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자막)
심층인터뷰 - 권정숙 대표
영화[접속]의 음반가게 부루의 뜨락
서울시 중구 명동8나길 37-1
인증번호 2020-005 건립시기 1978년 선정연도 2020년
*이력사항*
1978년 음반가게 '부루의뜨락' 개업
1992년 강남역 분점개설(현재 폐점)
1997년 영화 [접속] 촬영
이 인터뷰는 서울시 미래유산 심층기록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일시는 2024년 11월 18일 장소는 서울시 중구 명동8나길 37-1입니다.
구술자는 권정숙 대표 입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권정숙 부루의 뜨락 / 대표
저는 ‘부루의 뜨락’ 대표 권정숙이고요. 부루의 뜨락은 클래식과 팝송 그리고 케이팝에 이르러서 모든 음반을 다 취급하고 있습니다.
'부루의 뜨락'의 의미는?
네 제가 24살 때, ‘부루의 뜨락’을 자그마한 가게에서 시작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시작을 하기 전에, 친구처럼 지내는 지인이 있는데. 한 분한테는 간판 디자인이나 이런 걸 좀 부탁을 드렸고요, 한 분한테는 상호를 좀 하나 지어달라고 부탁을 드렸어요. 그런데 이제 그 분이 음악 관계나 문학 관계나 이런 쪽에 좀 많이 아시는 분이고. 그래서 부탁을 드렸는데 ‘부루의 뜨락’·‘뜰 ’ 아니면 ‘마당’, 이런 식으로 ‘부루’라는 말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랬는데. 그 중에서 고르라고 그랬는데, 제가 ‘부루의 뜨락’이라는 것을 선택을 해서 짓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제 ‘부루의 뜨락’이라고 하는 것에서, ‘부루’라는 말에 대해서 (사람들이)관심들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이제 ‘부루’라는 말을 제가 그분한테 전해 듣기로는, 옛날 우리 선인(先人)들이 음악을. 그러니까 ‘풍요를 즐긴다’라는 뜻으로 쓰셨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으로 제가 기억을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분한테 상호를 받을 때에는, 금난새 씨가 ‘부루의 밤’이라고 해서 음악회를 한번 열었는데, 거기서 자기가 영감을 얻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1978년에 개업한 이유는?
그 때 (남산)3호터널 앞에 신세계 건너편에 ‘심포니’라고 음반 가게가 처음 생겼어요. 그런데 그 분이 (회현)지하상가로 옮기고 싶어 해 가지고, 지하상가로 이사를 가야 되겠다고. 그래서 이 가게를 내놨어요. 그런데 제가 친구의 권유로 이제 하게 됐어요. 그 때 ‘회현지하상가’는 이제 상가로서 (남산)3호터널이 개통이 되면서 굉장히 활성화되고, 그 때는 신세계하고 연결이 되어 있으니까 굉장히 관심도가 높았었거든요. 그래서 그분은 또 그쪽으로 가고 싶어 해 가지고 오픈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그 쪽으로 가고 싶어 하셔서그 자리를 가게 됐어요.
남산3호터널이 개통된 전후 명동은 어떻게 변화하였나요?
남산3호터널이 개통이 되면서 그전에는 ‘명동’이라고 그러면요, 명동은 ‘패션가’였어요. ‘앙드레 김’이나 뭐 이런 데 옷을 만들어서, 이제 양장점이죠 말하자면. 양장점 같은 옷을 맞추려고 그러면, 명동에 아니면 이대입구 그렇게 되고, 기성품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남산3호터널이 오픈되면서 지하상가가 활성화가 되어 있었고요. 명동 거리는 이제 ‘멋쟁이’들이 많은. 영화배우나 이런 사람들이, 유명인들이 많이 다니는 그런 때였어요. 그런데 (남산)3호터널이 개통이 되면서 이제 강남이 발전하게 되었죠. 그리고 (남산)3호터널이 개통된 이후로, 아마 그 때가 롯데백화점, 또 세종문화회관이 같이 동시에 그 때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요. 세종문화회관도 그 때 개관이 되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멋쟁이들은 다 이쪽에, 명동에 많이 있었는데. 10년 정도 지났을 때요, 그러니까 그게 한 1988년도 정도 되었을 때는 이미 강남이 활성화되어서 멋쟁이들은 강남으로 다 가고. 명동은 어쩌다가 차 안에서 지나가는 정도로만 되고, 명동상가가 조금 빛을 잃은 그런 상황이었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 때는 이쪽 골목 전체가 오디오 가게 아니면 양장점 그렇게 있었어요.
가게를 명동으로 이전하게 된 이유는?
네 여기도 오디오 가게였는데 그 때 당시에 오디오 하시는 분이 (용산)전자랜드로 전부 옮겨갔어요. 그 때 그러니까 전자랜드를 새로 오픈을 하면서, 모든 컴퓨터나 전자제품이 전자랜드로 몰려가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이쪽(명동)에 오디오 가게가 양쪽으로 전부 오디오 가게였었는데, 충무로가요. 그런데 전자랜드로 옮겨가면서 여기(명동) 남아야 될 것인가 아니면 (용산)전자랜드로 갈 것인가로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이제 제가 그 얘기를 듣고 ‘여기를 이사를 가시면 제가 들어오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가지고 들어오게 되었어요.
명동으로 이전한 가게와 현재 가게가 같은 위치인가요?
아니 그 때 그 위치는 어디냐 하면. 여기 앞에, 여기 줄 끝에요. 끝에 보면 ‘환전소’가 있거든요, 그 자리예요. 거기서 한 ‘5평 정도’ 되었거든요. 그런데 한 5년 정도 지나니까 5평 가지고는 좀 부족하더라고요. 물건 취급하는 양이 많아져가지고, 그래서 그 뒤로 한 7~8평 정도 되는 데를 또 얻었었어요. 그 때는 이제 CD가 막 활성화 되어가지고, 실제 종류가 굉장히 많아졌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레코드를 이제 전문으로 하고, 거기는 레코드만 하고. 이쪽은 CD 가게를, 이제 중간 정도로 해 가지고. 지금 약국 자리거든요. 거기서 CD를 전문으로 해서, 이렇게 2개를 운영을 했었어요. 그런데 여기서(현재 매장) 이제 전자랜드로 옮겨가신다고 해 가지고, 그러면 우리가 여기다가 1층에 CD, 3층에 LP 이런 것을 하면 되겠다. 그렇게 해서 (현재 매장으로)들어오게 되었죠. 여기(현재 매장) 온 것은 제가 한 25년 됐어요.
명동에 남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이제 전자제품하고는 저희하고는 상관이 없거든요. 레코드 가게가요, 회현지하상가에 몇 개가 있고. 또 여기 충무로에도 저 이외에도 ‘베토벤’이라고 하는 음악사가 또 있었어요. 중국대사관 앞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오디오 가게가 여기도, 충무로에도 몇 개가 있었죠. 지하상가에 한 서너개 그렇게 있었어요. 회현지하상가. 그래서 저는 이제 여기서 있다 보니까 옮길 수도 없고, 옮길 계획도 없었고. 그냥 이렇게 25년 여기서 운영하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여기 오픈한 지 한 3년 후에 ‘접속’ 영화를 여기서 촬영하게 되었고요, 3층에서.
당시 영화 '접속' 촬영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접속’측에서 촬영팀이 와 가지고, 저희한테 촬영을 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같이 의견이 맞아가지고 하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촬영은 3층에서 했어요. 이제 그 내용은 한석규 씨가 판을 사러 3층으로 오는 장면이고, 거기서 이제 전도연 씨가 둘러보러 왔다가, 한석규 씨는 판을 사러 왔고. 그리고 전도연 씨는 둘러보러 왔다가 거기서 마주쳐요. 그런데 이제 서로가 얼굴을 모르는 상태예요. 컴퓨터로만 교류를 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거죠, 서로 모르면서. 그래서 3층에서 그 촬영을 했는데, 얼굴이 스치는 장면이요. 포스터에도 있는데요. 얼굴이 스치는 장면, 몸이 이렇게 같이 스치는 장면이 모든 포스터에 쓰게 되었어요. 이제 여기 전부 점령을 했죠. 1층에는 전기 조명 같은 거 담당하시는 분들 막 있고, 2층에는 이제 대기실로 한석규 씨가 앉아서 기다리고. 또 3층에서 4층에서는 이제 감독님이 이제 촬영을 하시고요. 그래서 1~4층을 다 활용을 해서 촬영을 하게 되었어요.
현재 운영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처음 이사 올 때는, 이제 그 때는 팝송이 ‘메탈’이나 이런 쪽으로 한국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CD를 샀어요. 그런 것를 모으고 그랬는데.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그런 음악들은 요즘에 관심들이 없고, 전부 한국의 ‘K-POP’으로 1층은 변했어요. 1층은 이제 K-POP으로 했고요, 2층은 옛날 그대로 클래식 음악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3층은 이제 레코드 매장이에요.
1970년대 이후 음악시장은 어떻게 변해왔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1978년도에 처음 시작할 적에는요. 카세트하고 CD하고 또 레코드, 국내에서 ‘성음사’나 이런 데서 나오는 ‘라이센스 레코드’가 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저희가 하게 된 것은 이제 ‘오리지널 원판’을 많이 취급을 하게 되었거든요. 그 때는 오디오 가게가 여기 많이 있을 적에는 사람들이, 아파트가 당첨이 되어서. 이제 강남 쪽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고 분당도 많이 들어서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제 아파트로 이사를 많이 가는 시기라, 집을 새로 사면 오디오를 사고. 음반이나 CD 클래식 이런 것을 듣는 것이 그 때 당시에는 붐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CD가 처음 나오고 할 적에는 이제 CD를 많이 모으는 사람이 많았죠, 레코드도 많이 사고.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흐르고서는 조금 트렌드가 바뀌었어요. ‘마이마이’가, 이제 그 때 ‘워크맨’이라고 나와가지고. 길에 다니면서도 이제 들을 수 있고, 꼭 집에서도 안 들어도 되니까. 결론적으로는 오늘날까지 이렇게 지내오고 보니까, 매니아들은 아직까지도 꾸준히 사기도 하고 많이 듣기도 하고 하는데요. 이제 많이 줄었죠. 클래식 음악이나 팝송이나 이런 것을 듣는 것이 많이 줄었고, 요즘에는 젊은 세대들이 K-pop을 많이 듣고, 그 다음에 외국인 관광객들로 옮겨갔어요.
'K-POP'유행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시나요?
케이팝이 유행이 된 지가 좀 꽤 됐어요. 겨울연가(2002) 그 때부터 K-pop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그거 조금 전에 안재욱 씨가 드라마 한 게 있어요. 안재욱 씨가 드라마 하면서 드라마 노래를 부른 것이 있는데, 그래서 중국에 가서 공연을 좀 많이 하고 그랬거든요. 이제 그 때 중국하고 일본하고 (교류가) 시작이 됐어요. 이제 ost 음악으로 인해가지고 드라마(겨울연가) 배용준, 이런 것 때문에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배용준 상품’ 사고 또 한국 노래도 듣고, ost를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거든요. ost가 이제 유행이 됐어요. 겨울연가(2002), 여름 향기(2003), 가을동화(2000), 가을동화가 맨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로 해서 이제 케이팝이 시작이 됐는데, 이제 아이돌이 이제 막 나왔잖아요. 소녀시대나 샤이니 같은, 빅뱅. 핸드폰 유튜브를 타면서 전 세계에 음악이 보급이 되기 시작해가지고, (K-pop 시작이)그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싸이가 강남스타일(2012) 할 때부터, 그 때부터 이제 한국의 아이돌이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부루의 뜨락' 운영은 어떻게 되나요?
코로나로 인해서, 코로나가 3년 동안 있으면서 거의 문을 닫은 거나 마찬가지였었어요. 그런데 그 때 다들 아시다시피 명동이 그냥 뭐 전부 전멸이 돼서, 사람들이 전혀 다니지도 않았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3년 동안 힘들었죠. 그런데 그러면서 저희가 변한 게, 옛날에는 직원들이 있었고 부장이 있었고 이렇게 해서 직원들이 운영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들하고 딸하고 나오고, 저희 식구하고 아르바이트 2명이서 교대로 있고, 그렇게 운영을 하고 있거든요. 앞으로도 그렇게 가야 될 것 같아요.
서울미래유산으로써 '부루의 뜨락'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시는지?
지금 새로 오픈하는 매장들은요. 신곡 위주로, 이제 가장 핫한 신곡 위주로 가게를 운영을 하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것만큼, 모든 장르를 다 취급을 해요. 국악도 있고, 옛날 흘러간 노래 ‘남인수’도 있고요. 그리고 중간에 ‘7080’ 그런 것도 아직도 갖고 있어요. 그런 것도 모든 장르를 다 취급을 한다는 재즈도 있고, 모든 장르를 다 취급한다.
심층인터뷰 - 권정숙 대표
영화[접속]의 음반가게 부루의 뜨락
서울미래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