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자막)
심층인터뷰 - 미진 본부장
메밀국수명가 미진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1층
인증번호 2014-021 건립시기 2007년 선정연도 2014년
*이력사항*
1954년 안평순 대표(1대)가 종로구 청진동에 개업
1978년 이영주 대표(2대)가 미진을 이어받음
2010년 청진동의 재개발 이후 르메이에르(종로타운 1층)에서 재운영
2024년 이정석 대표(장남),이현승사장(차녀)이 미진을 이어받아 운영 중
이 인터뷰는이 인터뷰는 서울시 미래유산 심층기록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일시는 2024년 9월 6일 장소는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1층입니다.
구술자는 총괄본부장 구재훈 입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구재훈 미진 / 총괄본부장
안녕하세요. 저는 미진 총괄본부장을 맡고 있는 구재윤입니다.(미진은) 1954년에 창업을 했고, 70년간 종로에서 메밀국수를 판매하고 있는 메밀국수 전문점입니다.
미진의 역대 대표님은 어떻게 되시나요?
네 1대 대표님은 안평순 여사님이시고요. 2대 대표님은 친척되시는 이영주 회장님이셨고, 3대 대표님은 이영주 회장님의 장남이신 이정석 대표님 그리고 차녀이신 이현승 사장님이 미진 본점과 미진에 관련된 모든 사업을 같이 함께 운영하고 계십니다.
1대 대표님이 미진을 창업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많은 분들이 메밀을 ‘일본 음식’으로 잘못 알고 계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사실 메밀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왔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음식인데. 이것이 일본에서 많이 활성화가 되다 보니까 ‘일본 고유의 음식이다’ 라고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안평순 여사(1대)님께서 이 부분을 좀 바로잡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일본에 건너가셔서 메밀국수에 대해서 연구를 하시고, 한국에 넘어오셔서 한국인 정서에 맞는. 그러니까 역수입이 된 것이지만 사실 ‘우리 메밀의 종주국은 일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다’라는 자부심으로, 한국 정서에 맞는 메밀국수 소스와 면을 개발하셔서 메밀국수 전문점을 차리게 된 것이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단순히 음식점에 대한 가치보다 애국심도 좀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좀 하게 되었습니다.
미진을 종로에서 창업한 이유가 있나요?
종로는 ‘정치 1번가’이고, 어쨌든 이 ‘피막골’이라는 자체가 아시겠지만 말이 지나다니는 길 옆에, 어떤 상가들이 이렇게 쭈르륵 있었어요. 그래서 여기가 좀 식당의 번화가라는 느낌 예전부터 그런 느낌을 받으셔서 이쪽에 창업을 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봅니다.
현재 미진의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나요?
저희는 현재 지하 2층에 ‘재료준비실’이라는 곳이 있어요. 거기서 모든 미진에 관련되어 있는 음식 재료를 만들어서, 여기 본점 1층에서는 음식을 판매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고요. 복층으로 현재 운영을 하고 있고 테이블 개수는 한 40개 정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본점은 종로에 있고요. 올해(2024년)가 딱 70주년입니다. 70주년을 맞이해서 서초와 파주에 (지점을) 운영을 하고 있고요. 직영점으로 현재 운영 중에 있습니다.
1대 대표님부터 3대 대표님까지 운영에 차이점이 있다면?
안평순 여사님(1대)이 할 때는 메밀만, 메밀 위주로 했던 걸로 알고 있고요. 안평순 여사님의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께서 자주 안평순 여사님을 호출하셔서, 관사에서 메밀국수를 직접 끓여드렸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영주 회장님(2대)께서 일식집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메밀국수집을 하고 싶다고 요청을 하셔서 메밀국수집(미진)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장사가 너무 안될 때는 ‘미진 호프’라는 호프집도 운영을 한 번 해본 적도 있었고, 겨울이 너무 힘들다 보니까 낙지도 판 적도 있었고, 그리고 소고기와 콜라보를 한 적도 있었고. 여러 가지 정말 시도를 많이 했었는데, 다 실패를 했어요. 결국 남은 건 메밀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에 집중하자’라는 그 ‘가치’를 찾게 된 것이죠.사실 메밀 전문점을 운영한다는 자체가 지금이야 전문점 형태의 식당들이 많았지만, 예전에는 밥집 형태의 식당들이 많아서 사실, 전문점을 운영하는 그 가치가 조금 어렵게 느껴지셨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쨌든 하나의 메뉴를 계속 꾸준히 판다는 자부심, 뚝심은 사실 이영주 회장님이 가지고 계신 컬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저도 살아생전에 이영주 회장님을 모셨을 때에도 그런 느낌, 저한테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나이가 지금 팔순이 넘었지만 자기 뇌, 자기 생각은 아직 20대다. 몸만 건강하면 자기는 정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싶다라는 얘기를 많이 하셨거든요. 이정석 대표님·이현승 사장님(3대)의 경영 철학과 운영 철학은 ‘천천히 가자’예요. 사실 (세상이)너무 급변하고, 또 여러 사람들이 자주 찾아주셔서 너무 감사하긴 한데. (손님들 중)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사실 기계 만지는 게 조금 어색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조금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를 ‘천천히 가지고 가자’라는. 그런 경영 철학을 갖고 계셔서, 그런 철학을 조금 접목시키고 있다는 점을 좀 얘기해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테이블 포스’를 지금 대부분의 식당들을 많이 하고 있지만. 이제 한창 상용화 될 때 저희는 안 했어요. 안 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 익숙해졌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이제 이게 ‘시대의 흐름이다’라고 생각을 하셨을 때, ‘적용을 하자’라고 판단을 한 것이지요.
미진이 대를 이어 계속 운영될 수 있는 이유는?
일단은 이영주 회장님(2대)께서 오랫동안, 사실 안평순 여사님(1대)보다 더 오랜 시간을 미진을 운영하셨던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하시던 일을 자연스럽게 보고 배웠던 부분들이, 이정석 대표님·이현승 사장님(3대)이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고. 차녀이신 이현승 사장님은 매일 추석과 방학 때 되면은 나와서 서빙도 하고 일을 했다라고 얘기를 종종 하세요. 그래서 당연히 본인이 이것을 물려받아서 이 가치를 이어나가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저희 단골 손님들 중에서는 70대의 어르신들이 많이 계세요. 제가 카운터를 보고 있거나 하면은, ‘자기가 몇 년 단골이다’, ‘60년 단골이다’, ‘고3 때부터 왔었다’. 이런 얘기들도 많이 하시는데. 그분들이 자신의 딸과 그 딸의 손녀까지 오셔서 3대가 같이 식사를 하시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 모습을 볼 때 ‘나는 여기서 메밀을 옛날에는 4판을 먹었다, 5판을 먹었다’ 이렇게 추억을 말씀하시는데.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보면 딸도 손녀도 할아버지의 그 추억 여행에 동참하는, 그런 풍경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좀 들고요. 그리고 또 그 딸이 또는 손녀가 나중에 커서 자기 남자친구가 남편을 또 데리고 와요. 오시면서 저희한테 계산을 하시면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저희 아버님이 자주 오셨다고, 아버님이 너무 생각난다고.’. 그래서 여기 오면 아빠 생각이 나서 자주 오게 된다고 말씀을 해주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음식만 파는 게 아니라 이런 ‘추억도 제공하는 장소’가 미진이구나. 이런 생각에 자부심을 가지고 지금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미진이 서울미래유산으로써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시나요?
미진이 1,000만 서울시민의 1등이라면, 대한민국 1등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랑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사실 요즘 ‘K-푸드’가 전 세계적으로 또 사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도 서울시를 넘어서, ‘서울미래유산’이 ‘대한민국미래유산’이 될 수 있도록, 더 그 가치를 잘 지킬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적으로도 ‘광화문 미진’ 메밀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심층인터뷰 - 미진 본부장
메밀국수명가 미진
서울미래유산
개요
- 구분
-
음식점
, 종교
- 지역
-
종로구
- 분야
-
시민생활
- 시기
- 2024-04-09
- 출처
- 2024 서울미래유산 발굴조사 및 아카이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