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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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용산구

개요
- 대상
- 서울역광장
- 인증번호
- 2013-143
- 주소
- 용산구 한강대로 405
- 선정연도
- 2013년
- 건립시기
- 1900년
- 건립용도
- 광장
- 이력사항
-
- 1900년 서울역의 전신인 경성역이 만들어졌고, 서울역광장도 같은 시기 만들어졌다.
- 1919년 09월 강우규 열사가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 투척
- 1925년 서울역(구 서울역사) 신축(설계자: 쓰카모토 야스시, 도쿄 대학 교수)
-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서울역 앞 광장이 폐허가 됨
- 1960년 01월 귀경길 서울역 압사 사건 발생
- 1969년 서울역 광장 확장
- 1980년 05월 서울역 회군
- 1981년 09월 서울역사(구 서울역사)가 사적으로 지정됨(사적 284호)
- 1987년 06월 국민평화대행진 시위 전개
- 1993년 12월 쌀 개방 반대 3만여명 시위
- 1994년 12월 ‘12.12 군사반란자 기소를 위해 군사반란재판회부와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이행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궐기 대회’ 개최
- 2003년 12월 KTX 서울역 신축
- 보존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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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토총독저격사건, 서울역 회군, 6.26 국민평화대행진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된 장소
- '민족 대이동’이라 표현되는 귀성·귀경길의 중심지로 서울시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장소로 보존 필요성이 있음
설명
사진
주변현황
- 대중교통
(버스) -
- 정류소명: 서울역 버스환승센터(02―003, 02―005)
- 버스번호: 1711번, 7016번, 7024번 외 다수
- 도보시간: 1분 ~ 2분
- 대중교통
(지하철) -
- 서울역(1호선, 4호선)
- 도보시간: 1분 ~ 2분
- 위치
-
조사목록
분류 | 명칭 | 저작권자 | 출처 | 상세보기 | 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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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7월 8일 경부선의 경성역으로 영업을 개시하면서 지금의 서울역이 만들어졌다. 서울역광장은 서울역이 만들어진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으므로 1900년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1919년 9월 강우규 열사가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에게 영국제 폭탄을 투척했다. 거사는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일본군에게 암살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준 사건이다. 이후 열사는 체포되어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 당했으며 광장에는 강우규 열사의 동상이 있다.
1960년 1월 26일, 목포행 완행열차를 타려던 승객들이 서울역 계단에서 집단으로 넘어져 31명이 압사하고 38명이 중경상을 입은 ‘서울역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1969년에 옛 세브란스병원 쪽을 확장하여 서울역광장을 확장했다. 1980년 계엄령 하에 있던 5월 15일, 서울역 지상 광장에 10만여 명의 대학생 및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여 계엄령 해제와 민주화 추진을 주장했다. 이후 요구사항이 전달된 데다 농성이 계속되면 군이 개입할 명분을 준다는 주장하에 해산되었다. 그러나 5월 17일 24시에 신군부는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를 단행해 버렸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이다.
1987년 6월 26일, 민주헌법 직선제 쟁취를 촉구하는 ‘국민평화대행진’이 서울역 광장을 포함해 전국의 34개 도시와 4개 군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대규모의 시민참여와 지속적인 시위로 인해 결국 정부는 6.29 선언을 발표했다. 1993년 12월에는 쌀 개방을 반대하는 시위와 1994년에는 ‘12.12 군사반란자 기소를 위해 군사반란재판회부와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이행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궐기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시기에는 서울역광장에 임시선별진료소가 설치되어 2023년 6월까지 운영되었다. 또한 제3차 국가철도망계획에 따라 서울역에 5개 신규노선이 계획되었으며, 그 중 GTX A의 공사의 진행을 위해 서울역광장이 사용되고 있어, 기존의 서울역광장의 공간이 대폭 축소되었다.
서울역광장은 한국철도공사 소유로서 1년에 2회 정도 점검이 이루어지며 집회나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