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자막)
심층인터뷰-박종복 회장
'옥바라지'의 애환을 간직한 영천시장
서울시 서대문구 영천시장길 38 일대
인증번호 2013-190 건립시기 1960년대 선정연도 2013년
*이력사항*
1960년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
2011년 07월 전통시장등록
2013년 '서울형 신시장 모델'로 선정되어 시장 현대화 사업 진행
2022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지원하는 '문화관광형시장'에 선정
이 인터뷰는 서울시 미래유산 심층기록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일시는 2024년 10월 25일 장소는 서울시 서대문구 영천시장길 38일대입니다.
구술자는 박종복 회장입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박종복 영천시장상인회 / 회장
반갑습니다. 영천시장 상인회장 박종복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영천시장은 언제부터 활성화 되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희 영천시장은 활성화가 된 시기가 1960년대 ‘서대문 형무소’로 인해서 재소자분들을 여러 이제 부모님들이나 형제들이, 떡이랄지 옷이랄지 이런 것을 사식(私食)으로 넣어주면서. 이제 ‘옥바라지 골목’도 형성이 됐었고요. 꽈배기랄지 떡이랄지 옷 이런 것을 많이 갖다가 사식을 넣어줌으로써, 이제 저희 시장이 활성화가 됐다고 이렇게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옥바라지 골목'에 대해서 설명부탁드립니다.
종로구 무악동쪽에 지금 현재 ‘옥바라지 골목’이라고 지명이 현재되어 있습니다. 부모님들 서대문 형무소에 ‘재소자’들을 위해서 나눠 먹으라고 떡을 이렇게 보내준 것이 유래가 되어가지고, 서울시에 이제 대표적인 먹거리인 ‘떡 시장(영천시장)’이 형성이 됐죠.
'떡'을 많이 구입한 이유가 있을까요?
옛날 같은 경우는 이제 우리가 이제 잔치하는 날은 떡을 주로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재소자들한테 여러 사람이 나눠 먹을 수 있는 게 자르면, ‘사식’으로 넣어주면 ‘이제 부모님이 면회 왔다 간다’ 하게 되면. 소자들하고 우리 부모님이, 어떤 떡을 갖다 나눠줘서 먹는 게 유래가 되어 가지고 ‘떡 골목’이 형성되었습니다.
1945년 이전에 영천시장은 어떻게 존재했나요?
그 이전에는 은평구하고 서대문구 가좌동 외곽 지역이 경기도 고양군으로 되어 있어 가지고요. 그 분들이 이제 물건들 농사를 지어가지고, 사대문 (안쪽)인 영천시장까지 리어카를 끌고 오든지, 마차를 끌고 와서 여기서 판매를 하게 됨으로써 이제, 저희 (영천)시장의 유래가 형성이 된 것입니다. 시장으로서 형성이 된 것입니다.
영천시장이 활성화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1960년대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있었다고 했는데 활성화가 된 게. 저희 시장이 확, 시장으로서 형성이 된 것이 서대문 형무소로 인해서 서울에서 이제 사대문 안에 있는 시장으로써 엄청 큰 시장으로 형성이 되었죠. 그 전부터 이제 시장이 형성이 되어 왔죠. 보부상들이 이제 고양군에서 물건들을 야채나 과일 같은 걸 재배를 해서, 거기는 시골이니까. 사대문인 여기까지 와 가지고 여기서 이제 판매를 하는 게, (영천)시장이 형성되게 된 유래입니다.
현재 영천시장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저희 시장은 현재 지금 상인이 이제 136개 점포를 가지고 있고, 운영을 하고 있고요. 각 개개인들이 자기만의 특별한 ‘맞춤 서비스’를 해 가면서 고객들에게 열심히 홍보하면서, 저희 시장은 특히 이제 ‘꽈배기’가 유명하고요. 그 다음에 이제 ‘떡볶이’, 그 다음에 ‘떡갈비’. 또 1차 식품은 마트 같은, 대형마트가 두 개가 있고요. 정육점 같은 경우도 10개 업소가 있고. 그러니까 사대문에서 경복궁이나 종로, 광화문 일대를 저희 시장이 커버를 한다고 보면 될 수 있습니다.(그리고) 떡이 떡방앗간 골목으로써, 저희 옛날에 보게 되면 북한산이나 관악산 같은 데 가면 아주머니들이 ‘바람떡’하고 이런 떡을 이고 다니면서. 산에서 등산객을 상대로 떡을 판매하던 것이 여기서 저희 영천시장에도 떡을 받아다가 그 분들이 판매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 떡이 그렇게 유명합니다.
영천시장이 '문화관관형 시장'으로 지정된 이유는?
영천시장은 바로 옆에 이제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 있고요. 바로 옆에 안산, 그 다음에 북한산, 그 다음에 이제 청와대. 이런 것을 연계를 해서 등산객이랄지 방문객이랄지, 이 분들을 상대로 해서 역사탐방을 하면서 저희 시장에 투어를 하면서, 먹거리도 홍보를 하면서 맛있는 먹거리를 제공하고 이런 취지를 행해서 ‘문.광.형 시장’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문화관광형 시장'으로써 진행한 프로그램은?
(또) 미동초등학교 어린이 학생들을 상대로 해 가지고 ‘시장투어행사’도 몇 번 진행을 했고요. 금화초등학교 학생들도 상대로 해 가지고 저희 시장 ‘장보기 행사’도 투어도 했고요. 그 다음에 이제 ‘불금’이라고 등산객, ‘불타는 금요일’ 이라고 등산객을 상대로 한 막걸리 축제도 열었고요. 그분들을 상대로 여러 가지 이벤트 사업을 ‘문.광.형’ 시장을 하면서 진행해 왔습니다.
진행한 프로그램 중 시민들의 반응이 좋았던 프로그램은?
등산객을 상대로 한 ‘불금축제’는 등산객들이 등산을 하고 시원한 막걸리와 전, 뭐 이런 떡갈비 이런 걸 먹는 것도 많이 형성이 잘 되었지만요. 초등학교 학생들의 ‘시장 장보기 행사’가 굉장히 초등학생들한테 호응을 많이 얻었고요. 교장 선생님이나 여러 선생님들께서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왜냐하면 어린이들은 이제 시장 장보기 행사도 돈을 어떻게 쓰는 방법, 이런 것을 이제 가르쳐주고 하는 데서 굉장히 성과를 얻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린이들 상대로 같은 경우는 이제 그 ‘온누리 상품권’, ‘화폐 종이’로 된 걸로 장보기 행사를 저희가 시작을 했는데. 어린이들이 상인들한테 온누리 상품권을 주면서 거스름돈도 받으면서 장보기 행사할 때, 그 재미도 있고 흥미로움을 느낀 것을 봤습니다. 요즘에는 카드로만 모든 게 형성이 되는데, 이제 ‘지류’ 온누리 상품권으로 장보기 행사를 할 때, ‘아 화폐를 이렇게 쓰는구나’ 하는 방법도 알고 이런 것을 제가 보고 느꼈습니다.
영천시장을 찾는 고객층의 변화가 있나요?
옛날 같은 경우에는 전통시장 하게 되면 백화점이 없는 시절에는 전통시장 하게 되면, 남녀노소 나이가 젊으나 나이가 많나 저희 시장을 다 찾아주셨는데요. 지금 같은 경우에는 백화점들이 많이 생기고 이러다 보니까, 주로 중·노년층들이 시장을 많이 찾아주고 있는 추세인데요. 현재 지금 저희가 ‘문.광.형 시장’하고 ‘디지털 사업’을 육성하면서 젊은 층들도 저희 시장을 찾아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현재 지금 일본의 ‘역사 왜곡’으로 인해서 자기가 ‘자기네들의 역사를 바로 알자’ 하기 위해서, 서대문 형무소를 많이 찾아오는 걸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침이라도 보게 되면 관광객들이 저희 시장 투어를 지나가면서 서대문 형무소를 가면서, 일본어로 말씀 많이 나눈 거 보면. ‘저분은 또 일본인 관광객이구나’ 하면 일본인들이 서대문 형무소를 많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영천시장의 앞으로 운영비전은?
저희 시장 같은 경우는 이제 오프라인 판매 매장이 주로 현재 형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지금 저희가 ‘디지털 사업단’으로써 지금 1년 차에 하고 있는 것이고요. 앞으로 이제 온라인 판매를 주 목적으로 해 가지고 타켓을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동시에 판매할 수 있는, 그러한 시장으로 전국을 네트워크화 해서 판매하는 시장으로 거듭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울미래유산으로써 영천시장이 어떻게 기억되기 바라시는지?
영천시장은 고객들을 위해서 상인 개개인들이 노력하면서 ‘고객이 왕’이라는 신념으로써 여러분들에게 열심히 좋은 물건을 가지고, 여러분들한테 배달할 수 있는. 또 드릴 수 있는 그런 시장이 되면서 맛있는 먹거리로 인해서 저희 시장을 홍보하면서, 여러분이 다시금 찾아올 수 있는 그러한 영천시장을 만들도록 저희 상인 136명은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층인터뷰-박종복 회장
'옥바라지'의 애환을 간직한 영천시장
서울미래유산
개요
- 구분
-
시장/상가
, 음식점
- 지역
-
서대문구
- 분야
-
시민생활
- 시기
- 2024-10-25
- 출처
- 2024 서울미래유산 발굴조사 및 아카이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