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시간을 걷다 [연남동기사식당거리, 경의선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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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8.03
서울의 시간을 걷다 [연남동기사식당거리 > 경의선숲길]

<홍대입구역 전경>ⓒ이엘림
최근에 즐겨 본 드라마에 천년이 지난 전생에 걸었던 길을 다시 걷는 모습이 나온다. 전생에서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던 길 위에서 한을 풀기라도 한 듯, 여주인공은 과거를 잊어버리고 현생을 살아간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길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현재를 살아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옛 추억이 생각나 그리운 길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거리는 미래에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연남동은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다시 활기를 찾은 모습이다. 거리 위에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거나 맛집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그리고 필자처럼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은 잠시 북적이는 거리에서 시선을 돌려 연남동기사식당거리를 가장 먼저 찾아갔다.

<연남동 감나무집 기사식당 전경>ⓒ이엘림
연남동 기사식당거리는 1970년대 후반, 경의선 철길로 인해 개발이 늦었던 이곳에 식당이 들어서고 택시기사들이 식사를 하러 왔다가 넉넉한 주차 공간에 차를 대고 잠시 쉬어가던 곳이다. 지금은 감나무집 기사식당이 여전히 굳건한 모습으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고 주변으로는 맛집으로 소문난 곳인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식당도 보인다.
<연남동기사식당거리의 한 카페>ⓒ이엘림변화하고 있는 거리에 외관은 과거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새로움을 녹여낸 카페도 제법 많아졌다. 필자는 잠시 들렀다 가는 곳이지만 여기에서 오랫동안 살아오신 분들의 눈에는 이 변화가 어떻게 다가올지 문득 궁금한 순간이다.
<감나무집 기사식당 옆 공영주차장 전경>ⓒ이엘림과거 택시 기사들이 넉넉한 주차공간에 차를 대고 식사를 했던 공간이었던 만큼 길가 곳곳에 주차 공간이 보인다. 택시는 비록 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예전과 같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골목 안쪽으로도 변신 중인 상가들이 많은 걸 보니, 조만간 연남기사식당거리도 이전과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반겨주지 않을까 싶다. 연남동을 찾는 이유가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골목 사이의 숨겨진 공간을 찾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일 테니까.
연남동 기사식당거리를 지나 연남파출소 뒤편으로 넘어오면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경의선숲길공원이 반겨준다. 버려진 철길이 시민들의 산책로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 되지 않았다. 남북을 오가는 가장 많은 노선을 운영하던 경의선이 지하화 되면서 지상에 있던 철길은 폐선하게 되었고, 서울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 철길을 따라 2012년 대흥동 구간부터 시작하여 염리동, 새창고개, 연남동, 원효로, 신수동. 와우교 까지 2016년에 완공한 무려 6.3km의 긴 선형의 숲길공원이 만들어졌다.
<경의선숲길 전경1>ⓒ이엘림
<경의선숲길 전경2>ⓒ이엘림그린테라피를 좋아한다면 연남동의 시끌시끌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잠시 담소를 나누며 걷기에 좋은 코스다. 한없이 펼쳐진 초록빛 카펫 위를 걷다 보면 이곳이 도시인지, 숲인지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한껏 신난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가족의 모습도, 편안한 옷차림을 하고 잠시 바람을 쐬러 나온 사람들도 보인다. 사람들을 실어나르던 철로와 잠시 멈추어 쉬게 하는 휴식 공간, 서로 다른 역할의 두 장소가 한 공간에 자리하는 곳이 경의선숲길공원이다.
<연남동 공영주차장 전경>ⓒ이엘림경의선숲길공원과 함께 남겨진 공간들도 연남동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주차공간이 되었다. 길게 뻗은 주차장임에도 필자가 얼마 전 방문했을 때 빈자리 없이 채워져 있었다. 2년 전 꽤 자주 들렀던 해장국 집이 카페로 변한 것을 보고 적잖은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지금의 연남동이 만들어진 것이니까.

<연남동 전경>ⓒ이엘림
겉에서 봤을 때는 아무것도 없을 듯한 골목 사이로 들어가면 처음 온 사람들은 누구나 “우와” 하고 신기해 할 만큼 다양한 모습들이 펼쳐진다. 필자는 자주 이 골목을 지나 다녔음에도 아직 앱을 켜고 목적지로 향한다. 내내 지도만 쳐다보며 걸으니 그럴 수밖에, 차라리 계획 없이 돌아다니며 사람 구경, 거리 구경을 하는 것이 연남동의 매력을 알아가기에 좋지 않을까 싶다.
<경의선숲길 빨간우체통>ⓒ이엘림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엽서, 지금의 연남동이 어떤 모습일 지 예견한 듯 빠르게 흐르는 디지털 사회에 기다림의 미학을 전하는 우체통이 숲길에 자리하고 있다. 직장인이 일주일의 피로를 씻어내기 위해 찾던 곳이자 청춘을 가득 누리던 공간, 이 곳이 1년 뒤에는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마음 속 엽서에나마 적어본다.
영화 ‘코코’를 보면 영혼들이 두번째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 죽음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때이다. 그만큼 누군가가 기억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영영 사라질 철로를 공원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쉬어가게 한 것은 어쩌면 단순한 도시 재생을 넘어 미래에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2023년 서울미래유산 홍보용역 – 이엘림 작가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