정희 집안의 별서였던 거예요. 그래서 계속 연결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김정희, 김정희의 제자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의 라인 따라서 서예가로 이름을 날렸던 소정 손재형 선생까지 쭉 우리나라의 서예사와 예술사를 볼 수 있는 라인으로 여기를 둘러봤다고 생각을 해 주시면 될 거 같고 저희는 오늘 미래유산이 있는 자리를 찾아오느라 한길 따라서 내려왔지만 실제로 구석구석의 탐방로와 등산로가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날씨 조금 더 좋을 때 좀 많이 걷는 구간으로 아예 등산코스를 도셔도 되고 조금 더 길게 걸어가는 코스로 보실 수 있을 만한 곳들도 많이 있을 거예요. 나중에 또 시간 내셔가지고 이 장소를 와보셨으면 좋겠고요. 오늘 소중한 토요일 오전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설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개요
구분
문화/체육 , 상점
지역
종로구
분야
시민생활
시기
2023-10-21
출처
2023년 미래유산 홍보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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