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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제안 미래유산

※ 2025년 7월 이후 신청 건은 미래유산 발굴 조사 및 선정 일정 상 차년도 검토대상임을 알려드립니다. 이 점 양해하여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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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조박집 본점 서울미래유산 제안
1. 역사성 1979년, 처음으로 외식업에 발을 들인 것을 시작으로, 1984년 원조 조박집을 창업한 이래, 2대로 경영을 승계하며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서울 마포의 돼지갈비 집입니다. 외식업 시작해인 1979를 중요시하고 기념하여 조박집의 로고와 각종 홍보에 사용하고 있으며, 창업자 부부의 성을 따 만든 조박집 이라는 이름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주도하고 가족경영의 정체성과 소박한 독창성을 표현합니다. 마포의 대표메뉴인 돼지갈비를 가지고 40여년간 꾸준히 사랑받아 온 노포로서, 마포돼지갈비를 말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갈 수 있는 매장으로 자리 잡은 조박집은, 현재는 2013년 법인화 되어 (주) 조박의 이름 내 원조 조박집 (본관) 외 별관과 신관의 3개 매장을 소유하게 되었고, 기억에 남을 브랜드화를 꿈꾸며 차근차근 역량을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2. 현 공간의 의미 소위 시간, 공간과 위치가 가지는 노포 라는 개념보다는 노포가 되어가는 현재적 우리를 브랜드화를 통해 굳건히 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중입니다. 그것은 3대에 걸쳐 찾아오는 마포의 단골집이라는 공간적 중요함을 지님과 동시에, 그 때의 그 공간이 변화하고 변모되어가는 모습을 통해, 세월속 변함없는 맛의 공간과, 현재에 맞게 발전해가는 공간으로서 서울의 시민(고객)에게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맛을 유지하는 당연함과 발전하는 매장의 유닉함을 동시에 지닌 공간으로의 의미를 지닙니다. 3. 철학/브랜딩 단순한 생계유지의 수단이었던 조박집이 시대와 세월을 지나 달라진건, 나와 내 가족의 먹고 살아감에서, 직원과 또 다른 삶의 먹고 사는 자리로 발전, 변화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생계수단으로서의 외식업장이 아닌, 우리를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꾸는 자를 육성하고 키워내겠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나아가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변화하기 위한 새로운 인재를 적극 도입해야만 지금의 조박집을 유지함은 물론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절실함에서 비롯됩니다. 원조 조박집은 이를 위한 리브랜딩을 진행중에 있으며, 25년말까지 전체적인 리브랜딩을 통해 기업 안팎으로의 개선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현 단계에서의 사업적 변화 및 진행사항으로는, -전 직원대상 KPI 제도 실시 (25. 8/1 부) -25년 말까지 온라인 사업부 확장 (상품군 개발, 온라인 사업부만의 채용) -25년 말까지 전 사업부문 리브랜딩 진행 -27년 1분기내 조박집 소매장 (마포 외 지역) 오픈 (마포 외 지역 첫번째 매장으로의 의미 + 조박집에서 육성한 직원이 갖는 첫 매장으로의 의미 + 이를 위한 지원책과 물류설비 완비의 의미) 등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4. 지역사회 연계성 조박집의 지역사회와의 연계정도에 관해 깊은지 어떤지에 대해 조박집 스스로 정확하게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단, 평가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점은, -마포돼지갈비 골목상권형성에 기여 (마포골목투어코스 포함) -방송, 언론등의 보도를 통한 브랜드적 인지도 -3대에 걸친 단골층을 통한 세대간 추억을 지닌 서울 마포의 문화적 가치 를 꼽을 수 있습니다 5. 콘텐츠 확장성 조박집은 최근 온라인 상품판매의 확대를 꾀하고 있습니다. (자사몰 조박몰 운영중) 이 사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광고마케팅은 필수이며, SNS콘텐츠를 운영하고, 이를 자사몰과 연계하여 매출을 상승시키는 중입니다. 조박집은 현재 간편식(RMR) 제품에 대해, 돼지갈비, 총각김치, 동치미, 식혜를 진행중에 있으며, 최근 대파김치를 한정시기 판매하고 있고, 25년 말까지 진행 계획인 리브랜딩을 통해, 식품 외 굿즈와 우리 브랜드를 통한 이벤트등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조박집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계를 잘 진척시키고, 이를 통해 외식업 브랜드로서의 문화적 역량을 지속적으로 테스트하고 발전시킬 생각입니다. 단순한 상품으로서의 콘텐츠로 머물기 보다는 삶을 함께 해 나아갈 수 있는 동반자로서의 콘텐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성과 공간성, 철학/브랜딩, 지역사회 가치, 콘텐츠 확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주)조박의 원조 조박집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제안합니다.
추천1 조회3 작성자문** 작성일2025-09-11
1958년에 개업한 서울 남대문에 위치한 화상 중식당 "홍복"을 서울미래유산 추천합니다
1. 역사와 배경 남대문시장 인근에 자리한 중식당 홍복(洪福)은 약 60년 넘게 3대째 이어져 온 전통 화상(華商) 중화요리 전문점입니다. 1950년대 말에 최초 부산에서 문을 연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70년대초 서울 퇴계로로 이전해왔으며 서울 도심을 대표하는 노포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홍복은 남대문을 오가던 상인들과 직장인, 그리고 근처 신세계백화점과 회현동 일대 주민들에게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온 공간입니다. 단순한 식당을 넘어, 서울 도심의 변화와 함께 호흡해온 생활문화의 기록자라 할 수 있습니다. 2. 공간적 가치 남대문시장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전통 상업의 중심지이고, 오늘날에도 서울의 대표적 시장 문화가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홍복은 바로 그 한복판에서 중화요리가 어떻게 한국인의 일상과 섞여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매장은 대규모 단체석과 소규모 테이블이 함께 배치되어 있으며, 창가에서는 시장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어, 서울 생활사와 도시 풍경을 함께 담아내는 장소적 가치가 큽니다. 3. 음식과 문화적 의미 홍복의 대표 메뉴인 유니짜장, 삼선짬뽕, 잡탕밥, 중국식냉면, 유림기 등은 전통 화상 요리법을 지켜온 메뉴로, 오늘날에도 중식 노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정통의 맛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니짜장은 한국 중화요리의 독자적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음식으로,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미각의 기억입니다. 이처럼 홍복은 단순히 맛집을 넘어, 서울시민의 미식 문화와 생활사를 잇는 살아 있는 유산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4. 추천 사유 서울미래유산은 시민이 기억하는 공간, 생활 속에서 이어지는 문화 자산을 보존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홍복은 60여 년 전통의 화상 그리고 3대째 이어져 내려온 노포로서 서울 도심의 역사와 생활문화를 증언하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공유된 맛의 기억을 간직하며, 급격한 도시 개발 속에서도 여전히 활발히 운영 중인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기에, 서울미래유산으로서 추천할 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인스타그램 @hongbok1958 에서 옛 홍복사진들을 볼수있습니다.
추천0 조회14 작성자l** 작성일2025-08-20
1958년에 개업한 서울 남대문에 위치한 화상 중식당 "홍복"을 서울미래유산 추천합니다
1. 역사와 배경 남대문시장 인근에 자리한 중식당 홍복(洪福)은 약 60년 넘게 3대째 이어져 온 전통 화상(華商) 중화요리 전문점입니다. 1950년대 말에 최초 부산에서 문을 연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70년대초 서울 퇴계로로 이전해왔으며 서울 도심을 대표하는 노포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홍복은 남대문을 오가던 상인들과 직장인, 그리고 근처 신세계백화점과 회현동 일대 주민들에게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온 공간입니다. 단순한 식당을 넘어, 서울 도심의 변화와 함께 호흡해온 생활문화의 기록자라 할 수 있습니다. 2. 공간적 가치 남대문시장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전통 상업의 중심지이고, 오늘날에도 서울의 대표적 시장 문화가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홍복은 바로 그 한복판에서 중화요리가 어떻게 한국인의 일상과 섞여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매장은 대규모 단체석과 소규모 테이블이 함께 배치되어 있으며, 창가에서는 시장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어, 서울 생활사와 도시 풍경을 함께 담아내는 장소적 가치가 큽니다. 3. 음식과 문화적 의미 홍복의 대표 메뉴인 유니짜장, 삼선짬뽕, 잡탕밥, 중국식냉면, 유림기 등은 전통 화상 요리법을 지켜온 메뉴로, 오늘날에도 중식 노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정통의 맛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니짜장은 한국 중화요리의 독자적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음식으로,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미각의 기억입니다. 이처럼 홍복은 단순히 맛집을 넘어, 서울시민의 미식 문화와 생활사를 잇는 살아 있는 유산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4. 추천 사유 서울미래유산은 시민이 기억하는 공간, 생활 속에서 이어지는 문화 자산을 보존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홍복은 60여 년 전통의 화상 그리고 3대째 이어져 내려온 노포로서 서울 도심의 역사와 생활문화를 증언하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공유된 맛의 기억을 간직하며, 급격한 도시 개발 속에서도 여전히 활발히 운영 중인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기에, 서울미래유산으로서 추천할 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인스타그램 @hongbok1958 에서 옛 홍복사진들을 볼수있습니다.
추천0 조회27 작성자l** 작성일2025-08-20
1958년에 개업한 서울 남대문에 위치한 화상 중식당 "홍복"을 서울미래유산 추천합니다
1. 역사와 배경 남대문시장 인근에 자리한 중식당 홍복(洪福)은 약 60년 넘게 3대째 이어져 온 전통 화상(華商) 중화요리 전문점입니다. 1950년대 말에 최초 부산에서 문을 연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70년대초 서울 퇴계로로 이전해왔으며 서울 도심을 대표하는 노포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홍복은 남대문을 오가던 상인들과 직장인, 그리고 근처 신세계백화점과 회현동 일대 주민들에게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온 공간입니다. 단순한 식당을 넘어, 서울 도심의 변화와 함께 호흡해온 생활문화의 기록자라 할 수 있습니다. 2. 공간적 가치 남대문시장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전통 상업의 중심지이고, 오늘날에도 서울의 대표적 시장 문화가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홍복은 바로 그 한복판에서 중화요리가 어떻게 한국인의 일상과 섞여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매장은 대규모 단체석과 소규모 테이블이 함께 배치되어 있으며, 창가에서는 시장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어, 서울 생활사와 도시 풍경을 함께 담아내는 장소적 가치가 큽니다. 3. 음식과 문화적 의미 홍복의 대표 메뉴인 유니짜장, 삼선짬뽕, 잡탕밥, 중국식냉면, 유림기 등은 전통 화상 요리법을 지켜온 메뉴로, 오늘날에도 중식 노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정통의 맛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니짜장은 한국 중화요리의 독자적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음식으로,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미각의 기억입니다. 이처럼 홍복은 단순히 맛집을 넘어, 서울시민의 미식 문화와 생활사를 잇는 살아 있는 유산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4. 추천 사유 서울미래유산은 시민이 기억하는 공간, 생활 속에서 이어지는 문화 자산을 보존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홍복은 60여 년 전통의 화상 그리고 3대째 이어져 내려온 노포로서 서울 도심의 역사와 생활문화를 증언하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공유된 맛의 기억을 간직하며, 급격한 도시 개발 속에서도 여전히 활발히 운영 중인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기에, 서울미래유산으로서 추천할 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인스타그램 @hongbok1958 에서 옛 홍복사진들을 볼수있습니다.
추천63 조회231 작성자l** 작성일2025-08-20
열 네살 소년의 기록, '호산 붓 박물관'
먹고살기 막막했던 시절, 글 한 자 배우고 싶어 무작정 인사동을 찾은 열네 살 소년이 있었습니다. 땟거리 녹록지 않아, 밥 한 끼와 몸 누일 곳을 겸해 찾은 필방에서 우연히 쥐어본 붓. 소일거리 삼아 우연히 손에 쥔 그 붓은 소년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60년이 흘렀습니다. 양동이를 이고 우물가에 물을 길어 나르던 잡곡상 거리엔 20층짜리 고층 빌딩이 들어섰고, 골목엔 파란 눈의 외국인들이 웃으며 지나갑니다. 시대는 변했고, 세상은 바쁘게 흘렀습니다. 어려웠던 시절엔 쟁이라 불렸고, 화려한 오늘엔 그 이름조차 잊혀져 가지만, 소년은 사랑했던 서예라는 예술을 붓이라는 전통으로 붙들며, 지금도 인사동 골목 어귀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은은한 묵향이 스며든 그 공간은 붓을 사랑했고, 전통을 지키고자 했던 한 장인의 애환과 삶이 머무는 자리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빠르게 흘러도, 이어지고 지켜져야 될 가치가 있습니다. 호산 붓박물관은 단순한 장인의 작업장이 아닙니다. 이곳은 수천 년을 이어온 동양의 미학이 한 사람의 손끝을 통해 모이고 재구성된, 살아 있는 문화의 집입니다. 붓과 먹, 종이와 벼루로 이루어진 문방사우는 한중일 삼국의 정신과 전통을 담는 상징이며, 그 자체로도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박물관에는 호산 김진태 장인이 60여 년 동안 한중일의 붓 제작 기법을 배우고 익히며 직접 제작한 붓과 수집한 귀중한 유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의 붓은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붓끝의 감촉, 먹의 번짐, 종이에 스며드는 결까지 세심하게 조율된 수백여 종의 붓과 문방사우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고, 관람객은 그 붓들을 실제로 써보며 각기 다른 예술적 감각을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호산 붓박물관은 서예라는 동양의 전통 예술 문화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한 장인의 평생과, 그가 모아온 수많은 예술 도구와 유산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 서울이 함께 지키고 기억해야할 문화의 기록입니다.
추천179 조회1022 작성자공** 작성일2025-06-03
독립운동가 성암 손창원 선생 묘역 인창의숙 터 미래유산지정 제안
성암 손창원 선생(1860-1926)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동안 민족의 독립과 교육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 헌신한 인물로, 그 일대기는 민족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습니다. 성암은 서울 종로구에서 가난한 양반 가문의 차남으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집안을 지탱하는 소년 가장이 되었습니다. 학업 대신 저잣거리에서 상인으로 활동하며 일찍부터 상업 감각과 성실함을 발휘한 그는, 결국 종로 육의전에서 포목전의 도원이라는 중요한 상인 조직의 구성원으로 입지를 넓히게 됩니다. 성암은 러일전쟁을 계기로 거상으로 자리 잡으며, 특히 군수 물자를 공급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그의 상업적 성공은 미곡, 토지, 소가죽 거래와 같은 다양한 사업 확장을 통해 이루어졌고, 그는 조선의 주요 대지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암은 자신이 얻은 부를 개인적인 사치나 향락에 사용하지 않고, 민족과 사회를 위해 환원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민족의 미래가 교육에 달려 있다고 믿었기에, 자선과 교육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1922년, 그는 형 인원의 이름 '인(仁)'과 자신의 이름 '창(昌)'을 따서 '인창의숙'을 설립했습니다. 이 학교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월사금을 받지 않고 학생들을 지원하는 등 헌신적인 교육가로서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교육을 통해 민족의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했고, 이를 통해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며 민족의 희망을 키우고자 했습니다. 같은 처지에서 재물을 모은 다른 이들이 더 큰 부를 추구할 때, 성암 손창원은 그와 반대로 사회의 하층민과 소외계층, 저학력 어린이들을 위한 사회사업가이자 교육가로 변신했습니다. 그의 자선활동은 여러 방면에서 두드러졌으며,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인창의숙을 재단법인화하며 30만 원(현대 가치로 약 300억 원)을 투자한 것입니다. 또한, 1924년에는 아내의 유언에 따라 20만 원(현대 가치로 약 200억 원)을 공공사업에 기부하며, 자신의 부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성암은 단순한 자선가를 넘어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애국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3.1운동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했으며, 흥업구락부에 참여하여 민족 지도자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추진했습니다. 성암 손창원 선생의 일대기는 그가 가난한 가정에서 시작했지만, 자신의 노력과 성실함으로 큰 부를 이루고, 그 부를 민족의 미래를 위해 바친 헌신적인 삶이었습니다. 성암의 생애와 업적은 오늘날에도 민족과 국가를 위한 헌신의 본보기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민족적 아픔 속에서도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의 미래를 위해 헌신한 한 인간의 고귀한 정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추천53 조회190 작성자나** 작성일2025-04-23
"충무로 영화의 거리" 서울미래유산 등록 제안합니다.
충무로 영화의 거리 서울 미래 유산으로 등록해 주세요 서울 중구 충무로 일대에 위치한 대한민국 영화 산업의 중심지로서, 충무로역(대한극장1958, 스카라극장1930, 명보극장1957, 국도극장1913)과 종로3가역(서울극장1978, 피카디리1959, 단성사1907)까지 영화 제작인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추억의 거리입니다. 1. 한국 영화의 중심지 충무로는 1960~1980년대 한국 영화산업을 이끌었던 곳으로, 충무로 영화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중요한 의미. 과거의 영화 제작사, 편집실, 촬영 장비 업체 등이 밀집했던 역사적 흔적. 2. 문화적 가치 영화인 핸드프린팅, 영화 조형물, 영화 관련 행사 등이 지속적으로 열리며 역사적 가치를 보존. 영화의 거리로 조성되어 한국 영화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장소로 활용. 3. 관광 및 상징성 충무로는 한국 영화의 심장부 역할을 했고, 지금도 영화 애호가들에게 성지 같은 곳. 영화 관련 기념물이 많아 관광 명소로도 발전 가능성. 4. 보존 필요성 강남으로 영화산업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충무로의 영화적 기능이 약해졌지만, 그 역사적 흔적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다면, 보존과 홍보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음. 충무로 영화의 거리는 한국의 할리우드이며, 대한민국 영화 메카의 상징인 곳입니다. 극장은 대부분 사라져 가고 있지만, 영화인들의 혼은 영원 할 것 입니다. 가칭어게인충무로조직위원회에서는 대한민국 영화 추억의 거리를 복원하고 보존 하는 일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추천42 조회140 작성자이** 작성일202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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