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원대구탕 운영하고 있는 손석호라고 합니다.
(2) 원대구탕에 대한 소개
일단 40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뭐 이렇게 명맥을 유지하고 꾸준함을 토대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가족들이 하는 가게로 시작을 해서. 아버님 친구분께서 삼각지에서 일을 하고 계셨었어요. 그러니까 아버님이 친구 만나러 오셨다가, 때마침 느닷없이 이제 테이블 6개 놓고 시작을 한 거에요.?
(3) 대구탕으로 개업을 하신 배경은?
일단 저희 아버님이 이제 경상도분이신데. 장사가 안되다 보니까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그러자 하면서, 이제 아버님이 음식을 잘하셨어요. 어머님도 잘하셨는데. 그래서 하게 된 게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대구탕을 갔다가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시장에서 사다가 단골손님한테 ‘오늘은 이거 드셔보세요.’ 라고 권했는데. 아예 내일부터 고정으로 올 테니까 미리 준비 좀, 그때는 막 바삐 사는 세상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분이 많은 손님들 모시고 오고 하면서, 단기간 내에 굉장히 줄을 서는 가게가 형성이 되버렸어요. 그러면서 좀 유명하게 됐는데, 그때는 이제 이런 매개체가 신문, 방송 이런 거밖에 없으니까 구전(口傳)으로 많이 알려졌었죠.?
(4) 원대구탕이 생길 때 삼각지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뒷편에 보면은 이제 메인,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는데 거기가 옛날에는 시장 기능을 가지고 있어가지고, 여기 우리은행 자리가 ‘전차기지창’ 자리였어요. 그러면 거기서 내려서 후암동, 부광동, 해방촌 뭐 이런데 올라가시는 분들이 장을 봐서 걸어서 올라가는. 그런 중간역할을 하는 동네였기 때문에, 시장이 굉장히 활성화 되어 있었었는데. 어느 순간 도로도 바뀌고 마을버스 같은 것도 생기고 하면서. 또 시장 기능을 하는 여러 군데들이 많기 때문에, 또 시장이 짧아가지고 시장 기능이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그 다음에 시장이었던데가 식당들이 좀 많이 들어서고, 그래가지고 이제 먹자 라인이 좀 형성이 되는 그런 효과가 있었어요.?꽤 유동인구가 많은 골목이었어요. 이름은 없고 그냥 ‘삼각지 시장’ 이렇게 표현됐었죠.
(5) 원대구탕의 차별성은?
기존에 시중에 있는 대구탕들은 이렇게 대접에 떠서 나가는 타입이었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이제 즉석에서 끓이고. 그 다음에 반찬으로 나가는 ‘대구아가미젓갈’이 있어요. 그 ‘대구아가미 무김치’라고 표현을 하는데 그게 굉장히 ‘시그니처(signature)’ 역할을 하는 거죠. 어디서도 이렇게 맛을 보지 못하고. 또 저희도 굉장히 어렵게 일을 해서 반찬을 준비하는 거기 때문에, 그러면서 밥을 볶아먹는 시대 흐름에 맞춰서 밥을 볶았는데. 그게 또 인기가 굉장히 많아가지고, 지금은 테이블이 열 개면 한 일곱 테이블은 밥을 볶아드시는 그런 형태로 이제 진화가 된 거죠.
(6) ‘대구아가미젓갈’이 특징이 된 배경은?
그것 또한 할머님이 아버님 이제 어렸을 때. 밀양분이신데, 밀양에 가면 이제 시장이 있어요.. 부산에서 좀 가까우니까 대구 한 마리 사다가 내장은 젓갈을 담구시고, 살은 이제 탕을 끓이든 지리를 끓이든 그렇게 해서 식사를 하셨던 기억이 있어서. 아가미랑 내장 젓갈을 담아서, 곰삭은걸 갖다가 이제 무랑 같이 섞어가지고 양념을 해가지고 나가는. 그것 갖다가 기억하셔가지고 대입을 했는데, 그게 굉장히 반응이 좋아요. 지금도 어디 가도 저희처럼 내는 데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또 만들기도 어렵구요.
(7) 원대구탕을 운영하면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면?
저 어렸을 때는 뭐 국방부, 길 건너편에 육군본부가 있었어요. 나중에 합참이 생기고 그렇게 됐었는데. 지금 이제 육군본부가 대전으로 내려갔고. 그래서 지금은 누가 군인인지 잘 모를 정도로, 왜냐하면 밖에 있을 때는 사복을 많이 입고 다니시는데. 예전에는 군복을 많이 입고 다녔으니까, 아무래도 이제 군인분들 비중이 높았고. 또 군인분들은 특성이 전국으로 다니잖아요.?전국으로 다니다 보니까, ‘너 삼각지 육군본부에서 대구탕 먹어봤어?’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고. 또 그런 얘기를 했다라고 저희한테 전달도 하고, 이제 그런 부분이 생겨가지고 여지껏 끌고 온 거죠. 군인분들 역할이 굉장히 컸어요.? 국방부 의장대 같은 경우는 뭐 4명이 와가지고 밥 한통을 다 먹고 간 적도 있고.?그 정도로 키도 크고, 많이 먹을 때니까요. 20대 초반에 다 그러니까. 전통적으로 공기밥은 지금도 무료로 내고 있고 하기 때문에. 그런 이제 큰 틀에서는 많이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데, 짬짬이 이제 어떤 포인트적인, 시대적인 흐름에 맞춰서 조금씩 변화는 주는데. 큰 틀은 바꾸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8) 지금까지 운영하면서 손님들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지금은 4대가 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니까 가장이었다가, 그 가장이 이제 부모님을 모시고 오다가, 자식이 오다가, 또 증손주까지 오셔가지고. 그 증손주들이 요즘은 ‘핫플’이니 어디니 하면서 이제 꼭 와야되는 그런 ‘성지순례’처럼 하는 젊은 친구들도 있고. 옛날 추억에 막걸리 한잔 드시러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렇습니다.
(9) 원대구탕을 이어받은 이유와 앞으로 운영은?
본인은 항상 이렇게 그런 주장을 하셨어요. ‘나이 몇 되면 그냥 시골에 내려가실거다.’ 라는. 아버님이 조금 철학이 있으셔가지고, 저를 또 신뢰를 해주셨던 거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물려받긴 했는데 참 많이 혼났죠.. 왜냐하면 옛날 분들은 약속 시간 30분 전에 무조건 도착을 해 있어야되고. 그런 부분이 있으니까, 그런 부분이 많았고. 또 젊은 나이 때는 잠도 많고, 술도 약간 좋아하다 보니까. 그래서 원 없이 입에서 단내나게 많이 뛰어봤어요.?저도 이제 아들만 둘인데 둘 다 이렇게 외식업에 뜻을 갖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이제 차츰 아버님 대를, 모양을 따라서. 저도 이제 아들들 수업 잘 시켜가지고, 또 열심히 할 수 있게 바탕을 또 깔아주고 이제 그럴 생각을 갖고는 있습니다. 생각한대로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10) 서울미래유산으로 원대구탕이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시는지?
일단은 용산 인근이나 삼각지 쪽에 오시면은. 정성껏 준비한 저희 음식을 제대로 대접할 수 있게끔, 기회를 많이 주시고. 오시게 되면은 꼭 한 번쯤은 들리셔가지고 오래된 집이니까. 향취를 느끼시든, 다시 한번 추억을 만드시든 그런 업소를 운영할 수 있게끔 노력을 할 테니까, 많이들 와주시기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