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동영상

2023 서울미래유산 동행매력투어 8회차 해방촌

공유하기 리스트
추천0 조회394 작성일2023-12-19 15:10:04.0

설명(자막)
서울미래유산 동행, 매력 투어 8회차 해방촌

아침 일찍부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오늘 서울미래유산 동행, 매력 투어 해방촌 진행을 맡은 역사 해설가 안지영입니다. 올라가는 구간이 하나 있어요. 왜냐하면 해방촌 자체가 그 마을에 올라가려면 언덕을 통과할 수밖에 없어서 어떻게 해도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애초에 마을 자체가 깎아지르는 거의 남산이죠. 남산 중턱 기슭을 깎아내고 들어간 집들이기 때문에 그 위로 올라가는 구간이 한군데 있습니다. 거기가 하나 있다는 것을 제가 (미리) 말씀을 드리고요.

해방촌 자체에 와보실 일은 없으실 거라고 생각을 해요. 지금 관광지가 됐다고는 하지만 여기가 접근성 때문에 그렇게 많은 분들이 오지는 않으시고 대부분은 이태원 쪽으로 많이 가시죠. 그리고 요새 조금 젊은 분들이 가시는 패션거리 같은데는 저 올라가는 꼭대기 부분이 아니고 아래쪽에 있습니다. 그 부분을 보실텐데 저희가 오늘 녹사평역에서 모였습니다. 대단히 큰 녹지가 옛날부터 있었던 곳인데 녹사평이라는 지명 자체가 그런 뜻이에요. ‘사람이 사는 데가 아니라 풀이 무성하게 있는 들판이다’ 그래서 녹사평이라고 불렀던 것을 역명으로 쓰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쪽 길 통해서 해방촌 입구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예쁜 교회에 있는 저쪽 길 있죠. 저기가 경리단길입니다. ‘위대한 헌신, 영원히 가슴에’ 라고 적혀있는 곳 있죠. 저기 ‘국군 재정 관리단’이라고 돼있죠. 저게 경리단입니다. 그래서 저 길이 경리단길입니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길은 아닌데 여기가 언제부터 많이 뜨게 됐냐면 그냥 원래 여기는 미군 부대 때문에 외국인들은 원래 조금 많은 동네였어요. 근데 외국인들이 조금 많고 조금 깨끗한 동네긴 했지만 ‘관광지다’ 이런 느낌도 아니었는데 평택으로 미군기지 이전 얘기를 하고 나서 땅값이 조금 오르면서 그때부터 인파가 들어오기 시작한 거예요. 사람들이 들어와서 가게도 만들고 하면서 그러면서 경리단길이 붐이 되면서 오늘날의 그런 길이 되었는데 지금은 전형적으로 그냥 일반인이 있던 길에서 관광지로 바뀐 케이스 인거예요.

지금 저희가 여기가 해방촌 입구에요. 여기서부터 해방촌 올라가는 길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오른쪽에 1945년 용산 해방촌이라고 되어 있죠. 해방촌의 지명과 연결되는 연도가 1945이죠 광복, 해방을 일컫는 말입니다. 지금 왼쪽에 계속 항아리가 있잖아요. 진짜 천연 옹기 파는 가게. 서울에선 여기 하나 남았다는 말이 있어요. 화학 유약을 바르지 않고 숨 쉬는 옹기 만드는 유일한 가게라고 하는데 그런데 이제 여기에서 저 할머니가 이거 뉴스 같은 거 보고 여기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허탕 치면 안 된다고 1년 365일 가게를 열어요.

지금 여기 있는 2층집들도 다 재건축된 거고 예전엔 여기가 다 판잣집이 있던 곳입니다. 지금 보시는 거는 70년대부터 80년대, 90년대에 다 이렇게 빌라로 바뀐 곳이고 예전에는 여기가 지금 남산 자락이랑 연결된 곳이에요. 이쪽이 첫 번째로 해방되고 나서 사람들이 한번 내려오고 그리고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이 내려와서 정착했었던 곳인데 여기의 해방촌이라는 의미가 약간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대요.

여기서 계속 살고 계시는 분들도 여기 (생활 환경이) 얼마나 힘들어요. 오르막 경사도 너무 힘들잖아요. 여기에서 오래 살았지만 애정도 있지만 힘들기도 한 거예요. 여기 계신 분들 다 힘들어하고 인터뷰하세요. 너무 힘들다고 그래서 여기가 힘들어서 해방촌의 의미 중 하나가 '이곳을 벗어나면 진짜 해방이다’라는 이중적인 의미로 (혹은)약간 자조적인 뜻으로도 그 말을 쓴다고 하시더라고요. 북쪽에서 오신 피난민 탄압을 피해서 내려왔으니까 그분들이 여기 일단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나중에 북쪽이 해방되면 다시 거기서 독립이 되면 좀 자유로워지면 다시 올라가야지 하는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이쪽에 좀 많았다. 그래서 지금 저희가 오늘 둘러볼 장소 중에 교회하고 성당이 있잖아요. 그 교회랑 성당이 원래는 북쪽에 있었던 교회가 내려와서 만들어진 거라서 원래 평안도 쪽에 있었던 교회입니다. 그리고 평안도 쪽에 있었던 학교가 여기 내려와서 만들어진 학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이 좀 많이 계셨던 지역이라고 생각을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기독교 계통 사람들이 광복되고 나서도 북쪽에서 탄압을 많이 받았데요. 그래서 거기서 종교활동을 보장받지 못해서 종교 쪽 사람들이 많이 내려왔던 그분들이 정착한 곳이 해방촌이고 여기 천주교 해방촌 성당 보이시죠? 중학교랑 고등학교가 붙어 있어요. 규모가 상당히 큽니다. 그리고 안쪽에 성당이 이렇게 있고 지금은 개축한 성당 역사지만 처음에 여기에 성당이 이 자리에 있었던 게 55년부터 나왔다고 하니까 전쟁 끝나고 나서 바로 종교시설이 들어간 거예요. 처음에는 천막을 치고 (활동을) 합니다. 이 천막 어디서 갖고 왔을까요? 맞아요. 미군부대에서 가지고 온 천막을 치고 천막 성당을 만들어서 이쪽에서 예배를 첫 예배를 드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성당이 있고요. 조금 들어가면 교회가 나옵니다. ‘해방교회’라는 교회가 나와요.

여기 예배당 교회입니다. 해방교회. 여기 초대에 이끌었던 허원이라는 목사님이 계신데 전쟁 났을 때 피난을 안 가고 교회를 지키다가 돌아가셨어요. 여기서 총살을 당해 사망을 하시게 됩니다. 교회를 지키고 여기에 피난 못 가고 있었던 교인들을 지키다가 같이 사망을 하신 (사건이) 있어서 앞쪽에 보면 저기 앞에 허원 목사 순교비라고 보이세요? 피난을 안 가고 교인을 지키면서 끝까지 저항하다가 죽었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나중에는 광복이 되고 나서는 이런 면 때문에 약간의 지원을 받기도 해요. 그래서 교회 앞쪽으로 구석구석에 신흥 시장이라고 하는 시장 골목들이 형성이 되어 있는데 여기에 모여 살았던 분들이 먹고 살려고 시장을 만들었겠죠. 60년대부터 있었던 시장이 지금 조금 리모델링이 되어서 관광 시장화 되었습니다. 이쪽으로 내려가 볼게요.

여기 오래된 건물들 일대가 지금 관광지화되어 있습니다. 안쪽에 건물들을 포함으로 신흥시장, 새로운 신흥시장 (이 형성 되어있습니다) 옛날에 여기에 노홍철씨가 운영하는 철든 책방이 있었는데 여기 책방 흔적만 남았죠. 원래 신흥시장이 원래 여기 사람들이 무엇으로 돈을 벌었냐면 50년대에는 사실 돈 벌게 없잖아요. 무엇을 했냐면 ‘가짜 담배’ (다른 말로) ‘야매 담배’를 말아서 파는 게 있었고 60년대, 70년대에는 여기에 뭐가 있었냐면 스웨터, 스웨터 짜는 산업이 엄청나게 발전했었대요. 그 니트 산업이 되게 발전했었던 가족끼리 다모여 앉아서 니트를 짜는 그게 되게 성업을 했던 거예요. 근데 이것도 나중에 미싱 같은 거 들어오고 하면서 완전히 가내수공업은 몰락을 하게 되는 거고 그런데 여기에 그 니트 산업을 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거기에 딱 착안을 해서 그걸로 디저트 만드는 가게가 있어요. 요기 12시에 여는데 ‘르몽블랑’이라는 가게가 있는데 케이크 가게인데 스웨터 모양의 케이크를 만들어서 선물용으로 굉장히 인기가 좋다고 하거든요.

물건 파는 시장은 이렇게 공간이 딱 마련돼 있지 않았고 아까 우리가 과일가게처럼 그냥 중간중간에 노포로 있었어요. 여기는 그냥 건물 공간을 하나 빼서 이쪽에 다 신흥시장이라고 따로 명명을 한 거죠. 여기 비석 하나 있습니다. '동장 이봉천 기적비’라고 돼 있는데 동장은 그 동사무소장 이봉천이라는 사람의 업적을 기려서 세운 비석이란 뜻이에요. 이분이 여기 해방촌의 사람들이 투표로 뽑은 초대의 동장이에요. (여기 사는) 사람들이 사실 집도 없고 그런 것도 다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이 사람들이 제대로 된 집에서 살 수 있게 하려고 되게 여러모로 애를 쓴 사람이에요. 정부한테 뭐라도 하나 받아내려고 하고 이 사람들을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알려서 어떻게든 잘살게 해주려고 되게 노력을 많이 한 사람. 그 사람이 너무 고마웠으니까 이것을 마을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비석을 세운 거예요. 일종의 선정비 비슷한 거죠.

여기 보고 오거리 가로질러서 다시 내려가가지고 (이제 갈 곳이) 두 개 남았는데요. 해방 타워하고 해방 108계단쪽으로 가보겠습니다. 여기 이 건물이 해방타워예요. 원래 해방타워가 있었던 자리가 거기가 원래 숭실학교라는 학교가 있었어요. 일제강점기 때 선교사가 세웠던 학교인데 여기서 독립운동가들이 다수 배출이 됐어요. 나중에 일본인들이 이 학교운영 못 하게 굉장히 방해를 해서 여러 번 이사를 다녔던 곳이고 이 학교를 나중에 다른 데로 옮겨 버리고 이 일대까지 합쳐서 굉장히 넓게 신사를 세웠었어요. 경성호국신사. 여기서 말하는 호국은 우리나라 지키는 호국이 아니고 일본 지키는 호국이겠죠. 1943년쯤에 세워진 신사인데 전쟁에서 죽은 일본인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그런 신사였어요. 1943년이면 약간 일본이 패색이 좀 짙을 때예요. 발악하듯이 지은 신사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그 신사를 건설하는 인력과 노동 등은 전부 다 우리가 했죠. 이 꼭대기에다가 그래서 굉장히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구요.

저희 이렇게 내려가면서 요기 오른쪽에 보시면 여기 숭실학교 출신 사람 누구 누군지 살짝 적어놓은 곳이 있어요. 문학가의 윤동주 고인 여기 한 번 보실께요. 숭실학교가 배출한 인물 문익환 목사. 윤동주. 이 학교도 원래는 북한에서 먼저 만들어졌다가 이쪽으로 옮겨온 거여서 윤동주도 북간도 출신이죠. 그리고 우리가 잘 모르지만 독립운동가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김민식 선생, 조만식 선생, 손정도 선생, 차리석 선생, 차리석 선생은 최근에 조금 많이 나옵니다. 임시정부의 모든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셨던 분인데 광복이 될 때까지 살아 계셨는데 광복되고 나서 1945년 9월 9일에 과로로 쓰러져서 돌아가셨어요. 귀국을 못 하셨어요. 그리고 이제 숭실학교 만들었던 선교사가 있습니다.

해방 타워 숭실학교의 옛 터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2019년이에요. 2019년에 여기에 숭실학교 비석을 세운 거예요. 2019년에 저 비석도 같이 세웠어요. 이쪽으로 와보시겠어요? 2019년에 세운 이유가 있겠죠. 2019년 3.1 운동 100주년. 여기 독립운동가들이 다수 배출된 곳이기 때문에 그걸 기념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한 학교터를 찾아서 용산구 비석을 해놓고 이 학교 출신 인물 중에 실제로 독립유공 포상자가 몇 명에 있는가를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가 대통령,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이런 거 있잖아요. 물산장려운동이라고 들어 보셨을 거예요. 그거 주도했던 선생이 고당 조만식 선생이에요. 그분은 제일 높은 대한민국장 받았어요.

여기에서 쭉 따라 내려가면 마지막 스팟 108계단이 나옵니다. 저희 잠깐 그늘을 피해서 얘기를 마지막으로 듣겠습니다. 108 계단 여기고요. 지금은 하늘계단이라는 이름으로 이게 2018년에 생긴 승강기 리프트입니다. 여기가 그 경성호국신사 입구. 그 108계단 여기가 입구가 있고 원래는 이게 지금 가운데 승강기 때문에 둘로 쪼개져 있지만 원래 그냥 통계단이었어요. 깎아서 만든 화강암을 궁궐에 있는 박석처럼 산에서 깨가지고 갖고 와서 손으로 깎아서 만든 108 계단이에요 이 공사는 다 우리가 한 거죠. 집에 갈 때마다 108 계단을 올라가는 기분 고행이에요. 그래서 지금 보면 이게 층이 나뉘어져 있잖아요. 층이 서요. 4층, 3층, 2층 집이 층이 나뉘어 있어가지고. 해방촌이라는 지명을 옛날에는 쓰지 말아야 된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뭐 좋은 이름이라고 하고 이렇게 쓰냐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뭐 역사라고 하는 게 좋은 것만 남기고 나쁜 건 지우고 하면 그건 역사가 아니겠죠. 그래서 우리가 좀 특이한 역사를 갖고 있는 만큼 또 마침 해방촌과 의미가 직결되는 6.25 전쟁 기념일이 내일입니다. 6.25 또 내일인데 그 시즌에 우리가 딱 맞춰서 왔는데요. 6.25 전쟁 때문에 생겨난 동네는 아니지만 6.25 전쟁 이후에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집중적인 동네가 바로 이 곳이라고 생각을 해 주시면 될 것 같고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에 ‘한강의 기적’이란 말이 있어요. 저는 그 말을 정말 싫어하는데 60년대, 70년대에 우리나라 역사보면 80년대 이후부터 갑자기 되게 컬러가 드라마틱하게 바뀌기는 해요. 그래서 한국을 수식하는 단어 중에 맨날 나오는 게 ‘한강의 기적’ 이잖아요. ‘한국사람 진짜 대단하다’ 하고 나오는데 뿌듯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저는 되게 부채감이 들어요. 저는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고생을 안 해도 됐었지만 저희 위에 위의 분들은 그 고생을 한 거잖아요. 기적이라고 하는 단어가 어찌 보면 그렇게 열심히 산 사람들한테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의 인생은 그 밑에서 하염없이 갈린 건데 그거를 가지고 우리가 멋있게 포장을 해서 “기적이다” 이렇게만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거는 그거대로 너무 과소평가하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적의 원래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인데 운 좋게 하는 것을 기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가 잘살게 된 게 복권 당첨 같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굉장히 성실한 단계를 거쳐왔는데 그것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단계가 좀 가팔랐을 뿐 그러다 보니까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었는데 그 부분은 살짝 가려놓고 그냥 기적으로 포장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기억하려고 하는 몇 군데 장소 중의 하나가 해방촌입니다. 저는 오늘 여기에 역사적인 과정을 설명해 드리려고 이런 걸 쭉 말씀을 드렸는데 우리가 중간중간에 여기에 되게 힙한 가게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리고 정말 낮과 밤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다른 풍경을 만드는 데가 바로 여기 해방촌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좀 야간 시간대로 좀 고르셔가지고 지금도 너무 더우니까 조금 선선한 날이 됐을 때는 그때 또 근데 좀 사람이 많아서 남산에 관광객들이 많아가지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밤 시간대에 골라가지고 오실 수 있으시면은 (와보세요) 해방촌이 지금은 그 옛날 해방촌이 또 아니구나 지금은 또 다른 의미의 해방의 의미가 부여되고 있어요. ‘정말 해방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장소다’ 라고 새롭게 사람들을 또 불러 모으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미부여는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여러분들 미래유산투어가 우리가 보기 좋은 것들과 보기 좀 힘든 것들이 좀 섞여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을 그래도 좀 구석구석 잘 들여다보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투어이기 때문에 지역성을 좀 살려서 다양한 투어로 또다시 인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직각으로 되어 있는 90도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저의 거친 숨소리를 함께 공유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저는 다음 달에 또 새로운 투어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개요
구분
가로/마을 , 가옥
지역
용산구
분야
시민생활
시기
2023-06-24
출처
2023년 미래유산 홍보용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