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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남대문시장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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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0 조회265 작성일2023-12-22 15:54:04.0

설명(자막)

남대문주식회사를 총괄하는 대표이사 박영철입니다.
과거에 남대문 시장은 전국 의류시장ㆍ아동복ㆍ액세서리ㆍ수입잡화ㆍ안경 이런 것들을 전문유통하는 도매상가였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전통시장으로서 전문도매상가가 형성이 되었던 시장입니다. 남대문 시장 안에서는 ‘원스톱(one stop)’으로 쇼핑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소상공인들 유통 물류센터의 중심이 되었던 시장이죠.
남대문 시장은 하나로 되어 있고요. 시장 안에 정부에서 지원사업을 위해서 ‘삼익’이라는 대규모 점포 상인회가 하나 있고. 그 다음에 ‘자유시장’에도 상인회가 하나 있어요, 건물 안에. 그 다음에 ‘숭례문 상가’가 단일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우리가 34개의 상인회가 있어요. 품목별로 음식ㆍ옷ㆍ그릇ㆍ수입상가ㆍ숙녀복 이렇게 해서 34개 상인회가 있어요.
일제시대까지는 지방에서 특산물, 이런 것들을 부(府)에다가 납품하고. 또 지역에 있는 각 주요 특산물들을 납품하고 남는 물건들을 여기(남대문시장) 와서 판매하는. 인삼ㆍ곡물ㆍ농수산물, 또 여기 창고가 있어요. 남창동(南倉洞)이라고, 창고였고 북창동(北倉洞)도. 옛날에는 물류 창고로 남창동, 북창동 그러는데. 이제 과거에 조선시대부터 물류창고의 역할을 했고. 그게 쭉 일제강점기까지 오면서, 당시는 물류창고의 개념이었지만. 일제시대에 와서는 품목이 약간 바뀐 것이죠. 곡물도 있었지만 의류, 이런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이제 보세 제품들ㆍ곡물ㆍ물류ㆍ과일ㆍ농수산물ㆍ소고기ㆍ돼지고기. 이런 것들이 지금도 보면 이쪽에(남대문시장) 지하가 있어. 당시에 냉장고 없었기 때문에, 냉장고 역할을 하는 고기 저장고도 있었고. 그런 유통의 센터가 쭉 이어져 온 것이야.
해방(1945년) 바로 끝나고는 6.25(1950년)때, 이런 시대로. 미군 부대가 오면서 시장이 조금 변화가 있었던 거예요. 전에는 농수산물ㆍ가공식품 정도였는데, 미군이 들어오면서부터 무엇이 있었냐면. 미군부대 표시한 소시지. 그 당시의 햄ㆍ소시지ㆍ캔 종류. 미군 부대서 수송한 물자들, 군복ㆍ전투화. 그 당시 6.25 때 그런 제품으로 유통의 구성이 바뀌면서, 미군 부대 물자가 이쪽(남대문시장)으로 많이 들어온 것이죠. 그러면서 유통이 술ㆍ주류 이런 것들이 오면서, 옷 같은 것. 그 당시에 ‘사지(Serge)바지’라고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들어오면서 크니까 약간 줄이고, 줄여가면서 팔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제 패션이 서서히 이제 들어오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그 전에는 ‘생필품’의 전문 도매시장이었다면, 6.25후로 미군 부대가 오면서 패션ㆍ가공식품들. 이런 것들이 변화가 왔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하여튼 미군 부대가 들어오면서 옷이나 신발ㆍ의류ㆍ안경 이런 것들이 변화가 오면서 수량이 딸리니까, 만들어서 팔고 이러면서 변화가 오고. 수입품도 이제 미군 부대에서 좀 부족하니까, 일본이나 그런데 가서. 그 때 당시 보따리 장사라고 하지. 사 가지고 와서 팔고, 이렇게 구조가 서서히 바뀌어진 것이죠. (12:49) 그러면서 1970년대 ‘경제부흥기‘가 되면서 제품을 만들게 되고, 의류도 하게 되고(12:57) 생산가공 기술까지 엮어진 것이죠. (13:06) 그 때는 (13:15)일제시대 때 재봉틀이 있어가지고 아주 극소수였고, 디자인해서 제품을 만들정도는 아니었죠.
제일 전통성이 있는 게, 지금 이 건물 옆에 하고 건물 사이에 보면 ‘군복다이’가 있어요. 그게 전통이 (가장)오래 되었다고 보면 되고. 거기에 보면 재봉을 가지고 할머니들이 지금도 옷을 줄여주고 그런 곳이 있어요. 그게 해방 이후에, 6.25 이후에 계속 일했던 자리가 그 자리예요. 그런 것이 있었고, 이제 조금씩 상가 건물은 이제 변화가 된 것이지. 그 다음에 여기서 가공을 하는 게 아니라, 이 주변 회현동ㆍ만리동ㆍ후암동 이쪽에서 제품 공장들이 있어가지고, 그 당시에 도매상하고 판매만 했던 것이죠.
이전에(는) 일반적인 잡화종류ㆍ아동복ㆍ액세서리ㆍ수입잡화 이런 일반적인 상품들은 남대문에서 그대로 유지를 지금까지 하고있고. 숙녀복ㆍ남성복까지도 토탈(total)로 되어 있었는데. ‘동대문제품’하고 ‘남대문제품’하고 그 당시에는 확실히 구분이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의류가 활성화가 되는 것이, 남대문 상인들이 가서 동대문에 의류를 확산을 시키면서 확 커진 것이예요.
그런데 지금은 동대문하고 남대문하고 차별화되는 것은 의류 ㆍ숙녀복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요. 특히 요즘 글로벌 시대이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수입ㆍ구매를 다 하기 때문에. 남대문에서 물건 다르고, 동대문(에서 다르고) 그 차이점은 거의 없고요. 액세서리가 남대문이 주도하고, 안경을 주도하고. 아동복ㆍ수입잡화 이런 것은 아직까지 잘 유지하고 있고, 이 안에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들은 아직까지 도ㆍ소매로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남대문 시장은 교통편이 나쁘지 않고, 지하철도 오고. 남대문 시장은 숭례문 입구가 1번 출구예요. 그 다음에 회현역 5번 출구가 시장 첫, 지하철 입구인데. 그쪽으로 쭉 내려오시면 표시가 되어 있어요, 밑에 바닥에 표시가 되어 있고. 그 다음에 큰 건물들이 4개 동이 있어요. 여기서 관광 가이드가 네 사람이 서 있고, 관광안내소가 있어요. 그러면 거기서 이제 코스별로 시장 안에 지도가 다 있습니다. 동대문은 거의 의류이지만, 남대문에는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수 있는 소모품 거의 없는 게 없어요. 수입은 없는 게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기오면 다 좋아해요. 남대문은 하루ㆍ이틀이면 나름대로 전체를 다 볼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안 왔던 사람들은 모르는데, 옛날 사람들 다 남대문으로 오는 거에요. 남대문은 아이들, 본인 것까지 다 살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들이 남대문 시장의 하나의 장점이에요.
남대문 시장은 서울시나 정부에서도 제1호 국제시장으로 보고 있거든요. 물론 동대문도 있지만, 동대문은 단일 품목 , ‘의류’ 쪽으로 집중이 많이 되어 있고. 남대문은 전체적으로 ‘원스톱(one stop)’으로 생필품이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외국 관광객들이 딱 오면 전통시장으로 남대문을 들리는게 기본코스예요. 또 수학여행 학생들도 오고 그러는데. 이걸 어떻게 ‘현대화’로 가면서 맞추어 가냐. 그것은 상인들의 생각만 바꿔도 될 일은 아닌 것 같고. 건축의 ‘현대화’로 혁신하면서 미래적으로 어떻게 볼 것을, 외국 관광객들한테 각인을 시키고 볼 것을 만들까하는. 남대문 시장은 이번 기회에 적극적으로 거기에 대해서 준비를 하고 하나씩 하나씩 자료를 수집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도 여기 남대문 시장에서 한 40년을 와서 생활하고, 지금까지 와 있어요. 저도 여기서 이제 자녀들 다 가르치고, 또 부모형제 다 이렇게 잘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저희들의 꿈은 남대문 시장이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시장으로 유지하는 게 저희 목표이고요. 그게 꿈이고. 선배로서 후배들한테 이걸 어떻게 유산을 잘 넘겨서, 세계적인 국제시장으로 말해 줄 것인가. 그런 부분들을 지금도 연구를 하고, 지금도 그것을 목적으로 처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장이 6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앞으로 1000년 2000년까지도 외국 사람들이나 누가 와도. ‘아 남대문 시장이 이렇게 해서 전통성을 갖고 있다’라는 것을 하려고 집중적으로 노력하고 있고요.
남대문 시장은 고객들이 와서, 하나의 놀이터가 되고, 편안한 쇼핑이 되고 또 쉬기도 하고, 그럼으로써 먹거리(도) 먹고 쇼핑까지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시장이 유일하게 남대문이다. 없는 품목이 없고, 없는 상품이 없어서 모든 걸 ‘원스톱(one stop)’으로 할 수 있는 시장이 남대문 시장이다.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시장입니다.
개요
구분
시장/상가 , 음식점
지역
중구
분야
산업노동
시기
출처
2023 서울미래유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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