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유산 만나보기

미래유산 찾아보기

국립 4.19민주묘지

공유하기 리스트
추천5 조회7703 소재지 강북구
국립 4.19민주묘지 정문
개요
대상
국립 4.19민주묘지
인증번호
2013-026
주소
강북구 4.19로8길 17
선정연도
2013년
건립시기
미상
건립용도
묘지
이력사항
  • 1961년 국무회의에서 공원묘지 설립 결의
  • 1962년 기공식(재건국민운동 본부)
  • 1963년 묘지준공 및 기념탑제막
  • 1964년 서울시로 소유권 변경 등기
  • 1993년 성역화 사업 착공
  • 1995년 4.19국립묘지관리소 직제 신설, 성역화 사업 준공, 국가보훈처로 관리이전
  • 1997년 국립 4.19 묘지규정 제정(대통령령 15360호)
  • 2006년 ‘국립4.19묘지’에서 ‘국립4.19민주묘지’로 개칭
  • 2015년 국가보훈처로 소유권 변경
보존필요성
  •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4.19민주화운동의 희생 영령 199위를 모신 묘지
  • 4·19혁명의 산교육장임과 동시에 우리나라 민주이념의 성지로써 보존 가치가 있음
설명
국립 4.19민주묘지는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4.19민주화운동의 희생자 472위가 안장된 묘지이다.('21.12 기준) 서울특별시 강북구 4.19로 8길 17에 위치한다.

1962년 기공식을 갖고 1963년에 준공했다. 조성 당시 부지는 3천여 평이었으나 1993년 성역화 사업을 통해 약 3만 평(96,837㎥)으로 확장되었다. 2006년에 ‘국립 4.19묘지’에서 ‘국립 4.19민주묘지’로 개칭되었다. 중앙에는 4.19혁명의 기상을 상징하는 7척 높이의 탑주 일곱 개가 우뚝 솟아 있고, 주위에는 수호신상 및 20개의 만장이 설치되어 있다. 2023년에는 기존 부지를 활용하여 묘지가 안장될 수 있는 신규 묘역을 확장시켜 4.19민주화 관련 공로자의 안장이 가능하도록 관리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경제는 무너지고 외국 원조에 의존해 살아갈 당시 자유당 정권은 집권 강화를 위해 부산 정치파동, 사사오입 개헌, 반대세력에 대한 폭력 등 부정과 탄압을 거듭했다. 이에 실망한 국민들이 1956년 민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지지를 보내자 자유당은 1960년 3.15부정선거를 일으켰다.

1960년 4·19혁명의 시발점이 된 1960년 대구2.28학생의거는 대구에서 개최될 민주당 선거 유세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발생된 부정선거 규탄 항의 시위였다. 1960년 4월 19일, 선언문을 낭독한 학생들은 거리로 나왔고 시민들이 합세하여 시위대는 10만 명을 넘었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고 이기붕 일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허정 내각수반이 과도정부를 이끌었으며 학생들은 파괴된 질서를 회복하는 데 힘썼다.
주변현황
대중교통
(버스)
  • 정류소명: 국립 4.19묘지(09―197)
  • 버스번호: 104번, 1119번
  • 도보시간: 1분 ~ 3분
대중교통
(지하철)
  • 수유역 6번 출구 지선 1119(419방향) 환승 4·19공원 앞 하차,
    수유역 2번 출구 마을버스 강북 01 환승 4·19공원 앞 하차
  • 도보시간: 28분 ~ 30분
주차장
주차비용
무료
주차대수
100
주차시간
9시 ~ 18시
위치
조사목록
조사목록 - 분류, 명칭, 저작권자, 출처, 상세보기, 참고자료로 구성
분류 명칭 저작권자 출처 상세보기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