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동영상

북정마을

공유하기 리스트
추천2 조회873 작성일2022-03-18 17:16:13.0
설명(자막)
(1) 북정마을의 지명유래는 무엇입니까?
우리 북정마을은, 유래는 영조 44년 1768년도에요, 한국사람 밥상에는 된장, 고추장, 간장이 안 올라가는 밥상이 없어요. 그 주원료인 메주를 우리 성북동 사람들한테 쑤어서 궁에다 납품할 권리를 줬어요. 그래서 동네 사람이 다 모여가지고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메주를 쑤다보니까, 메주 끓는 소리도 북적북적, 사람도 북적북적, 그래서 원래 북적골이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어서 현재 북정마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 정서라던가, 집들이라던가 모든 것이 정서가 옛날 60~70년대 정서하고 똑같습니다. 우리 동네 주민들은, 이웃집이 저 집 숟가락이 몇 개인가 까지도 서로 다 알고 있어요. 결혼식이라던가 초상이 나면 일가친척이 아니더라도 다 갑니다. 이런 시골, 이런 정서가 서울에서는 내가 볼 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 마을 특징은 뭐냐, 한양도성이 바로 옆에를 지나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은 한양도성은 우리 마을의 상징물이라고 생각을 해요, 주민들이. 그러니까 한양도성이 우리 마을을 감싼 건지 우리가 한양도성을 보호하는 건지, 뭐 참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우리는 한양도성을 애지중지하면서, 주변이라던가 경관, 그런 것들을 우리가 예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 북정마을에서 제일 오래 사신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아 그건 정말, 몇 대가, 몇 년이라고하면 안돼요. 몇 대가 살아요. 제가 아는 분만해도 4대, 5대가 살았어요. 왜냐면 할아버지, 그 아들의 아들, 물론 그 밑에, 밑에 마지막에 있는 사람들은 사실은 여기 안 살아요. 왜? 자식들은 여기서 다 키웠는데 성장하니까 다 나가서 살아요. 그게 증명해 주는 게 뭐냐면, 설이라던가 추석 때 되면요, 여기 지금 현재 마을버스가 다니거든요. 명절에는 마을버스가 못 다녀요. 왜, 자기 고향 찾아오고, 부모 찾아오고, 처갓집 찾아오고, 이런 사람들이, 요즘 집은 없어도 차는 다 있다는 식으로 차가 하도 많이 들어와 가지고 마을버스가 다닐 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평균연령이 대부분 어르신들만, 어르신들이 주로 많아요.

(3) 북정마을이 우수마을공동체로 선정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2009년도, 지금 11년째네요. 그때부터 사실 불이 붙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리가 마을공동체로서 ‘월월축제’라는 걸 했습니다. ‘월월축제’가 흔히들 우리 동네 어르신들이 “그게 뭔 말이냐?”, 심지어 “그거 뭐 개 짖는 소리 같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내용은 뭐냐 면은, 앞에 월자는 달 월자에요, 뒤에 월자는 W, A, L, L 월, 성(城), 그러니까 우리는 성곽마을이다 보니까 성을 뜻한 거고, 그러니까 어르신들한테 “저 성곽 위에 달 떠있는 거를 연상하세요” 하니까 지금은 그런 말씀 하시는 분이 없는데, 그때 당시 국민대 이혜경 교수님하고 월월축제를 그때부터 시작했습니다. 시작해가지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금년에는 좀 사정이 있어서 아직까지 계획이 불투명합니다. 그때부터 마을공동체로 운영이 되면서 13년도에 우리가 처음으로 그때 우수상을 받은 바가 있습니다.

(4) ‘북정마을을 사랑하는 모임(북사모)’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북정마을을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게 된 동기는, 우리가 뭔가를 마을을 위해서 좀 뜻있는 일을 해보자, 이렇게 해가지고 지금 아마 결성한 지가 제가 자료는 다 갖고 있는데요. 한 4~5년 되었습니다. 사실 그 이유 중에 한 가지가 재개발 문제 때문에 한 그것도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왜냐면은 일부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재개발하면은 이런 동네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하지만 우리 마을은 이제 역사문화적으로 내가 볼 땐 중요하니까 우리는 보존하는 데에 큰 뜻을 두고 이렇게 지금까지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뭐 재개발 문제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주로 사실 젊은층은 거의 없어요. 젊은층 20~30대 내지 30~40대가 많았으면 좋은데, 특성상 보면 전부 어른들이다보니까 좀 아쉬운 게 있어요.

(5) 북정마을을 다녀간 사람들의 소감은?
그 역사문화가 별겁니까? 이 마을 자체가 우리는 역사문화예요. 우리의 문화예요. 저 월월축제 하면서 외국인이 한양도성에 투어하는 사람과 인터뷰를 한 예가 있었어요. 그때 그분이 독일사람 이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마을을 둘러본 소감을 한번 물어봤어요. 바로 성곽 있는 데에서요. 그랬더니만 한국에 와서 뭐 명승지, 유원지 다 돌아다녀 봤지만 다 거기서 거기더라, 그런데 이 동네는 뭔가 틀리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낡은, 낡고 험한 집들이 있지만, 굉장히 안정적으로 보인다. 저녁 시간이었어요. 다른 나라 해외 같은 경우에는 이런 분위기는 야간만 되면 범죄 때문에 겁나서 못 다닌대요. 그러면서 참 이런 마을이야말로 놀랍다면서, 이런 마을이야말로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뭐 우리 생각하고 거의 비슷한 말씀을 하신 바가 있습니다.

(6) 마을에 북정카페와 북정미술관이 있었다던데, 지금은 없어졌나요?
우리가 2009년도부터 월월축제를 하면서, 그 모아둔 사진들을, 심지어 그때 축제할 때 마을사람들이 세 사람을 희망자를 선정해 가지고, 말하자면 카메라를 직접 그 사람들한테 대여를 해주고, 마을 작가를 말하자면 소집을 했어요. 그렇게 해가지고 찍어온 사진을 갖다가 전시회도 하고 이렇게 했었는데, 그리고 또 우리 마을에서 옛날 오래된 사진들을 또 모아가지고, 또 그게 모아놓고 보니까 심지어 옛날, 지금 현재 한 30~40대 됐지만은 그 어릴 때 고무다라 통에서 목욕하는 장면도 나오고, 이렇게 보니까 누구 집 아들이고 딸이고 다 알겠더라고요. 그런데서부터 저 성곽에서 흑백사진으로 된 그럴듯한 사진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런 걸 수집을 해가지고 미술관을 만들었어요. 왜 미술관이라고 했냐면은, 그 된장 만드는 그런 도구, 메주 쑤는 도구, 이런 걸 거기에 전시도 하고, 그러니까 여러 가지를 그렇지 않을 경우에 사진만 갖다 놓은 게 아니라 여러 가지를 우리가 전시를 할라고 박물관처럼 할라고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시작을 했는데, 그게 건물이 우리 건물이 아니라 남의 건물 공간에 그렇게 했는데, 참 인기는 있었는데, 주인이 비워달라니까 아쉽게 비웠어요. 북정카페는 그 바로 우리 3번 마을버스 종점 부분에, 거기가 좀 터가 넓어요. 가건물에다가 우리가 북정카페라는 이름으로, 사실 거기서 집주인 되시는 분이 막걸리도 팔고 이렇게 했었어요. 그렇게 했었는데, 그 미술관을 비워 달라는 데, 갖다 놓을 데가 없어요. 보관할 데가 없어요. 그래서 그 카페에다가 다 전시를 해놓고 했었는데, 아쉽게도 그것 또한 영업하시던 분이 고인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지금 참 아쉽지만 사라진 형편입니다.

(7) 2015년에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그 이후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보면 공동체 사업이라고 해야겠지요? 아까 잠깐 보셨지만, 그 북정우물쉼터, 그 우물이 아주 오래된 우물입니다. 옛날 그 식수대고 빨래는 당연한 거고. 그런데 우물이, 그러니까 몇 십 년을, 거의 한 반세기를 내가 볼 땐 사용을 안 하다 보니까 그대로 남아는 있는데, 그거를 이제 “우물을 살리자” 해가지고 거기 그 앞이 동네 삼거리가 되다보니까. 하아. 그 우리나라 쓰레기 문제, 참 주민들 의식이 좀 많이 고쳐져야 돼요. 쓰레기가 한개 두개 쌓이기 시작하게 되면 금방 산더미처럼 쌓여요. 특히나 여름철 되면, 거기서 벌레가 나오고 아무리 한 두 사람이 그걸 개선을 할라고 해도 “니가 뭔데?” 하는 식으로 나오면 뭐 할 말이 없어요. 그래서 방법이 없어가지고 우리 북사모에서 사실은 처음에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그걸 우물 살리기 사업 겸 화단을 만들자 해가지고, 우물을 이용해서 물레방아도 설치하고 항아리에 수생식물을 지금 심어놨는데... 그 항아리 여러 개 모아놓은 것은 우리 나름대로 그걸 왜 모아놨냐 하면, 북정마을 유래를 생각해서, 장독을 우리가 연상을 해서 항아리를 동네 주민들한테서 다 거둔 거예요. 거뒀다기보다 자발적으로 갖고 나온 거예요. 필요하니까 집에 안 쓰는 거 있으면 갖고 나와라 해서, 이제 항아리를 이용해가지고 수생식물도 심고, 그렇게 저렇게 하다보니까 완전히 지금 거기가 쉼터가 되다시피 했는데, 물론 우리도 좋지만 토요일 일요일 되면은 저기 암문이라던가 한양도성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마을 투어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암문이 여기 있다 보니까 거의 다 이쪽으로 내려오는 거예요. 여기 와서 마을버스 타고 내려가고. 그러다보니까 어떻게 보면 주민분들 보다 외부인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와서 쉬었다 가고.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걸 다 공동체에서 했다고 봐야죠.

(8) ‘북정마을을 사랑하는 모임’은 어떤 분들이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처음에 이제 어르신들께서 사실 제안이 들어왔었어요. 원래 동네마다 오래된 동네는 계모임이 다 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동네만 해도 계모임이 굉장히 많아요. 여러 가지 계모임이 있는데, 하지만 우리가 이걸 결성할 때에는 우리는 이거는 계모임이 아니라, 와서 먹고 놀자는 게 아니라, 뭔가 뜻있는 일을 해야 된다. 그래서 회비를 또 많이 걷을 수도 없고 회비를 만원씩만 걷어가지고, 간단하게 회의 마치고 다과회 식으로 이렇게 조금 적당히 끝내고 다문 얼 마 씩이라도 저축해 놓았다가 공동체를 위한 사업에 쓰자, 그렇게 해가지고 이게 거의 첫 사업이에요 우물 쉼터를 만들자고 한 게, 거기서 발동을 해가지고 지금까지 이렇게 지나오고 있습니다. 초창기 발대식 때는 상당히 많았어요. 조금 아쉽게도 점점 줄어들어가지고, 처음에는 그때 한 60~70명 되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현재 상태, 현재까지 남아 있는 회원들은 물론 거기에는 이사 간 사람들도 있고 여러 가지가 변동이 있겠지만, 한 절반, 절반 못 미칠 정도로 현재 아직까지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9) 북정마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역사문화, 역사문화 하는데, 나는 우리 마을 자체가 이게 역사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달동네를 구경할 사람도 있겠지만, 또 그 다음에 한양도성을 투어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우리 전에 옛날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골목길만 탐방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이제 그런 부분들을 말씀을 드려보면, 바둑판같은 골목길 다녀보면 자기네들은 짜증나서 못 다닌대요. 이런데 와서 꼬불꼬불한 골목길, 꼭 미로 같아요. 한번 가면 진짜, 우리는 길을 다 외우고 있지만 그분들은 이리로 갔다가 어디로 가는지 길도 잘 몰라요. 그 사람들 말씀 들어보면 이런 게 옛날 시골길이고 굉장히 정겹다고 그래요. 그런 여행객들도 많고, 심지어 철 바뀌면 매번 단골로 찾아오는 그런 단체들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 그만큼 내가 볼 때는 우리 마을을 사랑하는 외부인도 있으니까, 우리가 당연히 우리 마을을 더 지키고 더 아름답게 꾸며야 되겠다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가능하면 그리고 아까 또 좀 현실적으로, 재개발이 된다면 여기 대부분 어르신들이 다 쫓겨나야 돼요. 보상해줘 봐야, 어디 가서 전세도 못 얻습니다. 여기 다시 들어와서 살 수도 없어요. 왜, 자기 집을 주고도 돈을 몇 억씩을 더 보태야 되니까. 그러면 이 마을이 완전히 해체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없어집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우리 이 마을이 북정마을이 저 한양도성과 만해 한용운 선생 심우장과 함께 자손만대 보존되기를 사실 바랍니다. 대부분 주민이 그렇습니다. 요즘 집은 없어도 차는 있다는 말도 있다시피, 여기 어디 공영주차장 같은 거, 그런 거를 조금 만들어 줬으면 좋겠고, 마을 앵커시설도 좀 어떻게 지원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가장 아쉬운 게 공영주차장 같은 거 좀 어떻게 만들어주셨으면 아주 고맙겠다고 생각합니다.
개요
구분
가로/마을 , 공공시설
지역
성북구
분야
시민생활
시기
201910
출처
연관 미래유산
북정마을
북정마을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