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자막)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 미래유산투어 진행을 맡고 있는 역사 해설가 안지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저희가 6월 투어를 구성하면서 6월이 현충의 달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현충일에 근접한 시기에 기념할 수 있는 투어를 하면 좋겠다 싶었고, 마침 또 국립현충원이 서울미래유산입니다. 그래서 여기가 워낙에 광활하기 때문에 이 한곳을 가지고 돌아보는 코스로 오늘은 구성해 봤고요. 이 국립현충원 말고도 현충을 기념할 수 있는 시설이 서울 곳곳에 많이 있거든요. 그런 곳들을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미래 유산은 근현대 서울 유산이거든요. 아직은 문화유산이 아니지만 충분히 근현대 역사를 담고 있어서 이게 반드시 역사는 아니어도 됩니다. 문화적인 거나 정서적인 거나 그런 것도 상관이 없고 이런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것 중에서 우리 후손들에게 또 어린이 친구들 같은 친구들에게 전달해 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미리 한번 유산으로 등록을 해보자, 시민의 손과 시민의 생각으로 정하자는 제도가 서울미래유산입니다.
그리고 미래 유산은 건축이나 장소 자체인 경우도 있지만 거기에 담겨 있는 기억이나 공유적인 가치를 가지고 미래유산으로 선정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의 정신적인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조금 더 우리가 기념하기 힘든 게 있어서 이런 걸 제도화해서 하나씩 마련을 하고 있습니다. (미래유산이) 지금 현재 506개 구요 아마 숫자만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해체해야 하는 것도 있고 새롭게 추가되는 것도 있는데 시민분들이 공모해 주시는 곳도 많고 자체적으로 평가해서 지정하는 것들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 500개가 넘는 미래유산이 있습니다.
오늘은 미래유산 중에서도 정신적인 가치에 해당하는 걸 보러 오셨어요.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잃으신 모든 분들이 이쪽에 들어올 수가 있게 됐습니다. 몇 군데 기념적인 장소만 가고 유품 전시관이랑 호국 전시관이라는 실내 코스가 있어요. 그 장소들을 통해서 여기 어떤 분들이 안장돼 있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여기를 미래유산으로 지정했고 왜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해서 투어를 듣고 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그늘에 서주세요. 그늘에 서서 여기 판을 한번 봐주시고 지금 여기 현충원 이 워낙에 넓기 때문에 중간에 이런 것들이 계속 나옵니다. 중간중간 이런 것들이 지금 보이는데 저희가 지금 밑에 정문에 있습니다. 정문에 있고 여기 충성 분수대가 저 분수대이고요. 되게 넓죠.
지금 묘역이 계속해서 유해들이 또 발굴되고 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차고 있고요. 원래는 6.25 전사자들을 위해서 만든 것이기는 해요. 6.25 때 사망한 분들 몇 명 정도 되는지 혹시 아시나요? 6.25 전사자 그런데 전사하신 분들이 지금 17만 명이다 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그만큼 준비를 못 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중에서 유해를 찾지 못한, 사망은 그만큼 한 것 같은데 유해를 못 찾았다고 평가가 됐던 게 10만 명이 넘어요. 그래서 지금 저희가 현충탑을 갈 거고요. 현충탑에서 여기에 어떤 분들이 모셔져 있는지를 볼 거고 왼쪽 라인으로 조금 돌아와서 저희는 호국 형제의 묘 정도까지만 보고 묘지를 본 다음에 여기 전시관 쪽으로 넘어가게 될 거예요.
6월이 현충 달이어서 6월에 여기서 행사가 좀 여러 가지가 마련이 되어 있고요. 저희가 지금은 들어가지 못하는데 우리 왼쪽에 있는 잔디밭이 그런 행사를 하는 광장이에요. 그래서 이쪽에서 음악회 같은 것도 많이 합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이나 참전했었던 분들 중에서 여기에 묻히신 분들이 있고 종류별로 좀 나뉘어 있어요. 섹션이 좀 갈라져 있어서 가서 보시면 어떤 특정 구역에는 월남전에 특정 전투에서 전사하신 분들만 싹 모아서 해놓은 곳이 있고 그런 식으로 좀 나뉘어 있습니다. 가장 안쪽에 들어가면 대통령 묘소도 있어요. 국가 원수면 원하면 묻히실 수 있어요.
우리 앞쪽에 현충문이 있습니다. 약간 청와대 같죠. 파란색으로 저기도 조그마한 기념한 하나 있잖아요. 육탄 10용사 기념탑이거든요. 육탄을 영어로 번역하면 뭐 같으세요? Human bomb 이라고 되어 있어요. 사람 폭탄. 이렇게 여기에다가 수류탄 안고 뛰어들었다는 얘기죠.
저희 현충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입구가 있고 조금 걸어서 기념탑이 있습니다. 저게 높아서 저의 위치에서는 그냥 삼지창처럼 보이지만 위에서 보면 십자드라이버처럼 이렇게 되어 있어요. 네 방향을 수호한다는 뜻으로 십자의 모양을 차용을 해서 기념탑을 만들었다고 하고요. 저희 아래쪽으로 살짝 내려가 볼게요.
좀 특이한 게 있는데 여기 타임캡슐 보이세요? 지금은 정전 70주년이고요. 2020년이 6.25 전쟁 발발 70주년이었어요. 그래서 기념회가 형성돼서 여기 안에다가 지금 뭐를 갖다 놓은 거예요. 타임캡슐이 있어요 안쪽에. 우리가 행사를 좀 많이 했거든요. 유회를 봉안하는 행사도 하고 기억상자라는 걸 넣어 가지고 여기에 그 문서도 있는데 추모글도 있고 저희 뒤쪽으로 이제 전시관으로 이동해보겠습니다.
저기가 호국 전시관이라고 전쟁사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호국이라는 것에서 보실 수 있지만 여러분들이 익히 알고 있는 위인들에 대한 내용이 조금 나올 거예요. 우리가 이런 기념물을 만드는 이유는 직접 경험하지 않는 세대들 때문이에요. 잊어버리니까 이걸 경험한 세대들한테는 이런 거 안 만들어도 다 머릿속에 자기 몸에 체득되는 게 있는데 저도 전쟁 겪지 않았죠. 전쟁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이 얼마나 죽었다는 것을 교과서에서 보면 ’이렇게 많이 죽었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지만 이렇게 현충원 같은데 오면은 약간 압도당하거든요. ‘이렇게 많아?’ 근데 이것도 매우 일부라고 하니까 이런 거를 봐야지 느껴지는 게 있어서 그래서 우리가 추도시설을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시설이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해놓지 않으면 이걸 직접 경험하지 않는 우리보다 더 먼 세대들한테는 이게 완전히 없어도 그만인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여기 약식으로 지금 연표가 있는데요. 이 사진을 모르시는 분들은 없으시죠. 드라마 덕분인가요?미스터선샤인 보신 분들 계시죠? 이 의병사들을 찍은 사람은 영국 사람입니다. 매켄지(Frederick Arthur MacKenzie)라는 종군기자입니다. 매켄지는 우리나라 쪽에 자발적으로 온 사람은 아니고요. 이걸 취재하러 온 것은 맞지만 일본 쪽에서 처음에 요청해서 들어왔던 사람이에요. 역사가 많이 왜곡돼 있었는데 이제 우리나라 의병들이 게릴라 전투 같은 걸 하면 지형, 지리를 잘 아니까 일본인들이 화력이 훨씬 우수한 데도 불구하고 이게 감당이 안 됐던 거예요. 그러면서 전국적으로 퍼지는 의병들이 감당이 안 돼요. 사실 서대문형무소 이런데 가 보시면 최후의 의병전쟁 때 모이는 의병의 숫자가 만 명 정도 되거든요.
그래서 일본 군인들이 이 사람들이 다 독립운동가들이니까 이걸 소탕하는 작전을 대대적으로 해요. 이걸 정당화하고 그 세계에 우리가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를 일본에 적합한 원인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외국의 종군기자들한테 요청해서 이 사람들을 의병이 아니고 진짜로 무슨 게릴라부대 정말 도둑 같은 사람들로 묘사해요.
매켄지가 물어봐요. ‘너네 진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물어봤는데 그때 의병들이 너무 덤덤하게 ‘아니 우리 못 이기겠지 우리도 알아 우리 물론 못 이길 거고 우린 아마 다음 전투쯤에서 다 죽을 거야.’ 매켄지는 너무 이상하니까 근데 왜 하냐고 물어보는 거야 ‘왜 해?’ 물어봤더니 이 사람들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생각하고 되묻더라는 거예요 ‘너라면 이렇게 안 할 것 같냐 우리가 이렇게 해서 비참하게 식민지 노예로 사느니 그래도 한 번이라도 이렇게 해보는 게 낫지 않겠냐. 그리고 우리는 가만히 있었고 우리 집에 남이 들어와서 도둑이 들어와서 나가라고 하는데 한 번 싸우지도 않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 그냥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매켄지가 약간 충격을 받아요. 오히려 여기에 약간 감동해서 내가 그동안 뭔가 정보를 잘못 안 것 아닌가. 그때부터 우리나라의 어떤 상황을 취재하기 시작하고 자기가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었다는 걸 알게 돼요. 매켄지는 여기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귀국하고 나서 이 사람들의 서재를 사용해서 지금 의병들이 이렇게 싸우고 있다는 걸 우리한테 우호적인 입장에서 기사를 써주는 거예요. 매켄지는 나중에 영국에 돌아가서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한 책도 씁니다. 그리고 외국에서 외교활동으로 독립운동하고 있었던 우리나라 사람들하고 접촉해서 교우 관계를 유지했고요.
의병, 정의로운 병사들입니다. 직업군인은 아닌데 그냥 일반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싸운 것을 의병이라고 하고 이분들이 나중에 그대로 독립운동가가 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나라 국군의 역사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요. 1940년에 만들었던 한국광복군에서부터 출발하는데 그리고 나중에 이 한국광복군이 그 세계대전 자리에도 같이 들어가서 영국군이랑 같이 미얀마 전선에서 전투도 하고 하거든요. 그 이후에 미국이랑 같이 작전을 다 준비해 놓고 시뮬레이션도 다 해놓고 이제 디데이만 남겨놓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실제로 1945년 8월에 그 디데이 날짜가 들어가 있는 날이 있었는데 갑자기 여기서 그 핵폭탄을 떨어트렸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기습적으로 광복이 되는 거죠.
한국광복군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근데 그 사건 때문에 광복이 갑자기 됐는데 이건 우리한테 분명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아쉬운 일이었죠. 우리가 이거를 했으면 사실 그렇게 복잡한 분쟁으로 번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독립을 누가 시켜준 꼴이 되어서. 사실은 미국한테 어떤 수혜를 받은 것처럼 돼 있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광복이 되고 나서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걸 막을 명분이 없었고 미국이 들어오고 또 위에 소련이 들어오는 걸 우리가 막을 명분이 없었고 그들이 똑같이 나라의 영토를 이렇게 나누어서 서로 주둔하려고 했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휴전선, 38선은 우리가 그은 것이 아니죠.
그때 이미 소련과 미국이 그어놓은 선이 그것이 전쟁에도 그대로 반영이 된 선으로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는 겁니다. 이게 대단히 안타까운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파병을 해주고 있는 나라, 즉 군인이나 의료기업을 보내주고 있는 곳은 6.25 때 우리한테 지원을 해준 국가입니다. 6.25 참전해 준 사람들. 전쟁기념관 가시면 입구 양쪽에 우리나라에 참전해서 사망한 외국인들 묘지명이 쭉 이렇게 있어요. 그러면 진짜 생판 모르는 나라에 와서 우리나라 전쟁에서 싸우다 죽은 거잖아요. 그런 분들이 있어요.
여러분 아프리카의 나라들 있죠. 남아프리카 이런 데에서도 우리한테 파병을 해줬단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한테 군대를 안 보내줘도 돈을 준 나라가 있고 의료 지원해 준 나라가 있고 어떤 식으로든 한국 전쟁에 지원을 해줬던 나라가 있는데 그중에서 소말리아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번에는 그것을 갚아준다는 뜻으로 의료 지원 사업을 같이 해주고 있습니다. 한 50년, 70년 지나는 동안에 세상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는데 이제서야 우리가 그때 우리한테 해줬었던 것 그 고마움을 이런 방식으로 갚고 있는 거죠. 국군이 전쟁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식의 사업도 지금 진행하고 있다는 걸 기억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작년에 4.19 할 때도 말씀을 드렸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걸로 발전에 희생하신 분도 있고 정치적인 거나 이런 전쟁에서 희생당하신 분도 있고. 여러 가지 버전에 이 위인들이 많이 들어가 있잖아요. 우리가 얘기할 때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잊어버리지 말고 가져가야 하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죠. 그게 사실 역사잖아요. 좀 넓은 개념에서 보면 사실 인간은 지구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제일 먼저 멸종했어야 하는 종족이잖아요. 조금만 온도가 변해도 춥고 몸은 약하고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데 지금은 어쨌거나 지구의 최상 먹이사슬 위에서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종족으로 지금 성장을 하고 유지가 되고 있죠.
그 이유는 인간이 머리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종족이었기 때문이에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기록하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죽어 나가고 사실 평균 수명이 그렇게 길다고도 할 수 없는데도 가장 강력한 종족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또 역사라고 할 수가 없는 시대가 됐어요. 그래서 이런 것을 만들고 여기를 방문하고 이거를 기억하려고 억지로 노력하지 않으면 사실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사건이기 때문에 금방 사라지거든요
우리도 내가 태어나서 있었던 일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고 몇 가지의 세리머니만 기억하는 것처럼 전체적인 역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경험은 안 했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응당 누구나 공유해야만 하고 후손에게 전달할 의무가 있는 여러 가지 기억이 있는데 여기는 그런 장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현충원이 사실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미래유산이라는 걸로 기억하고 연결해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래유산이 아니더라도 이곳 자체로 되게 의미 있는 장소인 건 맞죠. 여기에 계신 분들이 왜 여기에 묻히게 됐고 우리가 이 공간을 왜 만들게 됐는지를 조금 더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귀한 주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설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개요
- 구분
-
공공시설
, 근린생활시설
- 지역
-
동작구
- 분야
-
정치역사
- 시기
-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