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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세종대왕기념관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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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0 조회423 작성일2023-12-22 16:27:29.0

설명(자막)
세종대왕 기념관 관장 차재경입니다.
우리 겨레의 은인이고 또 세종대왕이 남기신 업적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분의 업적을 널리 펴기 위해서 세종대왕기념사업회를 만들고, 기념사업회에서 세종대왕기념관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위업을 널리 펴기 위해서는 어떤 기관이 있어야 되겠다. 그래서 ‘세종대왕기념사업회’를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해서 문교부 내에서 시작이 되었어요. 그렇게 해서 1956년 10월 4일날 문교부 내에서 외솔 최현배(崔鉉培) 선생님이 한글학교 이사장인데, 그 분을 위시해서 교육계 대표들이 모여서 ‘세종대왕기념사업회’를 만들어야겠다. 이렇게 이제 초안을 만들고. 그 후 닷새 후에 이제 510돌(1956) 한글날인 10월 9일날 경기여자고등학교 강당에서 기념식을 끝내고, 거기서 이제 ‘세종대왕기념사업회’를 설립하는 것을 거기서 선포를 하였지요. (이후)1968년 10월 9일 한글날 시작을 해 가지고, 1970년 11월에 (세종대왕기념관이)완공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유물을 수집하는 기간이 3년 걸려서 1973년 10월 9일날 세종대왕기념관을 개관하였습니다.
그 당시 회장님들이나 이사분들께서는 이것이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이니까, 조선왕조를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이제 세종대왕에 대한 업적을 펼려면. 그런데 한자로 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가지고는 안되겠다.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먼저 해야 될 일은 ,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한글을 창제해서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한테 우리 글로다가 배우기 쉽고, 쓰기 쉽게 이것을 만들었듯이. 조선왕조실록을 번역 해야겠다. 거기에 이제 뜻이 모아져서 여러 차례 비용을 교육부에다가 의뢰했던 것이죠.
이미 1967년도에 교육부에서 예산을 받아서 1968년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우리가(세종대왕기념사업회) 번역을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우리가 번역하겠다고 하니까, 정부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 같은 국가기관에서도 못 하는데 이제서야 새로 설립했는데 무슨 그것을 하느냐고” 그러면서 예산을 안 주고 그래서. 그것을 설득해가지고 그러면 조선왕조실록을 하는 게 아니고, 조선왕조실록 중에서 ‘세종대왕실록 ’만큼은 우리가 그 내용을 알아야 되니까. “이것을 예산을 주십시오” 하고 투쟁해서, 가까스로 세종실록을 번역하게 되어서 조선왕조실록 번역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1968년도에 『세종실록』 1집 내고, 1969년도에 2집ㆍ3집을 내고.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서 세종실록을 하다가 보니까, 정부에서도 ‘하는구나’ 이제 제대로. 이래 가지고서 이제 태조(太祖, 1대)ㆍ태종(太宗, 3대)ㆍ정종(定宗, 2대) 해내었단 말이예요. 그렇게 해서 이제 숙종(肅宗, 19대)까지 들어가니까 ‘민족문화추진회’ 지금 ‘고전번역원’의 전신(前身)이죠. 거기가 연산군(燕山君, 10대)부터 번역을 하겠다고 그래 가지고서, 거기하고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나중에 번역을 한 것이죠.
세종대왕은 역대 임금 중에서도 가장 업적이 많습니다. 제일 첫 번째가 한글을 창제하시지 않았습니까? 한글이 오늘날 창제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지금 6대 강국이니 5대 강국이니 이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한글을 창제하였기 때문에 그 한글을 가지고 21세기에 인터넷, 이것을 생각하고 만드신 것 같이. 이렇게 앞날을 내다보며 훌륭한 과학적인 한글을 창조하신 것이죠. 그 일만이 아니고, 여기 ‘일대기실’ 그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분의 업적을 이렇게 그림으로써, 대표적인 것만 그림을 해 놓았습니다. 그 분(세종대왕)은 음악에도 대가셨어요. 박연(朴堧)이 편경(編磬, 전통악기)을 만들어서 그것을 시연을 하는데, 저쪽에 있는 그림이 이제 그것입니다. 저 맨 위 상단에 ‘이칙(夷則, 동양음악에서 9번째 음)’이라는 편경의 음이 약간 높아요, 세종대왕이 들으니까. 그래서 박연더러, 박연은 3대 악성(樂聖) 중에 한 사람 아니에요? 그런 분이 만드는 편경인데도, 음을 제대로 구분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세종대왕이 들으니까 음이 약간 높다. 그래서 박연더러 이칙이 약간 음이 좀 높지 않느냐, 한 번 다시 좀 봐라. 박연이 보니까 (음 사이의)약간 거리가 있다 이거야. 그래서 그것을 다시 연마해서 갈아내고 나서 치니까, 이칙의 음이 제대로 나더라는 겁니다. 이렇게 이분은 인쇄도 그렇고 하신 일이 너무너무 많죠. 그러니까 이런 분의 위업을 널리 선양하고, 또 이것을 후대 국민들에게도 알리고 이렇게 해서 규범이 되게 하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라는 것을 만들고 또 기념관을 만들어야 된다.
세종대왕이 종로에서 나셨잖아요. 영추문(迎秋門, 경복궁 서문) 밖에 통인동(通仁洞) ‘삼각지대’라고 그랬는데. 인왕산하고 삼각산 내려오는 중간이라고 그랬는데, 확실한 위치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처음에 세종대왕기념관을 지으려고 할 때는 종로에다가 사실은 지으려고 했었어요. 그러다가 그것도 조금 찬반들이 많이 있고 그래서 ‘응봉공원(응봉근린공원, 성동구)’이라고, 지금 아마 ‘신라호텔 일대’일 것입니다. 그 응봉공원에다가 거기에 한 백여만 평이상 대지를 해 가지고, ‘민족문화종합센터’라고 세종대왕기념관을 중심으로다가 한 ‘대한민국 민족문화종합센터’ 이것을 건립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했었어요. 그렇게 했는데, 그 때 경부고속도로를 놓고 한참 돈이 저기서 많이 들어갈 때 입니다 그때가. 그러니까 예산이 도저히 뒷받침이 안 되니까, 그렇게 민족문화종합센터를 하는 것이 좀 어려워지고. 그렇게 해서 ‘국립극장’은 지금 장충동 거기에 있지 않습니까? 또 국립국악원은 서초구. 그렇게 해서 이제 세종대왕기념관은, 서울에서 나셔서 서울에서 임금도 하셨으니까. 서울 ‘장안(長安)’에서 찾다가 보니까, 여기가 이제 홍릉(동대문구)인데. 그 일부를 이제 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서 이곳에 (개관)하게 된 겁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보물로써는, 우선 내부 것부터 하면 1973년. 1970년도부터 1973~1974년 이 때, 세종대왕 초장지(初葬地)에서 발굴 작업을 해 가지고. 거기서 세종대왕 신도비(神道碑)를 비롯해서 문인석(武人石)ㆍ무인석(武人石)ㆍ양석(羊石)ㆍ호석(虎石) 이런 것을 거기서 발굴을 해 왔거든요. 세종대왕 신도비가 우리나라 신도비 중에서 가장 크다고 그래요. 그 신도비가 보물이고. 청계천 수표교의 옆에 있던 수표석(水標石). 물에 흐르는 수위를 측정했던 것이죠. 세계 최초의 하천에 물에 흐르는 양을 측정했던 것이니까, 대단한 업적이죠. 그래서 그것도 보물로 다 되어 있고. 그리고 농엄경언해(楞嚴經諺解)라는 게 있습니다. 그것을 7ㆍ8ㆍ9,ㆍ10 네 책을 가지고 있고,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蒙山和尙法語略綠諺解)도 가지고 있고, 또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ㆍ부시언해(部詩諺解), 자치통감사정전훈의(資治通鑑思政殿訓議) 이런 보물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세종대왕기념관을 견학을 오게 된다면, 첫 번째 ‘일대기실’. 이건 세종대왕 재위 32년(1418~1450년) 동안의 일대기를, 업적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그림으로 해 놓은 것이거든요. 세종대왕 어진(御眞)이라든지 또 한글 창제해서 반포한 ‘훈민정음반포도’라든지. 이런 것을 여기서 쭉 보면, 대충 세종대왕의 업적을 알 수 있고. 그리고 세부적으로 들어가서는 이 뒤의 방 ‘한글실’이니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서부터 초ㆍ중ㆍ고등학교 교과서까지 오기에 흐름과 과정. 또 맞춤법 통일한 과정, 이런 것들이 전시되어 있고. 또 ‘과학실’이 있고, ‘특별실’ 이렇게 보고. 야외에 나가서는 세종대왕 신도비 또 거기서 발굴해 온 석물들ㆍ해시계ㆍ물시계, 덕수궁에서 몇 십 년 모시고 있었던 세종대왕 동상을 세종대왕 기념관으로다가 또 옮겨놨거든요. 이런 것을 직접 보고, 체험도 해 보고 할 수가 있지요.
세종대왕은 우리 민족에게 세계 문자사상, 가장 과학적인 문자를 만들어서. 21세기 디지털화ㆍ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한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것이거든요. 그것을 만들어주신 세종대왕. 또 정치ㆍ 경제ㆍ사회ㆍ문화ㆍ국방ㆍ외교 어느 분야 하나도 소홀히 되지 않고, 가장 르네상스 시대를 이루었던 세종시대. 그분의 업적을 전시한 세종대왕기념관. 이것을 머릿속에 담고 세종대왕기념관을 가면은, 그런 것을. 세종대왕이 이런 큰일을 한 위대하신 분이었다는 것을 기억에 남게 해드리는, 그런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개요
구분
문화/체육 , 상점
지역
동대문구
분야
도시관리
시기
2023-10-01
출처
2023 서울미래유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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