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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가게를 찾아서-중국식 제과점 [융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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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4 조회1251 작성일2023.11.07
오래된 가게를 찾아서-중국식 제과점 [융태행]



‘이번에는 어디로 떠나볼까?’
평소 서울에 있는 근현대 건축물이나 흔적을 따라 걷는 걸 좋아한다. 너무 먼 과거는 나와 상관이 없는 것만 같고, 현대는 살고 있는 시대라 떠나온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곳들이 있다. 오랜 서점과 식당, 예술가나 정치인이 살던 집 등. 이런 장소를 둘러보다 보면 가까운 과거는 어쩐지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여행지를 고르는 마음으로 서울미래유산 스티커 스탬프 수첩을 펼쳐본다. 관심 있는 시대가 근현대이다보니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곳을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장소에 배부된 스티커를 하나씩 모아 붙이다보니 꽤 많이 모아졌다. 스티커를 붙이지 못한 곳 중 중국제과점 융태행이 눈에 들어온다. 언젠가는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융태행으로 가는 길
버스를 타고 남대문 시장 역에서 내리자마자 골목으로 들어간다. 먹자골목이라 식당이 즐비하다. 목적지는 이 좁은 골목 안, 한 호텔 건너편에 위치해있다. 융태행 제과점은 1957년 개업한 화교 과자점이다. 처음에는 플라자호텔 남쪽에 있는 한화빌딩에 위치해 있었다. 그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1995년에 지금 위치로 이전했다. 1대 사장이 은퇴한 후 직원이었던 2대 사장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융태행 제과점 ⓒ김예슬융태행 제과점 ⓒ김예슬
 

 
가게는 자그마한 2층 건물이다. 한자로 ‘융태행’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낯설게 느껴진다. 이미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와있는 느낌이 든다. 건물 앞에 있는 담장도 눈에 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벽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모양이 독특하다. 건물의 사용승인일은 알 수 없지만, 토지 이동일이 1953년으로 나온다. 건물이 지어지며 토지가 구획되었을 수 있으므로 195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 아닌지 추측한다. 작지만 오랜 분위기가 남아있는 건물은 융태행 브랜드 역사에 분위기를 더한다.
사장님 말씀에 따르면 가게는 목조 건물로 1층은 상점, 2층은 가정집으로 지어졌다. 가게에 들어가면 오른쪽에 있는 문이 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분주하게 오가는 직원들이 보인다. 문 안쪽에는 짙은 고동색을 입은 나무 계단이 있다. 두툼한 목재 난간이 꽤나 튼튼해 보인다. 거실과 부엌을 갖춘 가정집구조인 2층은 현재는 직원 휴게 공간 및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융태행 제과점 상자 ⓒ김예슬융태행 제과점 상자 ⓒ김예슬
 


융태행은 원래 제과 뿐 만 아니라 잡화용품을 파는 상점이기도 했다. 현재는 빵과 과자를 만들어 파는 제과점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벽을 따라 알록달록한 원색 상자들이 쌓여 있다. 빨간색은 견과류가 들어간 월병 ‘팔보’, 초록색은 팥이 들어간 월병, 보라색 상자는 대추가 들어간 월병이다. 주황 상자는 호두가 들어간 쿠키인데, 겨울에는 카스텔라도 만든다고 한다. 융태행은 첨가물 없이 정통 방식과 재료를 고수하여 만들어 유통기한이 짧다. 겨울에만 카스텔라를 만드는 이유는 카스텔라 빵 보관 때문이다. 다른 메뉴보다도 보관하고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상품만 만들어 팔겠다는 결의가 느껴진다. 손님들이 계절마다 융태행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자가 쌓여있는 벽에는 서울미래유산스티커 네 종류가 붙어있다. 융태행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2020년이었다. 서울미래유산은 ‘100년 후 보물을 준비한다’는 문구 아래 의미 있는 장소나 영화 등 서울에 대한 유·무형물을 유산으로 지정하는 보존 사업이다. 자격은 넓지만, 아무것이나 서울미래유산이 될 순 없다. 융태행 스티커는 서울에서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아온 그 가치를 인증하는 표식이다. 


 

융태행 제과점 안에 있는 서울미래유산 스티커 ⓒ김예슬융태행 제과점 안에 있는 서울미래유산 스티커 ⓒ김예슬
 
융태행 제과점 입구에 붙어있는 서울미래유산 현판 ⓒ김예슬융태행 제과점 입구에 붙어있는 서울미래유산 현판 ⓒ김예슬
 



융태행 제과 종류
융태행은 종류 상관없이 상자가 각 6천원으로 가격이 동일하다. 다 사고 싶지만, 일단 두 개만 사보기로 한다. 뭘 살지 고민하고 있는 중 중국어를 쓰는 손님들이 들어온다. 계산을 한 후 서울미래유산 스티커를 들고 인증사진을 찍고 있는데 젊은 손님 한명이 나에게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궁금해서 와봤다’고 하니 ‘여기를 어떻게 아셨지?’라며 신기해하는 눈빛이다. 자신을 한국 대학교를 다니는 유학생이라고 소개한다. 중화권 친구들 사이에서 이 제과점이 유명한데, 추석 같은 명절에는 꼭 찾는다고 한다.
중화권, 특히 중국에서 월병은 우리나라 송편처럼 추석에 꼭 먹는 음식이다. 이름도 ‘달을 닮은 떡’이라는 뜻이다. 지역마다 들어가는 재료와 만드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융태행에서 만드는 월병은 북방식이다. 융태행은 월병뿐만 아니라 모든 제과 상품을 직접 만드는데,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한다. 이런 이유 덕에 한국에 거주하는 중화권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행객들도 자주 찾는다고 한다. 같은 음식을 두고도 어떤 이에게는 향수를 달래주는 익숙함이고, 어떤 이에게는 일상을 환기시켜주는 새로움이 된다. 융태행은 누군가에게 추억처럼, 누군가에는 처음처럼 오랜 시간 맛과 이름을 지켜왔다.
 
내가 산 융태행 빵
집에 오는 동안 가게에서 산 상자를 뜯어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느라 힘들었다. 융태행은 포장도 직접 하는 제과점이기 때문이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자마자 처음 뜯어본 상자는 견과류월병이다. 상자 속 포장이 지퍼백으로 되어있다. 월병 안에는 젤리 식감이 나는 말린 과일과 견과류가 들어있다. 사실 ‘월병’하면 굉장히 달 것 같은 편견이 있었는데, 예상 외로 기분 좋은 단 맛이다. 달짝지근한 월병을 먹고 있자니 따뜻한 차 한 잔이 생각난다. 다른 하나는 호두쿠키였다. 딱딱한 질감인데 입에 넣자마자 부드럽게 부서진다. 버터 쿠키가 생각나는 익숙한 맛이지만, 아는 맛 중에서 최고다. 특히 쿠키를 입에 넣자마자 화덕에서 묻어온 듯 불향이 퍼지는 게 특징이다. 사자마자 바로 먹어보시기를 추천 드린다. 향과 맛 때문인지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생각난다. 급히 드립백 커피를 내려서 함께 마시니 근사한 홈카페가 된다. 식탁에 이색적인 디저트를 풀어놓고 즐기니, 긴 여행을 마친 후 마치 캐리어를 풀고 여운을 즐기는 것만 같다.

 
(왼) 견과류월병 (오) 호두쿠키 ⓒ김예슬(왼) 견과류월병 (오) 호두쿠키 ⓒ김예슬
 
 


융태행의 의미
낯선 땅에서 고향의 전통적 방식으로 음식을 만든 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을 지라도 어느 순간 사명처럼 여기게 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전통을 지킨다는 건 편리한 방식을 제쳐두고, 불편을 기꺼이 감수해야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내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시작했을지라도, 고향을 생각하며 찾아오는 손님들을 떠올리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서울 인구 약 941만명.(출처 KOSIS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 23년 8월 기준) 그 중 약 25만명이 등록외국인이다.(출처 서울특별시 열린데이터광장)  등록외국인은 대한민국에 90일 이상 초과하여 머물려고 입국한 사람들을 말한다. 여기에 17세 미만 어린이 및 청소년, 종교나 문화예술 직업으로 인해 온 사람, 외교와 공무 수행자의 가족 등은 제외된다. 귀화를 한 해외 국적자 또한 포함되지 않은 숫자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서울 속 ‘우리’ 안에 담긴 다양성은 꽤나 넓다.
추석에 월병을 먹으며 저마다 명절을 기념하고 가족을 떠올렸을 중화권 사람들을 떠올린다. 중국, 대만, 홍콩 등. 비행기로 몇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때로는 다른 대륙에 있는 나라들보다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역사나 정치적으로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융태행 과자를 먹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확실히 이웃 같다. 가게에서 만난 화교 사장님, 대화를 나눈 중국인 유학생 손님, 융태행을 오가던 사람들이 생각나서다. 여행이 평소와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과정이라면, 융태행을 찾아 떠난 건 확실히 좋은 여행이었다. 서울 어딘가에서 융태행 과자와 쿠키를 먹고 있을 누군가에게 남은 한 해가 따뜻한 계절이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2023년 서울미래유산 홍보용역 – 김예슬 작가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