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자막)
동행-매력 서울 투어 17회차
올림픽의 성지가 된 백제왕도 한성
가을단풍 송파여행
저는 오늘 여러분들한테 송파 관련된 미래유산투어를 안내해 드릴 역사 해설가 안지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석촌호수를 걸으면서 오늘 사실 미래유산 개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미래유산이라고 하는 게 저희가 정비가 된 지도 얼마 안 됐고 모든 지역구마다 골고루 있는 건 아니어서 여러분들이 오늘은 미래유산에 해당하는 실제 가는 장소는 석촌호수하고 사진 자료를 통해서 몇 가지를 보실 텐데 이제 이 송파구 쪽에 있는 미래유산은 발굴이 추가로 필요한 단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삼전도비 실물 보신적 있으신가요? 사실 이게 자랑스러운 역사는 아니기 때문에 삼전도비가 가지고 있는 역사 수난도 엄청났어요. 지금 앞면에 우리가 글씨가 좀 많이 지워져 있기도 하지만 앞면에는 글자가 두 종류예요. 만주어와 몽골어가 쓰여있어요. 그리고 뒷면이 한문이에요. 만주어, 몽골어, 우리는 이걸 삼전도비라고 부르는데 그때 당시에는 청태종공덕비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훌륭하게 우리를 이렇게 해가지고 얼마나 인자하게 우리를 이렇게 용서를 해주었나 청태종의 업적을 크게 말하는 그런 비석이 있는데 이게 굉장히 역사가 구구절절합니다. 여러분들 인조 시기에 있었던 병자호란을 기억하실 텐데 그 병자호란을 겪고 나서 여기 삼전도에서 굴욕을 당하잖아요. 삼전도에 청태종이 위에 앉아 있고 3배 9 고두례(叩頭禮) 기억하시나요. 머리를 땅에다가 막 피가 날 때까지 박으면서 절을 했다는 그래서 청태종이 이건 야사예요. 청태종이 “안 들리는데?” 해가지고 머리를 더 세게 박느라고 여기에 피가 났다는 야사가 있고 남한산성이라는 영화가 또 있었죠. 그 영화에 보면 뒤에 신하들 다 울고 있고 실제로는 이렇게 하지는 않고 그냥 이렇게 있겠죠. 그냥 그거 자체가 굉장한 굴욕이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중에 우리가 항복을 하고 나서 청태종이 돌아가면서 이제 항복했으니까 이 전쟁에 대해서 자기가 얼마나 우리를 인자하게 용서를 해줬고 그리고 우리가 다시는 이 청나라를 무시하지 못하고 이 굴욕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이 비석을 세우라고 명령을 합니다. 비석을 우리에게 세우라고 그랬어요. 비문을 우리에게 쓰라고 했어요. “반성문 너희가 써. 우리가 먼저 요청을 했는데 너희가 안 들어준 거니까” 우리도 이걸 어떻게든 안 쓰려고 했어요. 되게 우리한테 써서 좋을 게 없는 거였기 때문에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했냐면 이 공덕비 규모 엄청나잖아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큰 비석 몇 개 없습니다. 몇 개 없는 높이가 거의 4미터에 가까운 비석인데 이 돌을 또 충주에서 따로 캐온 거예요. 이거를 캐가지고 이동시킬 수단이 없어서 이거 옮기는 데만 거의 1년 가까이 걸렸어요. 그때는 운송수단이 별로 없으니까 총 세워지기까지 과정이 총 3년 2개월 정도 걸렸는데 정말 굴욕의 대공사, 역경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석촌호수는 본래 원래 있었던 호수로 만든 게 아니고 원래는 한강의 본류가 이어지는 물길이었어요. 그러다가 우리가 지금 들어와 있는 잠실, 송파구 잠실이라는 데가 처음 생길 때 원래 잠실 땅의 대부분이 원래는 이 매립으로 생긴 땅이거든요. 1971년도에 한강에 공유수면을 매립하는 작업을 통해서 잠실에 대부분의 땅이 생겨나게 됩니다. 원래 여기는 섬이 몇 개가 연결이 되어 있는 땅이었고 한강의 물길을 몇 군데를 막아서 이 지역을 만들게 돼요. 강남이 탄생이 된 거죠. 송파구가 지금 자치구 중에서 인구가 제일 많아요. 66만인가 그런데 엄청 많고 가장 살기 좋은 자치구로 뽑힌 곳 중의 하나예요. 여기가 이제 아이를 키우기에 환경이 좋다고 이렇게 나오는 데 여러 가지 시설들이 같이 들어가 있고 자연환경도 되게 좋은 편이에요.
여기가 서호고 여기 터널을 통과하면 동호로 연결이 됩니다. 실제로는 원래는 한강물의 일부였던 지류를 막아서 호수로 만들었다고 보시면 되시고 처음에 그걸 막았을 때는 원래 흘러야 되는 물을 막아 가지고 물이 되게 더러운 곳인데 이렇게 깨끗하게 정비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사실은 1988년에 롯데월드가 개장을 하면서 여기도 이제 관광지로서 같이 정비를 하게 됐다고 보시면 되겠죠. 서호랑 동호에 있는 나무 전부가 벚나무에요. 사실 이 벚나무는 봄에 가장 예쁘게 나지만 다 낙엽이 이렇게 단풍이 드는 거기 때문에 여기에 낙엽 풍경도 단풍 풍경도 벚나무가 조성을 하고 있고요. 이 벚나무는 송파구 잠실 주민들한테 기증받은 거예요. 그래서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일반인도 있고 단체도 있어요. 벚나무 묘목이 비싸요. 그래서 왕벚나무의 묘목을 이런 식으로 기증을 받아서 이름을 같이 이렇게 공제를 해주는 걸로 받았습니다.
저기 뒤쪽에 만국기 펄럭이는 것이 보이시죠? 본격적인 올림픽 분위기가 물씬 나고 있습니다. 여기도 호돌이와 백호랑이가 있습니다. 이제 올림픽공원이에요. 사실은 여기가 사람들이 올림픽공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올림픽에 대한 내용만 얘기를 많이 하지만 실제 먼저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건 백제 유적이에요. 여기에 올림픽 경기장을 짓기 위해서 땅을 파다가 이제 (유적) 그런 것들이 좀 나오게 됐는데 실제로 처음에는 뭐가 있었냐면 우리가 방금 걸어왔었던 그 석촌호수부터 잠실동 있죠. 저기를 매립을 하기 위해서 굉장한 양의 흙이 필요했어요. 근데 지금 보시면 옛날에 사람들이 여기가 유적인지 몰랐어요. 여기가 유적인지 모르고 그냥 흙이 좀 쌓여 있는 그냥 언덕배기라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산 이름도 없이 그냥 능선이라고만 부르다가 여기를 파는데 뭐가 나오는 거죠? 실제로 역사학자들이 보니까 여기 이거 백제시대의 토성이다 이런 게 나오게 되면서 이거 퍼다가 저기 메꿨으면 큰일 날 뻔했죠. 그래서 그렇게 안 하고 이 토성은 최대한 보존을 하고 토성의 건너편 쪽으로 경기장을 건설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올림픽 공원의 크기가 지금 정도로 커지게 된 겁니다.
(평화의 문 건축가) 김중업 건축가가 (의뢰를) 받았을 때 88올림픽을 한국에서 했다는 걸 각인시켜야 되잖아요. 한국적인 모티브로 만들어 달라고 처음에 섭외를 받은 거예요. 비슷했어요. 그리고 그 처마하고 솟을대문. 솟을대문을 모티브로 이렇게 합니다. 그리고 저 처마같이 생긴 것 뒤쪽 밑쪽에는 사신도를 그려놨죠. 우리나라 전통 문양 중에 사신도라고 있잖아요. 그것을 양쪽 날개에 그렸고 이쪽이랑 반대쪽이랑 해가지고 다 그려놓은 모양이 조금씩 달라요. 추적이랑 현무있고 청룡이랑 백호 있고 사신도를 모티브로 해 놨고요. 가운데 있는 것이 올림픽 성화입니다.
그리고 곳곳에 뭐가 이렇게 툭툭 놓여있는 작품들이 지금 보이실 텐데 지금 약간 훼손돼서 철거된 것도 있기는 한데 210개? 그래서 전 세계공원 중에서 조각품이 단일 장소에 이렇게 많은 데가 우리가 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대요.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죠. 저희는 조각공원 쪽을 조금 걸어서 한성백제박물관 쪽으로 가서 박물관 로비에 커다란 바닥 지도가 있어서 그 장소에서 우리가 너무 멀어서 가지 못한 잠실에 두 군데 미래의 유산은 한번 짚어보고 정리하겠습니다.
한성백제박물관. 어떤 걸 모티브로 건물 이렇게 만들었는지 아시겠나요. 건물 모양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그렇죠 성곽 모양이에요. 성벽의 단면을 잘랐을 때 그 단면의 모양을 모티브로 이걸 만든 거예요. 풍납토성, 몽촌토성이잖아요. 백제 사람이 정말 대단한 게 흙을 발로 밟아 다져서 돌처럼 딱딱하게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어요. 지금 우리가 막 뛰어다니는 여기 능선 언덕이 전부 다 처음 500년 전에 백제 사람들이 발로 밟아 가지고 만든 토성이에요. 거기 우리가 뛰어다니고 있는 거예요. “저기가 정말로 다져서 만든 건지 어떻게 알아!” 이것 때문에 저 토성 언덕의 일부를 한번 단면을 찔러본 적이 있어요. 단면을 잘라봤더니 무지개처럼 층층이 올라가 있는 겁니다. 사람이 발로 밟아서 하나씩 쌓았다는 거죠. 이걸 판축법이라고 해요. 거의 700년 동안 이 토성기법을 유지했는데 나중에 속성이 덥히긴 했지만 실제로 백제가 흙을 가지고 뭔가를 하는 기술은 가장 뛰어났다고 보고 있고요. 이 몽촌토성은 백제 것만 나오진 않아요. 왜냐면 백제가 여기를 잃어버린 이후에는 신라도 들어오고 고구려도 들어오고 맨 마지막에 신라가 차지했죠. 그리고 그 위로 고려시대가 올라오고 그다음에 조선시대가 올라와요. 그러다 보니까 백제층으로 내려가려면 땅을 좀 많이 파야 돼요. 파면은 나와요.
잠실철교의 특징은 한강에서 강남과 강북을 이으면서 여기에 사람이 가는 길도 있고 지하철이 가는 길도 있고 도로가 가는 길도 있어요. 이거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만들었던 한강 임동교 이후로 처음이었어요. 30년대 이후로. 그래서 진짜로 강남이랑 강북이 연결되는 다리라는 것에 의미가 있어가지고 이것도 미래유산으로 해놨는데 사실 우리가 한강 자체가 미래유산이기도 해요. 그런데 한강 미래유산은 한강이라는 이름도 미래유산이에요. 한강이 들어가는 노래도 미래유산이에요. 왜냐면 한강이 가지고 있는 ‘서울이다’ 라고 이렇게 주는 정체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사실은 우리가 서울이다라고 하는 것에 거의 서울미래유산의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이 자체가 다 미래유산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 여기 보시면 아파트가 굉장히 빼곡하죠. 이마저도 되게 옛날 위성지도에요. 이거 바꾸면 여기 더 차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쪽은 사실은 우리가 여기 강북의 중심지에 있는 것처럼 고궁이라기보다는 현대적인 것들이 조금 더 많이 들어가 있는 곳이에요. 그렇다면 여기의 가능성은 뭐가 있냐면 아직 우리가 잘은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나중에 보여주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미래유산이 구석구석에 숨어있을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 송파구에서 우리가 나중에 한 번 해볼 만한 건 뭐냐면 미래유산을 선정할 때 전문위원들이 돌아다니면서 선정하는 것만 있진 않아요. 주로 지역주민들이 제보를 해주시면 그걸로 심사를 하고 가치 평가를 하는 작업을 많이 해요. 그 동네에서 하신 분들이 제일 잘 아니까 그래서 이거는 이쪽 지역은 미래유산이 조금 더 발굴되어야 하는 지역으로 좀 기억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미래유산은 사적지로 지정되지는 않은 것에서 출발을 합니다. 사적은 사적으로 보호가 되니까. 그것 말고 우리가 다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유산을 찾아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쪽은 오늘은 미래유산이라고 해서 석촌호수를 중심으로 조금 보셨는데 사실 이 동네는 백제의 왕도라고 하는 정체성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1500년 전에 고도의 어떤 모습도 가지고 있으면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변신을 했는데 또 여기에서 현대적인 모습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강남이다’라고 했을 때 최초의 강남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여기 몇 개가 있는 거예요. 그런 것들은 100년 지나면 유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 것들을 조금 찾아서 선정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고 오시면서 보셨겠지만 한성백제박물관 로고가 칠지도 로고를 달고 있었어요. 그래서 여기는 초반 백제의 수도 한성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서울미래유산은 사람들이 미래유산이라고 가치를 부여하는데 가장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곳이에요. 그래서 이런 것도 미래유산이 돼? 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것을 오늘 살펴보는 기회였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의 미래유산투어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개요
- 구분
-
상징물
, 음식점
- 지역
-
송파구
- 분야
-
시민생활
- 시기
- 2023-11-04
- 출처
- 2023년 미래유산 홍보용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