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숨 쉬기 좋은 곳 "의릉"
여느때와 같이 전공수업을 듣던 날 이었다.
여느때와 같이 눈꺼풀은 천근만근 이었고,
여느때와 같이 공부는 재미 없었다.
교수님은 그런 우리를 보며 안쓰러운듯이 살짝 웃어보이셨다.
이내 방금까지 수업을 진행하던 목소리 보다 한결 밝은 톤으로 말을 거셨다.
여러분 참 한숨나오는 상황이죠? 수업은 재미없고 날씨는 좋고. 내가 한 숨 쉬기 좋은 곳을 알고있는데...
평소 말장난을 즐겨하시던 교수님이라 그런 말 장난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는게버릇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뭔가 달랐다. 한 숨 쉬기 좋은 곳이라?
수업이 끝나고 점심에 먹었던 김치볶음밥이 다 소화되었을 무렵,
나는 나도 모르게 그 한 숨 쉬기 좋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다니는 한국외대 후문과 경희대 후문, 한예종 후문이 모두 만나는
아주 작은 삼거리에서 작은 도로 방향으로 주욱 걸어가다 보면
이런 광경에 맞닥뜨리게 된다.
의릉, 나는 오늘 이곳에 꽁꽁 숨어있는 의릉에 간다.
의릉은 신기하게도 한예종 안에 있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역사 문화재가 아주 평범한 동네에,
그것도 어떤 대학교 안에 숨어 있다는 것이 재밌고 신기했다.
흡사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의릉은 조선 제 20대 왕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어씨의 무덤이다.
조금 더 친숙하고 쉽게 설명하자면 장희빈과 세자의 무덤 인 것이다.
경종과 장희빈과 얽힌 재밌는 일화로는 장희빈이 숙종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불만을 안고,
세자인 경종의 생식기를 잡아당겼다는 것이 있다. 왕가의 후손 번식을 방해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또 숙종의 친애를 받던 인현왕후가 병으로 몸져눕자 인형왕후가 그려진 그림에 화살을 쏘아 저주를 퍼부었다고 하며
이것을 숙종에게 들켜 결국 사약을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정식 왕실의 역사가가 기록한 것이 아닌 야사 이기 때문이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아무튼 의릉은 유적지 이면서도
봄과 가을에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데이트하기 좋아
외대, 경희대, 한예종 학생들의 데이트 명소인 것은 사실이다.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라, 항상 조용하고 고즈넉한 곳.
산책로도 잘 되어있고, 특히 저 천장산에서 내려다보는 절경이 아주 기가막히다고 하니
누군가 한숨나오는 순간, 한 숨 쉬러오기 좋은 곳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군가가 나 일지도 모르고.
내가 다녀온 미래유산 의릉의 운영 시간은 이렇다.
본 글쓴이는 가끔 늦게 가서 허탕치고 돌아온 경험이 있으니
혹시 이 곳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시간을 미리 확인하길 바란다.
아참, 의릉 입구에는 긴 산책로를 이용하실 어르신들을 위해 지팡이가 준비되어 있으니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가보는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