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기소개를 간략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울 정릉 발도르프 학교(박경리 가옥)에 2016년에 담임교사로 와서 그때 1학년 아이들을 맞이했고요, 그 아이들이 저랑 7년째 같이 공부하고 있어요. 그래서 7학년 담임교사가 된 강유은이라고 합니다.
(2) 박경리 선생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이 거의 홀어머니 밑에서 사셨고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셨는데, 남편분도 6.25 전쟁 때 돌아가셨다고 전해 들었고요. 그리고 아드님도 사망을 하게 되시면서 이제 따님만 같이 두 분과 함께, 따님이랑 박경리 선생님이랑 함께 사시게 되셨다고 해요.
원래는 돈암동 셋방에서 살고 계셨는데 워낙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시고 문학에 소질이 있으셔서 시를 많이 쓰셨는데, 친구가 김동리 선생님한테 박경리 선생님이 쓰신 글을 전해주면서 김동리 선생님이 그것을 현대문학에 추천해주시고 그러면서 문학에 자연스럽게 등단을 하시게 되셨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이 집은 1963년에 지어진 집인데요, 1965년부터 이곳에서 사셨고 김지하 시인이 석방된 이후 1979년까지 사셨다고 들었습니다.
(3) 박경리 가옥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자료를 많이 찾다 보니까 바깥에 보시면은 돌담장이 있거든요? 그것도 박경리 선생님이 하나하나 손수 쌓으셨다고 그래요. 나무도 심고 뭐 그러셨다고 하는데, 1979년에 토지를 지으셨으니까 여기서 토지 5부 중에 1부, 2부, 3부가 지어진 셈이잖아요? 저희가 처음 들어왔을 때 천장이 무너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천장 공사를 해야 했는데, 천장에 있는 도배지를 뜯어보니까 거기에 토지 70년대 표지가 도배로 발라져 있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바르셨을까? 이런 얘기도 학부모님들이랑 했던 기억이 납니다.
(4) 현재 박경리 가옥과 발도르프 학교와의 인연은 어떻게 되는지?
원래 2013년에 서울 정릉 발도르프 학교가 정릉 4동 주민센터 뒤에 개교했어요. 그런데 원래 운영하시던 분이 운영을 안 하시게 되고 남은 사람들이 같이 학교를 꾸려보자 하면서 이 터전으로 오게 되었어요. (발도르프)학교 교육과정 특성상 자연환경이 같이 있어야 되요. 그리고 아이들이 좀 뛰어놀 수 있는 곳, 아이들이 시끄러워도 주변 분들이 이해해줄 수 있는 곳들을 찾았어요. 근데 마침 박경리 가옥이 월세로 나와 있었고 이 주변에 바로 정릉천이 있고 주택가가 많이 없어요. 그래서 이곳에 와서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5) 발도르프 학교가 들어왔을 때(2017) 박경리 가옥은 어떤 상태였나요?
굉장히 낙후되었고 방치되어있는 집이었어요. 들어오자마자 풀이 너무 무성해서 발디디기가 힘든 지경이었고요. 그리고 천장도 많이 무너져 내려앉고 있었고 박경리 선생님이 사셨을 때의 공간과는 조금 다르게 수리가 조금 많이 되어 있는 상태였던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곳곳을 저희가 굉장히 많이 수리했어요. 이 공간은 원래 없었던 공간인데 나중에 학생 수가 많아지면서 추가로 만든 창고 공간이고요. 아무래도 중간중간 수리를 계속하셨던 것 같아요. 중간에 세입자들이 조금씩 방을 늘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안을 보면 굉장히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어요.
(6) 현재 박경리 가옥의 구조는?
지금 방이 5개에요 총. 들어오자마자 현관 옆에 있는 곳은 교무실로 쓰고 있고요. 또 다른 교실은 방과후 교실로 쓰고 있어요. 그리고 안쪽에 창고가 있는데 거기 아늑한 곳은 보물방이라고 해서 아이들이랑 사용하는 물건 넣어놓고 있고요. 그리고 지금 이 공간이 1학년과 2학년이 함께 쓰는 1, 2학년 반, 이 뒤에 있는 반이 3, 4학년 반 이렇게 운영되고 있어요.
야외에는 테라스처럼 만들어져 있는 곳이 있었는데, 사진을 찾다 보니까 그런 게 나왔었어요. 이 사진인데요. 이 사진이 여기 뒤에 집처럼 만들어져 있는 곳 뒤에 거든요? 이 집은 아이들이 지은 거에요. 저희 교육과정에 3학년 때 집을 지어야 되는 교육과정이 있어서 아이들이랑 부모님들이랑 집을 지은 게 여기 3개가 있거든요, 요기 뒤에, 이 아래 원래 물이 흐르고 있었고 이런 공간이 있었어요. 그리고 여기로 그때는 올라가셨을 것 같아요. 계단이 있었을 것 같아요. 여기 얕은 산인데 또 다른 길로 이어지진 않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왔을 때는 그냥 묻혀 있었고 아이들이 계속 산에 올라가면서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발굴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전망도 보고 그렇게 되었어요.
(7) 현재 박경리 가옥의 환경이 학교교육과는 어떤 시너지(synergy)를 내고 있나요?
1학년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오는거죠. 그런데 4학년 교육과정 중에 ‘마을학’이라고 있어요. 4학년 때 마을학, 5학년 때는 서울까지 배우고, 6학년 때 한국지리 점점 내가 있는 곳으로부터 넓어지는 교육을 해요. 근데 이제 저희 반 아이가 지금 7학년이 되었는데 4학년 때 했던 마을학 공책이에요 이게 근데 이제 이게 우리 학교면 여기 우리 학교, 그리고 여기 동국사 들어오는 길, 아이들이 그렸고 아이들한테 박경리 선생님이 여기 사셨는데, 우리가 그런 정신을 배워야 되지 않겠니? 뭐 이런 얘기를 해주면서 이야기를 들려줬고 아이들이 썼어요. 읽어드리면
1968년부터 79년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인인 박경리 선생님께서 사셨다고 해요. 우리 학교 마당에 있는 돌바닥은 선생님께서 손수 만드셨고 글을 쓰시다가 잘 안 되실 때는 밭을 일구셨다고 합니다. 박경리 선생님께서는 이곳에서 토지라는 책 5부 중에 3부까지 쓰셨습니다. 그 이후에는 여러 다른 사람들이 거쳐 가면서 집이 변형되어 방의 구조가 미로처럼 되었고 밭도 많이 망가졌어요. 그렇지만 서울 정릉 발도르프 학교 가족들이 2017년에 들어오게 되면서 다시 집도 예쁘게 보수하고 밭도 일구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을학 같은 것을 배우면서 우리 학교가 박경리 선생님이 사셨고 김지하 시인도 왔다 갔다 교류하면서 오셨고, 이런 얘기 들려주면서 박경리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8) 박경리 가옥이 미래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인식의 변화가 있었나요?
저희는 처음부터 미래유산이었을 때 들어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나가시면서 박경리 가옥이라고 하는데 들어와도 되냐고 많이 물어보세요. 왜냐면 표지판만 있고 간판이나 안내문 같은 것이 없어서요. 좀 아쉽죠. 한용운 선생님 ‘심우장’이나 최승우 가옥이나 그렇게 되어 있지는 않아서 좀 아쉽죠. 저희가 안내는 해드려요.
(9) 미래유산으로 박경리 가옥이 서울시민들에게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하는지?
여기가 계속 재개발 지역이어서 내년에는 아마 나가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박경리 선생님이 이곳에서 사시면서 또 다른 문화예술인들과 교류를 하셨잖아요? 여기가 정릉천이 있고, 산이 있어서 물 맑고 공기 좋고 그러한 곳이어서 예술적인 감수성을 키울 수 있으면서도 또 검소한 공간이었잖아요. 그래서 그림 그리시는 분들, 음악하시는 분들, 신경림 선생님과 같은 문인들과 박경리 선생님이 교류하시면서 예술적인 것도 펼치시고 또 정도 쌓으시고 그러셨다고 들었어요. 이곳이 없어지더라도 박경리 가옥을 사람들이 예술가들이 교류하던 곳, 그리고 이곳에서 또 다른 문화예술이 싹텄던 장소로 기억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