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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제안 미래유산

※ 2025년 7월 이후 신청 건은 미래유산 발굴 조사 및 선정 일정 상 차년도 검토대상임을 알려드립니다. 이 점 양해하여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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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네살 소년의 기록, '호산 붓 박물관'
먹고살기 막막했던 시절, 글 한 자 배우고 싶어 무작정 인사동을 찾은 열네 살 소년이 있었습니다. 땟거리 녹록지 않아, 밥 한 끼와 몸 누일 곳을 겸해 찾은 필방에서 우연히 쥐어본 붓. 소일거리 삼아 우연히 손에 쥔 그 붓은 소년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60년이 흘렀습니다. 양동이를 이고 우물가에 물을 길어 나르던 잡곡상 거리엔 20층짜리 고층 빌딩이 들어섰고, 골목엔 파란 눈의 외국인들이 웃으며 지나갑니다. 시대는 변했고, 세상은 바쁘게 흘렀습니다. 어려웠던 시절엔 쟁이라 불렸고, 화려한 오늘엔 그 이름조차 잊혀져 가지만, 소년은 사랑했던 서예라는 예술을 붓이라는 전통으로 붙들며, 지금도 인사동 골목 어귀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은은한 묵향이 스며든 그 공간은 붓을 사랑했고, 전통을 지키고자 했던 한 장인의 애환과 삶이 머무는 자리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빠르게 흘러도, 이어지고 지켜져야 될 가치가 있습니다. 호산 붓박물관은 단순한 장인의 작업장이 아닙니다. 이곳은 수천 년을 이어온 동양의 미학이 한 사람의 손끝을 통해 모이고 재구성된, 살아 있는 문화의 집입니다. 붓과 먹, 종이와 벼루로 이루어진 문방사우는 한중일 삼국의 정신과 전통을 담는 상징이며, 그 자체로도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박물관에는 호산 김진태 장인이 60여 년 동안 한중일의 붓 제작 기법을 배우고 익히며 직접 제작한 붓과 수집한 귀중한 유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의 붓은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붓끝의 감촉, 먹의 번짐, 종이에 스며드는 결까지 세심하게 조율된 수백여 종의 붓과 문방사우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고, 관람객은 그 붓들을 실제로 써보며 각기 다른 예술적 감각을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호산 붓박물관은 서예라는 동양의 전통 예술 문화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한 장인의 평생과, 그가 모아온 수많은 예술 도구와 유산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 서울이 함께 지키고 기억해야할 문화의 기록입니다.
추천179 조회911 작성자공** 작성일2025-06-03
독립운동가 성암 손창원 선생 묘역 인창의숙 터 미래유산지정 제안
성암 손창원 선생(1860-1926)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동안 민족의 독립과 교육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 헌신한 인물로, 그 일대기는 민족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습니다. 성암은 서울 종로구에서 가난한 양반 가문의 차남으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집안을 지탱하는 소년 가장이 되었습니다. 학업 대신 저잣거리에서 상인으로 활동하며 일찍부터 상업 감각과 성실함을 발휘한 그는, 결국 종로 육의전에서 포목전의 도원이라는 중요한 상인 조직의 구성원으로 입지를 넓히게 됩니다. 성암은 러일전쟁을 계기로 거상으로 자리 잡으며, 특히 군수 물자를 공급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그의 상업적 성공은 미곡, 토지, 소가죽 거래와 같은 다양한 사업 확장을 통해 이루어졌고, 그는 조선의 주요 대지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암은 자신이 얻은 부를 개인적인 사치나 향락에 사용하지 않고, 민족과 사회를 위해 환원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민족의 미래가 교육에 달려 있다고 믿었기에, 자선과 교육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1922년, 그는 형 인원의 이름 '인(仁)'과 자신의 이름 '창(昌)'을 따서 '인창의숙'을 설립했습니다. 이 학교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월사금을 받지 않고 학생들을 지원하는 등 헌신적인 교육가로서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교육을 통해 민족의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했고, 이를 통해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며 민족의 희망을 키우고자 했습니다. 같은 처지에서 재물을 모은 다른 이들이 더 큰 부를 추구할 때, 성암 손창원은 그와 반대로 사회의 하층민과 소외계층, 저학력 어린이들을 위한 사회사업가이자 교육가로 변신했습니다. 그의 자선활동은 여러 방면에서 두드러졌으며,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인창의숙을 재단법인화하며 30만 원(현대 가치로 약 300억 원)을 투자한 것입니다. 또한, 1924년에는 아내의 유언에 따라 20만 원(현대 가치로 약 200억 원)을 공공사업에 기부하며, 자신의 부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성암은 단순한 자선가를 넘어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애국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3.1운동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했으며, 흥업구락부에 참여하여 민족 지도자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추진했습니다. 성암 손창원 선생의 일대기는 그가 가난한 가정에서 시작했지만, 자신의 노력과 성실함으로 큰 부를 이루고, 그 부를 민족의 미래를 위해 바친 헌신적인 삶이었습니다. 성암의 생애와 업적은 오늘날에도 민족과 국가를 위한 헌신의 본보기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민족적 아픔 속에서도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의 미래를 위해 헌신한 한 인간의 고귀한 정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추천53 조회164 작성자나** 작성일2025-04-23
"충무로 영화의 거리" 서울미래유산 등록 제안합니다.
충무로 영화의 거리 서울 미래 유산으로 등록해 주세요 서울 중구 충무로 일대에 위치한 대한민국 영화 산업의 중심지로서, 충무로역(대한극장1958, 스카라극장1930, 명보극장1957, 국도극장1913)과 종로3가역(서울극장1978, 피카디리1959, 단성사1907)까지 영화 제작인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추억의 거리입니다. 1. 한국 영화의 중심지 충무로는 1960~1980년대 한국 영화산업을 이끌었던 곳으로, 충무로 영화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중요한 의미. 과거의 영화 제작사, 편집실, 촬영 장비 업체 등이 밀집했던 역사적 흔적. 2. 문화적 가치 영화인 핸드프린팅, 영화 조형물, 영화 관련 행사 등이 지속적으로 열리며 역사적 가치를 보존. 영화의 거리로 조성되어 한국 영화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장소로 활용. 3. 관광 및 상징성 충무로는 한국 영화의 심장부 역할을 했고, 지금도 영화 애호가들에게 성지 같은 곳. 영화 관련 기념물이 많아 관광 명소로도 발전 가능성. 4. 보존 필요성 강남으로 영화산업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충무로의 영화적 기능이 약해졌지만, 그 역사적 흔적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다면, 보존과 홍보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음. 충무로 영화의 거리는 한국의 할리우드이며, 대한민국 영화 메카의 상징인 곳입니다. 극장은 대부분 사라져 가고 있지만, 영화인들의 혼은 영원 할 것 입니다. 가칭어게인충무로조직위원회에서는 대한민국 영화 추억의 거리를 복원하고 보존 하는 일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추천42 조회125 작성자이** 작성일2025-03-16
47년 전통 신안촌 본점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제안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신안촌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12길 8에 위치한 식당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로 미래유산에 등재될 가치가 있습니다. 1. 전통 한식의 명맥을 잇는 곳: 신안촌은 1977년 개업하여 4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전통 한식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특히, 낙지 요리와 홍어삼합 등 남도 음식을 전문으로 하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 문화적 가치: 신안촌은 한국의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옥 건물과 전통적인 인테리어는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며,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하여 지역 주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3. 지역사회와의 상생: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4. 역사적 가치: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곳으로, 서울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 왔습니다.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며,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소중한 유산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안촌은 미래유산에 등재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 적극 검토 부탁 드리겠습니다.
추천5 조회57 작성자허** 작성일2024-08-28
47년 전통 신안촌 본점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제안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신안촌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12길 8에 위치한 식당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로 미래유산에 등재될 가치가 있습니다. 1. 전통 한식의 명맥을 잇는 곳: 신안촌은 1977년 개업하여 4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전통 한식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특히, 낙지 요리와 홍어삼합 등 남도 음식을 전문으로 하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 문화적 가치: 신안촌은 한국의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옥 건물과 전통적인 인테리어는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며,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하여 지역 주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3. 지역사회와의 상생: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4. 역사적 가치: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곳으로, 서울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 왔습니다.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며,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소중한 유산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안촌은 미래유산에 등재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 적극 검토 부탁 드리겠습니다.
추천4 조회39 작성자허** 작성일202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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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동교동 사저의 서울미래유산 등록을 신청합니다.
1.취지 대한민국 제15대 김대중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가 대통령 자녀의 개인적인 이유로 민간 사업가가 포함된 3인에게 매각되어 유품 중 일부만 보존되는 사저의 카페 개조 등의 상업적인 이용이 크게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문화 발전, 남북관계 개선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행동하는 양심의 민주주의 사상은 많은 사람에게 지금도 본보기를 보입니다. 동교동 사저는 김대중 대통령이 독재 권력의 탄압 속에서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하여 싸웠던 장소이며 동교동계라는 정치 용어의 기원지로 정치적 여정과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인 상징입니다. 동교동 사저는 현대사의 정치적 결정과 소통의 공간이었으며 이에 민주화의 또 다른 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교동 사서는 현세대와 후세대에 민주주의의 가치와 중요성을 교육할 수 있는 장소이며 단순한 주거지를 넘어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국민의 소통을 위하여 지켜져야 할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동교동 사저는 국내 유일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세계적인 민주주의 지도자로 김대중 대통령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많은 국민과 세계인들에게 중요한 장소로 인간 김대중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공간이 됩니다. 김대중 대통령 동교동 사저는 그동안 상속세 체납으로 인해 방치되어 있었으며, 2022년 서울시가 매입하자는 제안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근저당이 설정돼있어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라며 거절한 바 있었으나, 이미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김영삼 전임 대통령 사옥들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지정 문화유산으로 보존되는 선례가 있습니다. 이에 민주주의의 뿌리를 이룬 김대중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 정신을 상징하는 동교동 사옥도 김영삼 대통령 상도옥 사저와 같이 서울미래유산으로 등재하여 보존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겠습니다. 또한, 선례와 다르게 상업적으로 이용되어 본래의 가치를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공감대가 서울시민과 국민의 소통으로 생기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헌법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뿌리를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헌법 제1조 제2항에 따라 주권자인 국민의 의지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보존가치가 있는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동교동 사저에 대한 국가지정 문화유산 등재를 청원합니다. 2. 이유 및 내용 김대중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전 의원은 7월 2일 동교동 사저 매각에 대해 최근 한 언론에 과거에 밝힌 것처럼 상속세 문제 때문에 작년에 매각을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으며, 어디까지나 사적인 일이고 아직 최종정리가 안 된 상황이라 현시점에서는 해드릴 얘기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매입자들이) 일단 두 분 어르신(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들께서 쓰시던 공간은 일부 보전하여 유품을 전시해주기로 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국민은 김대중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에 대한 상업적 이용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후광 김대중 대통령(1924-2009)은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업적을 남겼으며, 정치인으로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민주화 운동의 선두주자로 활동하였으며 독재 정권에 의한 사형선고와 살해위협, 55차례의 가택연금 등 탄압에 맞서 싸우며, 인권 보호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투쟁을 이끌었습니다. 정치가 김대중은 독재로 억압된 대한민국의 정치를 목숨을 건 신념으로 행동하는 양심과 정권 소유욕 비양심과의 방향성 선택 문제인 민주주의로 발전시키면서 1997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경제 위기 속에서 국가를 안정시키고 민주적 국가경영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하여 '햇볕 정책'을 추진하여 남북 간의 첫 정상회담 등으로 소통의 물꼬를 트고 대화와 협력을 촉진하며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증진하여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 화해와 평화 증진을 위한 노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외교적 성과와 함께 세계적인 민주주의 지도자이며 사상 실천자로 인정받게 만든 중요한 사건입니다. 국민의 정부는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외환위기 이후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종료하고 이후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을 강화하였으며, 여성 인권을 위하여 여성가족부를 창설하였고, 현재 수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복지 정책을 확대하여 만들었고 노동자와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을 제정하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인터넷을 보급하여 정보통신기술을 발전시키고 IT산업을 육성하여 정보화 사회를 구축하는데 이바지하였으며 국민의 지혜로운 소통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며 K-문화 세계화 한류 시대의 문을 열었습니다. 영부인 이희호 여사도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화 운동 동지로서 여성 인권 발전과 한반도 평화와 통일 운동, 문화 및 교육 사업과 자선활동에서의 업적으로 한국 사회 발전과 권리 증진에 기여하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동교동 사저에 관하여 2019년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동교동 사저는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사용한다. 만약 지자체 및 후원자가 매입해 기념관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보상금의 3분의 1은 김대중기념사업회에 기부하며, 나머지 3분의 2는 김홍일홍업홍걸에게 균등하게 나눈다는 유언을 남기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동교동 사저에 대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키도록 서울미래유산 지정을 국민의 뜻으로 청원합니다.
추천6 조회97 작성자유** 작성일202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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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동교동 사저의 서울미래유산 등록을 희망합니다.
1. 취지 대한민국 제15대 김대중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가 대통령 자녀의 개인적인 이유로 민간 사업가가 포함된 3인에게 매각되어 유품 중 일부만 보존되는 사저의 카페 개조 등의 상업적인 이용이 크게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문화 발전, 남북관계 개선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행동하는 양심의 민주주의 사상은 많은 사람에게 지금도 본보기를 보입니다. 동교동 사저는 김대중 대통령이 독재 권력의 탄압 속에서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하여 싸웠던 장소이며 동교동계라는 정치 용어의 기원지로 정치적 여정과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인 상징입니다. 동교동 사저는 현대사의 정치적 결정과 소통의 공간이었으며 이에 민주화의 또 다른 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교동 사서는 현세대와 후세대에 민주주의의 가치와 중요성을 교육할 수 있는 장소이며 단순한 주거지를 넘어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국민의 소통을 위하여 지켜져야 할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동교동 사저는 국내 유일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세계적인 민주주의 지도자로 김대중 대통령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많은 국민과 세계인들에게 중요한 장소로 인간 김대중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공간이 됩니다. 김대중 대통령 동교동 사저는 그동안 상속세 체납으로 인해 방치되어 있었으며, 2022년 서울시가 매입하자는 제안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근저당이 설정돼있어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라며 거절한 바 있었으나, 이미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김영삼 전임 대통령 사옥들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지정 문화유산으로 보존되는 선례가 있습니다. 이에 민주주의의 뿌리를 이룬 김대중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 정신을 상징하는 동교동 사옥도 김영삼 대통령 상도동 사저와 같이 서울미래유산으로 등재하여 보존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겠습니다. 또한, 선례와 다르게 상업적으로 이용되어 본래의 가치를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공감대가 서울시민과 국민의 소통으로 생기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헌법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뿌리를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헌법 제1조 제2항에 따라 주권자인 국민의 의지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보존가치가 있는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동교동 사저에 대한 서울미래유산 등록을 청원합니다. 2. 이유 및 내용 김대중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전 의원은 7월 2일 동교동 사저 매각에 대해 최근 한 언론에 과거에 밝힌 것처럼 상속세 문제 때문에 작년에 매각을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으며, 어디까지나 사적인 일이고 아직 최종정리가 안 된 상황이라 현시점에서는 해드릴 얘기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매입자들이) 일단 두 분 어르신(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들께서 쓰시던 공간은 일부 보전하여 유품을 전시해주기로 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국민은 김대중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에 대한 상업적 이용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후광 김대중 대통령(1924-2009)은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업적을 남겼으며, 정치인으로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민주화 운동의 선두주자로 활동하였으며 독재 정권에 의한 사형선고와 살해위협, 55차례의 가택연금 등 탄압에 맞서 싸우며, 인권 보호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투쟁을 이끌었습니다. 정치가 김대중은 독재로 억압된 대한민국의 정치를 목숨을 건 신념으로 행동하는 양심과 정권 소유욕 비양심과의 방향성 선택 문제인 민주주의로 발전시키면서 1997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경제 위기 속에서 국가를 안정시키고 민주적 국가경영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하여 '햇볕 정책'을 추진하여 남북 간의 첫 정상회담 등으로 소통의 물꼬를 트고 대화와 협력을 촉진하며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증진하여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 화해와 평화 증진을 위한 노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외교적 성과와 함께 세계적인 민주주의 지도자이며 사상 실천자로 인정받게 만든 중요한 사건입니다. 국민의 정부는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외환위기 이후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종료하고 이후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을 강화하였으며, 여성 인권을 위하여 여성가족부를 창설하였고, 현재 수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복지 정책을 확대하여 만들었고 노동자와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을 제정하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인터넷을 보급하여 정보통신기술을 발전시키고 IT산업을 육성하여 정보화 사회를 구축하는데 이바지하였으며 국민의 지혜로운 소통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며 K-문화 세계화 한류 시대의 문을 열었습니다. 영부인 이희호 여사도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화 운동 동지로서 여성 인권 발전과 한반도 평화와 통일 운동, 문화 및 교육 사업과 자선활동에서의 업적으로 한국 사회 발전과 권리 증진에 기여하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동교동 사저에 관하여 2019년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동교동 사저는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사용한다. 만약 지자체 및 후원자가 매입해 기념관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보상금의 3분의 1은 김대중기념사업회에 기부하며, 나머지 3분의 2는 김홍일홍업홍걸에게 균등하게 나눈다는 유언을 남기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동교동 사저에 대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키도록 문화유산 국가지정을 국민의 뜻으로 청원합니다.
추천2 조회90 작성자유** 작성일202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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