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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정동 철공소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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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46 조회1133 작성일2022-11-10 17:12:17.0
설명(자막)
입정동 철공소 골목 - 심층인터뷰 신학기의 추억


이 인터뷰는 서울시 미래유산 심층기록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일시는 2021년 10월 18일 장소는 서울시 중구 입정동 을지로 15,17길 일대

구술자는 대우목형 대표 장종일입니다.



1.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장종일이고 여기 3-3구역의 부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여기 한 65년 되는데 내가 여기 18세 때, 이렇게 재개발이 들어와 가지고, 건설사가 한 번에 하기 힘드니까 분류별로 개별로 (구역을) 나눠버린 거야.



2. ‘입정동 철공소 골목’의 범위은 어떻게 되는지요?



여기 전부 다죠 을지로서부터 청계천까지가 다 제조업이었죠.



3. ‘입정동 철공소 골목’은 언제부터 형성되었습니까?



일제 강점기 때 인거죠. 내가 어렸을 때 집이 원래 마포였는데. 8살 때 청계천에 개천이 있었어요. 그 때는 개천이 흐르고 있었거든. 내가 그때 8살 때 의정부로 갔었기 때문에, 그러고 나서 이제 18년 만에 여기로 청계천에 왔기 때문에. 그 오니까 일제강점기 때부터 여기가 시작이 되었다하더라고. 청파동, 입정동, 청계천 이렇게 되서 산업구조가 시작이 됐다 하더라고



4. 사업을 시작하신 계기는 어떻게 되시나요?



직장을 하다 그때 기술을 배워서 자립을 한 거야. 그때는 그런 조건이 좋았어, 내가 돈만 있으면 공장 얻어서 공장 할 수 있단 말이야. 일은 항상 들어오니까.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와서, 문래동 같은 경우에도 똑 같아. 여기 있던 사람들이 거기 가서 공장 차린 거야. 거기도 똑 같았어, 한 사람 한사람씩 건물에 들어가니까 집주인들이 임대 받는게 괜찮구나, 그래서 싹 헐어서 공장을 준거예요.



5. 철공ㆍ금속ㆍ정밀기계 산업이 모여든 이유가 있는지요?



뭐 모여든 게 이제 공구상이 생기고 그게 한쪽으로 자꾸만 모이다보니까, 이게 집이 다 일본집이에요. 여기 다 청계천이 일본집이다 보니까, 세입자들이 하나 들어오니까 건물주들이 이걸 임대주고 받아가지고 강남 가서 땅 사가지고. 우리 여기 집주인도 똑같애요. 여기서 살다가 이제 강남으로 이사를 간거지.



6. 골목이 가장 활성화 되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여기가 팍 일어난 게 70년대지. 내가 76년도 그때 왔는데 무척 활성화되어서 엄청 바빴어. 그때 당시에는 공장에서 다 먹고 잤어요.
거의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라, 여기서 무조건 올라오기만 하면 공장에서 먹고 자고 했으니까. 시골에서 올라와서 그 사람들이 기술 배우려고 여기 올라 온 거지.



7. 당시 완제품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은 어떻게 되어 있었나요?



나는 이제 이걸(주물) 만들잖아, 만들면 주물을 부어서 나오면 가공을 해서, 완제품 만들면 도장을 해서 나가잖아요. 그러면 세운상가, 올라가면 컴퓨터야. 그 밑에 전자, 그 옆에 전기부품 , 일로 넘어오면 공구ㆍ기계 이렇게 통합이 되니까.
그때는 다닥다닥 다 같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해서 금방가면 주물공장이 있고, 재료가게도 있고, 그때는 아주 잘됐죠.
모든게 빨리빨리 되고, 그래서 전국이나, 학생들이나, 외국에서 온 애들도 청계천 오면 빨리 된다는거야. 다른데 맡기면 한 달 ,두 달 걸리고 안나와요 물건이.
근데 청계천이 오면 다 여기에 복합이 되어있으니까 어디가면 뭐가 있고 어디가면 뭐가 있고 다 있으니까. 금방 되는거야 물건이 금방 나오는거야 그래서 샘플을 여기서 다 뽑아가는거야.



8. ‘입정동 철공소 골목’의 시대에 따른 변화는 어떻게 되나요?



1970~80년대까지는 그냥 했었어요. 근데 1990년 중반 들어서부터 IMF가 터졌잖아요. 그러고 나서 이제 완전 제조업이 확 뒤집어졌다고, 그리고 나서 돈 있는 사람들이 2000년대부터 기계화로, 자동으로 다 나간거지.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수동이야. 아날로그란 말이야 , 그러다보니까 나가는 사람들은 투자를 해서 크게 잘 나가지.
그러니까 그게 단점이 ‘청계천’이예요, 지금 샘플 나오잖아요? 바로 그걸 가지고 중국 간다고.
그럼 금방 한 일주일이면 나와. 그 정도라니까? 그래서 샘플은 항상 청계천에서 만들어, 그래서 대기업에서도 먼저 와서 여기서 해가지고 가요. 하청업체들이.



9. 인터넷의 영향은 없나요?



인터넷 영향은 별로 없어요. 그것은 이제 내가 인터넷을 신청을 해 가지고, 인터넷 가입비를 주면 그게 광고가 돼서 오겠지만. 근데 해도 연락 없어요, 그냥 찾아오지.



10. 찾아오는 손님들은 어떻게 변했나요?



옛날에는 업체마다, 기업마다, 개인이 다 거래처가 되니까. 그런 사람들이 이제 큰 데는 나가서 크게 되고. 삼성 하청업체를 맡아 일 하던 사람들은 나가서 화성 쪽으로, 수원 이쪽으로 가서 크게 된 데가 많죠.
여기는 지금 오는 게 이제 소규모죠, 옛날같지가 않지. 옛날에는 대기업들이 많이 왔거든, 토요일ㆍ일요일날 많이 왔어요. 근데 지금은 이제 아예 안 오죠.



11. 기술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은 없나요?



아예 없어요. 왜냐하면 이제 학생 작품을 만들어주면 학생들이 신기해한다 말이야, 아 이쁘거든. 근데 막상 이제 졸업해서 오면 한 달, 일주일도 못 있어요.
왜냐하면 이렇게 서서 12시간 있겠어요? 이게 서서 배워야하는 직업이거든. 제조업이 주물은 앉아서 해야 되고, 그래서 주물하는 사람들은 앉아서 하기 때문에 허리가 다 망가졌어요.
저희는 서서하기 때문에, 나 이거 배울때도 집에서 하지말라 그랬거든. 왜 집에가면 쥐가 나서 잠을 못 잤어요, 밤이면 꼭 12시ㆍ1시에 쥐가 나더라고. 부모가 ‘너 왜 사서 그걸 하냐, 따른 것을 하라고’, 난 내가 좋으니까 끝까지 해서 배우고, 기술자가 되고 자영업을 하는거지.



12. 앞으로 후계양성은 어떻게 되나요?



후계양성이 이제 직업훈련소가 없어져버렸잖아요, IT로 딱 들어서버렸잖아. 그러니까 애들이 기계 힘들여서 배우려고 하지 않잖아.
그러니까 제조업이 자체가, ‘공고’ 자체도 없어져버렸어요. ‘한양공고’ 없어졌죠? ‘공고’ 내에 ‘금속과’가 있고 ‘목형과’가 있어요. 그게 다 없어져버렸다고.
그러면 이제 기초가 ‘주물ㆍ목형’인데, ‘설계’ 그게 없어져버렸잖아. 그러니 무너져있는 상태에서 뭘 배울 사람이 없다니까. 지금 우리 아들도 대학 나와서 졸업해서 취업을 했지만, 내가 이걸 하라 그랬어. 근데 걔도 전시회 갔더니 전문가들이 안 하는게 낫다고, 하지 말라고.
여기 있는 사람들 아들들은 나와서 했는데, 거의 하다가 아버지 돌아가시면 포기하더라고. 외국인은 여기 안 맞아요, 다른데하고 틀려. 왜냐하면 우리같은 경우에는 하나하나 일일이 알려 줄려면 힘들단 말이에요, 근데 걔네는 (6개월)연수를 받고 들어오잖아요. (그리고)이리로 오라면 안 와요 또, 무섭다고 안 온다니까.



13. 앞으로 운영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유일하게 남은 게 길 건너 신림동, 이제 그쪽만 남아있는데. 거기를 지금 LH에서 서울시하고 공유해가지고 건물을 짓고 있어요. 거기로 이제 제조업만 들어가게끔, ‘지식산업’ 해가지고 LH가 하고 있어요. 근데 모르겠어요 임대가 비싸면 못들어가는거야.



14. 서울미래유산으로써 ‘입정동 철공소 골목’이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하시나요?



이게 없어지는게 이제 마음이 아픈거죠, 딴건 없죠. ‘제조업’이라는 것은, 나라가 발전하는데 제조업이 활성화되고 나아가야 된다는거야. 독일은 고등학교 나와도 취업이 잘 되잖아요.
우리나라도 원래 그랬어요. 1970년대는 졸업만 하면 무조건 취업이 됐다고, 근데 지금은 나와도 안 되고.
여기는 먹고 살기 위해서 내 생활의 터전이고, 여기서 다 가족들하고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이 살았었는데. 그게 좀 후회스럽죠.


개요
구분
가로/마을 , 공원/광장
지역
중구
분야
산업노동
시기
202110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