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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타종
추천수0 조회수478 작성일2018.10.10
자막
면담자 : 이 인터뷰는 서울시 문화정책과 주관의 서울시 미래유산 심층영상 기록제작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은 이천 십 칠(2017)년 유(6)월 십삼(13)일 화요일이며, 종로구 보신각 터에서 인터뷰가 진행됩니다. 구술자는 신철민 선생님이고 면담자는 권용찬입니다. 이 영상은 서울미래유산 기록으로 남게 되고, 일부는 서울시민에게 홍보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구술자 : 네, 안녕하십니까. 면담자 : 네.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술자 : 아닙니다. 감사드립니다. 면담자 : 우선 보신각에 와서 여러 가지를 여쭈게 될 것 같아서. 먼저 좀 여쭙고 싶은 게, 보신각에 대한 소개를 부탁을 드릴게요. 구술자 : 보신각은 서울시 기념물 십(10)호로 지정되어있는 등록문화재고요. 날마다 시민여러분들이 들렀다 가시는 곳이기도 합니다. 서울 중심에 있는 한복판에 있는 문화재라고 보시면 되고요. 면담자 : 보신각 혹은 종각 이렇게 부르잖아요. 명칭이 다른 특별한 이유나, 명칭에 따른 의미가 다른 게 있나요? 구술자 : 과거에는 종각이라고 불렸었는데, 고종 삼십 이(32)년에 고종황제님이 종각이라는 이름을 보신각으로 다시 이름을 바꿔서 내려주셨어요, 그때부터 보신각이라고 불렸습니다. 면담자 : 지금 공식명칭은 보신각이네요. 구술자 : 네 맞습니다. 면담자 : 일 년에 몇 번 중요한 행사 때마다 보신각 종을 타종을 하는데. 굵직굵직한 보신각 타종행사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구술자 : 일단 일 년에 가장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는 게,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있고요. 십이(12)월 삼십일(31)일에 진행되는. 그리고 삼 일절 기념 타종행사, 그리고 팔일오 (8.15)광복절 기념 타종행사. 이렇게 기념일 타종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과 관련된 행사들도 고정적으로 진행하는 행사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일단 상설 타종 행사가 매일같이 낮 열두(12)시에 보신각 이(2)층에서 진행이 되고요. 기념일 타종처럼 비슷하게 대학 합격기원 타종행사나 어린이날 실시하는 어린이날 희망타종행사 등이 있습니다. 면담자 : 그러면 정기 타종 말고 행사나 프로그램들로 되는 타종행사에는 시민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건가요? 구술자 : 네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고, 시민뿐만 아니라 내 외국 관광객 분들까지 다 참여 할 수 있습니다. 면담자 : 저희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자료를 주욱 보다 보니까 소위 말하는 ‘종지기’라는 명칭으로 불리어지고 있는데, 고 조진호 선생님 집안에서 약 한 백 칠십(170)년 정도 종지기로 대를 이어서 활동을 해 오셨다고 알고 있어요. 선생님의 스승님이시겠죠. 고 조진호 선생님의 집안의 종지기의 역사 내력 이런 것들 혹시 아는 게 있으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구술자 : 과거에는 종지기와 관련된 기록들이 원래는 보신각에 보관되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육이오(6.25)때 한번 보신각이 불 탄 적이 있어요, 포탄이 떨어져서. 그 당시 갖고 있던 자료들이 다 소실되고 지금은 이제 육성으로만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제가 알고 있는 종지기의 역사는 백 칠십(170)여년이 아니고 백 육십(160)여년 동안 제 스승님까지 이어졌고, 제가 십 일(11)년차 이니까, 그것 까지 합치면 백 칠십(170)여년이 되는 거죠. 지금 제 스승님이 사(4)대, 제가 오(5)대인데, 사실은 원래 스승님이 고 조진호 선생님 스승님이 5대셨다고 해요. 그런데 일(1)대이신 선조 분이 기록이 없어요. 그래서 제적 초본을 떼면 이(2)대부터 나오세요. 이(2)대부터 내려와서 그것을 가늠 할 수가 있는 길은 그것밖에 없고, 그리고 현재 제 스승님의 사모님이 살아계셔서, 그분의 육성 증언을 통해서만 남아있습니다, 면담자 :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나 증거들은 현재는 안 남아있는 거죠? 구술자 : 하다못해 제가 이제 관련기록을 찾고 싶어서. 제 스승님이 양주 조씨 집안 어른이세요, 그런데 양주 조씨의 가문과 관련된 양주 조씨 종친회가 있어요. 그런 곳에 가서 자료를 의뢰했더니 보통 관직을 하시게 되면 보통 다 족보에 올라가잖아요. 그런데 양주 조씨 집안에 제 스승님 라인 계열의 분들은 다 빠져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족보에 등재를 안했다는 거죠. 그래서 상당히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그쪽에서 지금이라고 등재를 해달라고 요청하시더라고요 저한테. 면담자 : 네 안타깝게도 이야기로만 전해지고, 확인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런 역사들이 사실은 서울의 문화유산 역사기록 이런 걸로 남아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안타까운 것 같아요. 주무관 님께서 조진호 선생님하고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어떤 과정으로 제자가 되셨는지 궁금하거든요. 구술자 : 일단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보신각 상설 타종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음에 제 스승님과 만나게 되었어요. 상설 타종행사는 낮 열두(12)시 시민들이 참여하는 행사인데 열두(12)시에 열두(12)번의 종을 치려면 종 치는 방법을 알아야 하거든요. 면담자 : 아, 종치는 방법이 따로 있나 봐요? 구술자 : 그냥 막 치면 종에 무리가 오고 종 망치도 금방 깨지고 그래서 저도 이제 처음에는 스승님의 이야기를 물어물어 듣고 와서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 종 치는 방법을 좀 알려달라고 해서 배우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되었어요. 그래서 한 육(6)개월 정도. 처음에는 뭐랄까요. 형식적으로 묻고 답하고 보고 따라하고 그런 식이었는데, 나중에는 가르쳐주시는 강도가 점점 세지더라고요. 면담자 : 예를 들면 어떤 게? 구술자 : 종을 치면 종 치는 소리를... 그러니까 저는 나중에 알았어요. 전수라는 게 무엇이냐 라고 떠올려보니까 전수는 단순히 그냥 가르쳐주고 전해주고 이게 아니고 전대의 스승님이 종소리를 듣고 오케이를 해야 전수가 마무리가 되는 것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그런데 저는 나름대로 가르쳐 주신대로 친다고 치는데, 이게 전혀 스승님은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다시 치라고 그런 식으로 말씀 하시고. 그렇게 해서 종 치는 것만 상당히 혼나가면서 많이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면담자 : 그렇게 단시간으로만 뭐. 년도로 치면 언제쯤이었을까요? 구술자 : 이천 육(2006)년도 면담자 : 당시 주무관님께서는 어떠한 연유로 보신각 종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구술자 : 그 당시에는 제가 공무원 신분이 아니었어요. 전통문화 행사를 발굴하고 그거를 제안하는 행사 기획 업체 쪽의 직원이었어요. 연출파트 담당하는. 그런데 연출을 맡고 있으니까 그것을 기획을 해야 동료 직원분과 같이 기획하고 연출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종치는 것도 알아야 하고. 제가 알아야 출연자 분들께 종치는 것도 알려드리고 진행을 할 수 있잖아요. 그 당시 제 신분은 공무원 신분이 아니고 일반 회사원 신분이었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면담자 : 스승님께서 흔쾌히 전수를 해주시던가요. 과정이 순탄치 많은 않았을 것 같은데. 구술자 : 그 당시 스승님 이야기를 잠깐 떠올려보면, 아드님이 계세요. 아드님이 딱 한분 계세요. 그리고 여동생 한 분 누나 한 분이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때마다 스승님 댁에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그러는데요. 그 당시 형님. 저는 형님이라고 불러요. 형님이 개인적인 사업을 하시는 게 있어서 정리가 안 되서 부득이하게 이것을 전수를 받지 못했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많이 고민하시고 걱정하시더라고요. 가르쳐주시는 내내 얼굴도 많이 어둡고 걱정이라고 계속 혼자 되뇌시고 말씀하시고. 뭐가 그리 걱정이시냐고, 그냥 불러서 (전수를)하시면 되지 않냐 했더니, 아무리 당신이 아버지라고 해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거죠. 물론 스승님 마음은 당신 아드님이 이어받길 바라셨을 거예요, 업이라고 생각하셨으니까. 천륜이고 업이라 생각하셨으니까. 그런데 형님이 안하시는 바람에 전수받은 사람이 저밖에 없는 거예요. 면담자 : 일대 일로 교육을 받으신 거죠? 구술자 : 네. 육 개월 가까이 받고 나서 나중에는 몸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셔서. 그전부터 항암치료도 하고 계셨다 하더라고요. 관련된 질병이 악화가 되어서 강북삼성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까지도 계속 대를 이어주고 가야한다는 의지를 표명 하셨고, 강하게 드러내셨고 저에게도 계속 말씀하셨고 그랬습니다. 면담자 : 주무관님. 좀 개인적인 질문 일 수 있는데, 이전에 일과 관계된 일로 보신각 종에 관심을 갖고 타종에 관심을 갖기 이전에 문화재라든가 역사 문화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구술자 : 네. 평소에도 문화재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우리 문화재가 우수성이 대단하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문화유산을 봐도 그렇고, 보존 관리하는 것도 그렇고. 물론 더 잘하는 나라도 있겟지만 우리문화, 우리역사, 우리과거를 이야기 하지 않고는 현재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평소에도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면담자 : 이천 육(2006)년도에 전수받으실 당시에 주무관님은 공무원 신분이 아닌 일반 직장인의 신분이셨고. 스승이었던 조진호 선생님은 신분이 어떤 신분이셨나요? 구술자 : 똑같이 공무원 신분이셨어요. 지금 저와 똑같이. 그분도 공직생활을 하신 거죠. 면담자 : 좋아하는 문화재 관리와 특화된 전문직으로서 서울시소속 공무원으로서 보신각을 관리하시고 타종을 준비하시고 이런 일이라 볼 수 있습니까. 구술자 : 네. 면담자 : 전수받는 과정동안 프로그램들이 있나요? 아니면 선생님께서 생각나는 대로 혹은 나름 정리하셔가지고 전수를 해주셨나요? 구술자 : 크게 나누면 타종 방법. 그리고 종님과 종망치 관리하는 방법이라든지. 그리고 보신각 전체적으로 어떻게 관리를 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시고. 그런 식으로 단계별로 교육을 시켜주셨어요. 제일 많이 받은 건 종치는 방법. 면담자 : 그럴 것 같아요. 구술자 : 네. 제일 많이. 왜냐하면 병원에 입원하시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종소리에 대해서, 뭐랄까요. 확실하게 이거다, 라고 말씀을 안 하셨거든요. 그런데 (병원에) 들어가시기 하루인가 이틀 전 쯤 소리를 들어보시고 이제 됐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제 됐다.” 그러시고 나서 하루인가 이틀 만에 병원에 입원을 하셨어요. 면담자 : 저희 같은 일반인들은 잘 상상이 안 가는데, 종소리가 어떻게 다를까요? 구술자 : 그렇죠. 종소리라고 하면 물론 종 소리만 연구하는 분들도 되게 많아요. 그런데 종지기로서의 종소리를 잠깐 말씀드리자면 마음으로 듣는다고 생각을 해요. 마음으로 듣고 온몸으로 듣고, 귀로 듣는 게 아니고요. 귀 뿐만 아니라 온 몸으로 종소리를 듣는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일반 시민여러분들이 올라오셨을 때 단순히 귀로만 들으려 하지마시고 귀와 온 몸과 마음으로 종소리를 들으시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제가 볼 때는. 그런 분들은 감동을 받고 눈물도 흘리시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만큼 보신각 종은 예전부터 시민여러분들과 국민여러분들과 애환도 어려움도 함께 해온 종이기 때문에, 그런 거를 올라오셔서 느끼시는 분들도 있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종(소리를) 들으실 때 꼭 귀로만 듣지 마시고 온 몸으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면담자 : 그러면은 텔레비전(TV)에서 타종행사를 볼게 아니라, 현장에 와서 듣거나 혹은 타종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상설 타종 같은 것도 적극적으로 신청을 하고 수고를 좀 해야겠네요. 구술자 : 네 그렇습니다. 약간 번거롭기는 하시겠지만 텔레비전(TV) 소리 하고 비교하시면 절대 안돼요. 면담자 :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신각 타종이라 하면 제야의 종을 연상을 하고, 텔레비전(TV)에서 열 한(11)시 오십 구(59)분 오십 구(59)초에서 땡땡(정오가)될 때 그때를 기억하는데. 그거는 사실 의미로서의 감동은 있겠지만 현장감은 떨어지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게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종지기 업을 하고 계시는데, 하루에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요. 구술자 : 일단 하루 출근을 하면 보신각에 출근을 하면 씨씨티비(CCTV)가 많이 설치 되어있어요. 제가 여기 와서 스승님 계실 땐 저런 게 설치가 안 되어 있었는데 와서 보니까 부족한 시설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부서에 이야기해서 필요한 시설들을 확충을 하고 인력도 보충을 받고 그래서 기간제 근로자분들과 함께 종님을 지키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아침에 오면 먼저 전날 있었던 일들을 검색을 합니다. 녹화된 화면도 보고. 그리고 행사가 열한(11)시에 시작을 해요. 면담자 : 상설 타종행사? 구술자 : 네. 상설 타종행사가 열한(11)시 시작을 하니까 그 전까지 제가 맡은 업무를 잠깐 사무적인 업무를 좀 보고. 행사가 열한(11)시에 시작하면 정시에 시작하는지 관리를 하고. 행사가 시작하고 나면 현장에 올라가서 행사장 안전이라든지 아니면 시민들에 대한 안내라든지 이런 것들. 관광객에 대한 안내도 함께 병행을 하면서 행사를 진행을 하고요. 행사 타종 하러 오신 분들에게는 문화유산 해설을 제가 직접 들려 드립니다. 행사 끝난 다음에는 점심 먹고. 오후에는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 일과들이 있어요. 오후에는 보신각 이(2)층에 건물이 크잖아요. 연 면적이 (백 사십 사)144평이에요. 일, 이(1, 2) 층이. 네. 그러다 보니까. 또 이게 도심 한복판에 있다 보니까 상당히 공해가 심해요. 하루라도 관리를 안 해주면 먼지가 뽀얗게 앉고 또 황사라도 부는 날이면 노랗게 변해요 바닥이. 마룻바닥이라든지 종망치, 종님, 그리고 보신각 전체적으로 요일별 그룹별로 관리하는 구간을 일일이 밑에 계신 기간제 근로자 단장님들과 함께 실시를 합니다. 매일같이 청소도 하고 관리도 하고. 그게 한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 정도 진행이 되고요. 보통 오후에 끝나고 내려오면 한 네(4)시 정도 돼요. 네(4)시에서 네 시 반(4:30) 사이가 되면 다시 와서 나머지의 하루 일과. 공무원이다 보니까 이 일 말고도 또 하는 일들이 많거든요. 면담자 : 행정업무들? 면담자 : 네. 지금 말씀 드리는 건 단순히 보신각 터에 대한 시설물 관리에 대한 거고. 제가 맡은 업무가 여러 가지 있어요. 봉사활동이라든지 아니면 시민타종과 관련된 시스템 관리라든지 여러 가지 일들을 나머지 시간에. 좀 짧아요. 시간이. 아침과 오후 끝에 마무리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제 하루일과가 그냥 지나가요. 면담자 : 시민들이 이제 타종행사 참여를 인터넷으로 한다거나 하면 주무관님께서 다 대응을 하시고 신청을 받고 이런 업무들을 하시는 건가요. 구술자 : 네 일단 상설 타종관련 민원 업무는 다 제가. 맡고 있고. 인터넷 상설타종 예약시스템이 따로 있어요. 거기에 신청하시면 일단 외주 업체 분들이 먼저 보세요. 보시고 나서 좀 풀기 어려운 문제들은 제가 직접 나서서 풀어드리고. 관련된 장애나 이런 것들이 있으면 직접 관련부서라고 해명하기도 합니다.. 면담자 : 지금은 서울시 소속으로 일종의 파견으로 나와 계시는 거잖아요 현장에? 구술자 : 파견...어떻게 보면 파견일 수도 있는데, 소속은 서울시청 역사문화재과 소속이고 뭐 파견이라기보다, 보시는 시각에 따라 약간 다를 수도 있어요. 출장으로 보실 수도 있고 파견으로 보실 수도 있고. 면담자 : 어쨌든 근무지가 이제 보신각. 그럼 시에서는 주무관님 혼자 나와서 현장에서 업무보시는 건가요? 구술자 : 네. 면담자 : 그리고 이제 기간제 근로자하시는 분들과 같이 일하시는 거고. 구술자 : 네. 면담자 : 뭐 전체 관리 겸 현장에서의 관리 책임을 주무관님께서 하신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겠네요. 구술자 : 네 맞습니다. 면담자 : 알겠습니다. 그 서울시에서 미래유산이라고 해서 여러 공간이라든가 혹은 문화행사라든가 장소라든가 등등 미래유산을 선정을 하고 있는데, 보신각도 미래유산으로 선정이 되었어요. 혹시 선정되는 과정을 알고 계셨는지. 과정이 혹시 기억이 나시면 보신각이 미래유산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도도 생각을 말씀해주세요. 면담자 : 선정되는 과정은 사실 자세히는 모릅니다. 담당하시는 부서에서 연락이 온 적은 있어요. 그래서 관련된 거 몇 가지 질문 하시고 또 심사를 한다고 이야기를 대충 들었어요. 아 그런가보다 했는데 선정이 되는지는 몰랐어요. 나중에 알았죠. 미래 문화유산으로 선정이 되어서 일단 저는 기쁘고요. 그리고 보신각 타종행사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보신각과 보신각종 그리고 종지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빼놓을 수 없는 구성인데, 많은 시민 분들이 종지기에 대해서 또 저희 서울시청 내의 직원 분들도 종지기에 대해 모르세요. 종지기라는 업무가 없기 때문에. 보신각 터 관리 총괄업무 이게 바로 종지기라는 업무를 대신하는 말로 표현이 됩니다. 그런데 종지기라고 하면 보신각 종님 옆에서 허락하는 시간 안에 계속 옆에서 종을 지키고 종을 관리하고 이것과 관련된 행사들을 진행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럼으로 해서 다시 시민여러분들과 더불어 앞으로 나아간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많은 시민 여러분들께 부탁을 드리자면 보신각에 오시면 항상 종지기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고. 보신각 터가 비록 등록문화재 기념물 십(10)호이기는 하지만. 물론 가치로 따지면 더 우수한 문화가 많습니다. 하지만 보신각이라는 상징성이 대단하다 생각을 해요. 그 상징성과 다른 것은 견줄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많은 시민여러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보신각을 사랑해주시고, 그와 더불어 종지기도 함께 사랑해 주셔서 나중에 제 스승님의 손자가 지금 스무(20)살이에요. 저는 양주 조씨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것을 제가 성이 신씨 잖아요? 신씨인 제가 감히 들어가서 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처음에는 대가 끊어졌다 말씀을 하세요. 하지만 저는 그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대가 끊어진 게 아닙니다. 저는 끊어질 뻔 한 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 그 친구가 나중에 종지기 역을 물려받을 나이가 되면 제가 정리할 때가 돼요. 제가 정리 할 때 쯤 그 친구에게 물려주면 저는 소임을 다 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제 스승님도 사실 돌아가셔가세요. 이미. 돌아가시는 나무에 수목장을 하셨거든요, 저도 그러고 싶어요. 저도 나중에. 물론 제가 죽을 때까지 한다는 게 아니라 이어드리고 나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저에게 그런 자격을 준다면 저도 스승님 수목장 한 그 나무에 제 뼈 한줌을 묻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어요. 면담자 : 보신각을 관리하시면서 종님 옆에서 돌본다고 해야 할까? 잘 유지될 수 있게끔 일을 하신다고 하는데. 어쨌든 보신각의 주요 업무는 타종. 종을 침으로써 시민들에게 뭔가를 알리고 혹은 새로운 행사나 이런 것들을 기념하고 이런 것이라 생각을 하는데. 보신각 타종이 가지고 있는 의미? 이런 것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 구술자 : 사전적인 유래나 의미는 이제 제야의 종을 서른 세 번 치는 의미는 불교의 세계관이 접목이 되었어요. 과거 조선시대 때 태종 오(5)년 천 삼백 구십 육(1396)년 지금의 인사동 입구로 추정을 해요. 천문교 서쪽이라 나오거든요. 지금의 인사동 입구로 추정을 하는데, 정확하지 않지만 그때부터 종을 쳐왔는데. 조선시대부터. 물론 이전에도 종각이 있었겠죠. 하지만 보신각 터 이 종각 터는는 그때와 연관이 많습니다. 그때부터 유래를 찾아보면. 불교의 세계는 관세음보살님이 서른 세 개로 분신을 해서 한마디로 중생을 구제하고자 했다고 해요 한마디로 삼십 삼(33)천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온 세상을 서른 세(33)개의 세계로 보는 세계관이 있어요. 그래서 서른 세(33)번을 타종한다는 내용이 요즘에는 지배적이고요. 물론 다른 의견도 있지만. 밤 열시에 스물 여덟(28)번을 쳤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에 밤하늘을 이십 팔(28)구역으로 나눴어요. 동서남북 사(4)궁을 다시 칠(7)로 곱해서 사(4)칠(7)에 이십 팔(28). 그 당시 관측되었던 온 밤하늘이 이십팔(28)구역이었다는 것을 모티브로 해서 온 밤하늘에 타종의 의미를 알려서 나라의 안녕과 평안함을 기원했는데, 지금은 이제 시민여러분들. 전 항상 칠 때 시민여러분들 국민여러분들이 모두가 행복하고 올해보다 더 나은 내년 제야의 종 때는 특히 그런 걸 많이 빌어요. 시민여러분들 각자 소원을 비는 그런 의미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면담자 : 그러면 이제 타종과 관련해서 에피소드들을 여쭙고 싶은데. 제야의 종 같은 경우에는 정말 인산인해를 이루잖아요? 제야의 종 행사를 하시면서 기억나는 사건이라든가 의미 있었던 혹은 가슴 뭉클했던 일들이 기억나는 게 있으시면. 구술자 : 아 이것도 종지기와 관련된 내용인데요. 사실 제 작년 제야의 종 때 제가 그렇게 모시고 싶던 분이 계셨어요. 제야의 종 인사로. 다름 아닌 제 스승님의 사모님. 네. 부인이신 정보남님을 제가 모시게 되었어요. 그때의 감격. 진짜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어요. 눈물이 막. 같이 타종을 하는데 제 스승님은 한 번도 주인공자리에서 타종을 못해보셨어요. 뒤에서 미는 자리에서 항상 종지기의 자리에서만 타종을 하셨지. 그러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사모님께 그걸 말씀드리고 제안을 드렸을 때, 우시면서 제 손을 붙잡고 말씀하시는데 너무 고맙다고. 챙겨줘서 너무 고맙다고. 하지만 제 스승님에 대한 제자의 도리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같이 오셔서 저는 종망치 잡는. 종지기가 잡는 자리에서 종을 치고 사모님은 옆에서 종을 치는데, 카메라에 나왔나 모르겠어요. 한 손을 제가 사모님 손을 같이 잡았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타종하시고 나서 내려가시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너무 좋았고. 너무 행복했고. 조금이나마 스승님에게 제가 제자자로서 도리를 좀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들고. 그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면담자 : 제야의 종 삼십 삼(33)번 타종을 할 때, 종지기는 계속 종 뒤에서 서른 세 (33)번을 다 잡고 계시는 건가요? 구술자 : 네. 종망치가 있어요. 그러면 양쪽에 두 분 씩 잡고 종망치 뒤에 손잡이가 이렇게 되어있는데 거기를 잡고. 사실은 제가 밀었다 당겼다 종을 제가 치는 거예요. 면담자 : 물론 시장님이나 이런 분들은 손을 잡고 계시지만 힘 있게 하시는 건 아닌 거고. 구술자 : 네 이게 각자 힘이 다 들어가면 종칠 때 종이라는 특성상 일정한 간격으로 일정한 힘을 줘서 정확한 타종 포인트를 그걸 이제 타점 또는 당점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 당점을 정확하게 쳐야 하는데 비뚤어지게 나가면 소리가 안 나거나 종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해요. 스승님께 그렇게 배웠거든요. 그래서 타종할 때 미리 말씀을 드려요 힘을 너무 주시지 마시고, 제가 “타종합니다.” 라고 말씀드리면 그때 힘을 주시라고. 타종할 때 힘을 주고 타종을 하는데, 종망치가 이 백 킬로(200kg)입니다. 그런데 양쪽에서 네 분이 각자 힘을 주시면 그 힘이 배가 되겠죠. 그것을 잡고 컨트롤 해야 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상당히 힘 들죠. 면담자 : 저는 지금까지 잡고계신 네 분이 같이 힘의 합으로 치는 것이라 생각을 했었는데. 보이지 않게, 물론 보여도 제가인지를 못했을 것 같은데, 뒤에서 컨트롤을 하시는 거군요. 구술자 : 아마 언론이나 방송에서는 종지기의 모습은 거의 안 나오기 때문에. 많은 시민 분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실 거예요. 네 분이 타종 하시는 구나. 실제로는 뒤에서 종지기가 다 조종을 하고 힘을 주고 타종을 합니다. 면담자 : 그러면 이거는 우스갯소리지만 해마다 연말연시는 집에서 가족들과 못 보내시겠네요. 구술자 : 제가 비공식적으로는 이천 육(2006)년 제야의 종부터 쳤어요. 그때는 스승님 돌아가시고 가서 공무원이 되기 전에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이천 육(2006)년 제야의 종을 제가 쳤는데 면담자 : 종지기의 역할로? 구술자 : 네 전수받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저밖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연말연시에 그 시간에 가족들과 함께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야의 종을 쳐서 새해를 알려야하기 때문에. 열어야하기 때문에. 면담자 : 그러면 따로 가족들 좀 초대 하셔서 좋은 자리 잡아주셔도 될 텐데. 그런 애로사항이 있네요. 구술자 : 속담에 스님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하잖아요. 아직까지 상설타종 행사에도 저희 가족을 모시고 타종해본 적이 없어요. 아이들도. 아이들이 상당히 좋아할만한 프로그램이 몇 가지 있거든요. 봉사활동을 접목한 문화재 사랑과 실천 프로그램이, 매월 둘째 넷째 토요일에도 하는데. 그런 것 같은 거도 되게 재미있어요. 어린이날 희망타종도. 그런데 “아빠 우리는 언제 타종해?” 물어봐요. 제야의 종도 항상 텔레비전(TV)으로 봐요. “아빠 나온다.” 그러면 엄마가 이제 텔레비전(TV) 틀어주고 텔레비전(TV)이 없을 때는 인터넷으로 보여주고 하는데 아직도 미안해요. 미안한데, 때가 있잖아요. 어린이라는 시기가 가기 전에 한번 해주긴 해줘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보다 더 많은 더 다른 아이들이 타종하기를 원해요 사실 저는. 더 사랑이 필요하고 더 용기가 필요하고. 종을 치면 희한하게 용기가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면담자 : 저도 직접 현장에서 들은 건 한 번이거든요. 그런데 가까운 데서는 아니었고 먼 발치에서 소리를 느낄 수 있었는데 울림이 한 번 있었는데 그게 정말 현장에서 직접 내가 타종을 하게 되면 말씀하신 것처럼 감동도 있을 것 같고 울림이 남다를 것 같긴 해요. ‘그런 것들을 몰랐구나.’ 라는 생각이 오늘 이야기를 들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타종을 행사타종 상설타종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인물들? 아까 말씀하신 스승님의 사모님이 감동적인 분이었다면. 유명인들도 사실 많이 모시잖아요? 기억에 남는 인물들이나 뭐 이런 것들 없을까요. 구술자 : 유명하신 분들이요? 많은 분들이 왔다가셨어요. 왔다 가셨는데, 스포츠 관계자분들도 왔다가셨고 연예 관계자분도 왔다 가셨는데. 이상하게 그분들 얼굴보다 헌신하고 봉사 많이 하시고 그런 분들이 더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중에서도 제야의 종 말고 상설 타종에 참여하시는 가족 분인데 재원이 어머님이라고 계세요. 그분이 항암 투병을 하셨었어요. 타종 전에. 그러고 나서 타종하시고 나서 타종할 때 용기를 많이 얻어 가셔서 그 용기로 항암치료를 열심히 받아서 완쾌가 되셨다고 연락을 받았을 때, 뭐랄까요. 지금도 말씀드리며 소름이 쫙 돋는데, 그런 전화를 받을 대 마다 뿌듯하고 보람되고 그렇습니다. 면담자 : 타종을 하셨던 어린이들 혹은 가족이든 혹은 유명인사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분들이 종종 있으신가 봐요. 구술자 : 네. 가끔 아주 가끔 연락이 오시기도 하고 저도 한번 잘 계시나 연락드리고 그런 분들이. 몇 분 계시긴 해요. 면담자 : 궁금한 것 중 하나가 종을 매일 치기만 하잖아요. 그러면 종이 상하지 않을까 싶어요. 계속 같은 자리만 치는 걸로 보이는데. 종은 상하지 않을까? 저런 종은 어떻게 정기적으로 개보수를 하거나. 어떤 식으로 관리를 하나 이게 좀 궁금했었는데. 구술자 : 일단 매일같이. 제가 아까 일과 말씀드렸는데 거기에 말씀 안 드린 부분은 매일같이 종 상태도 점검을 해요. 어떻게 점검을 하냐면 소리가 크지 않게 그 위에서만 들릴 수 있게 종을 쳐봐요. 아무도 없죠. 저만 올라가서 행사 전에 종을 쳐보고 직접 온몸으로 느껴봐요. 종 울림을. 제가 스승님께 가르침 받을 때 그 울림이 잘 전해지는지. 몸이 기억하고 있거든요. 계속 오래되다보니까. 그렇게 종 관리를 그런 식으로, 종소리가 이상하지 않은지. 만일 균열이 생긴다면 울림이나 소리가 정상적으로 나지는 않거든요. 네. 그래서 그렇게 매일같이 점검을 하고. 종 치는 부분을 걱정 하셨는데 종 치는 부분은 종을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당좌 부분에 무궁화 문양이 있어요. 종의 일반 표면보다도 약 일 센티미터(1cm) 가까이 더 두꺼워요. 더 두껍게 만들었어요. 거기를 치면 가장 좋은 소리가 난다는 표시인거죠. 그리고 종은 치라고 있는 거예요. 너무 무리하지 않게 친다면 종은 계속 울려주는 게 저는 좋다고 생각 합니다. 면담자 : 그런데 한쪽 면만 계속치니까. 돌려서 치나 뭐 그런 궁금증이 있었어요. 그건 아니고 살펴보고 관리한다는 말씀이신 거죠. 종 무게가 굉장할 것 같은데, 아까 종 망치만 이백 킬로그램(200kg)이라고 하셨는데 저 종은 무게가 어느 정도 될까요? 구술자 : 보셨다고 하셨으니까 한번 여쭤 볼께요. 몇 킬로(kg) 정도 아니 몇 톤(t)정도 된다고 생각이 드는지? 면담자 : 최소 일 톤(1t)정도쯤? 구술자 : 아 생각보다 통이 작으시네요. 하하. 이십 톤(20t) 가까이 돼요. 면담자 : 이십 톤(20t) 이요? 구술자 : 이십 톤(20t). 그러니까, 정확히 말씀드리면 십구 점 육육 톤 (19.66t)입니다. 구성은 청동 종으로 만들어졌고요. 종을 만들 당시에 에밀레종과 같은 기법으로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간혹 문화유산 해설할 때 아이들한테 약간 장난을 쳐요. 에밀레종과 똑같이 만들었다. 그래서 과연 이 종에도 아이가 들어갔을까요 안 들어갔을까요? 물어보면 순수한 아이들은 똑같이 만들었다고 하면 들어갔다고 이야기를 해요. 그렇게 장난을 치기도 하는데, 이십여 톤(20t) 가까이 되고, 구리가 팔십 사(84) 주석이 십 육(16) 퍼센트(%)가 들어간 순수한 청동 종으로 만들었습니다. 면담자 : 그러면 종을 매달고 있으려면 보신각 자체도 하중이나 이런 것들이 튼튼해야 할 텐데. 그런 부분들까지 다 고려가 되어서 이게 조선시대부터 계속 그런 계산들이 되어서 왔다는 거죠? 구술자 : 종의 위치는 일(1)층에도 있다가 이(2)층에도 있다가 왔다 갔다 합니다. 역사를 되 짚어보면. 그 당시에는 큰 종을 이(2)층에 달게 된 기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사실 저 보신각 건물은 콘크리트 건물이에요. 종위에 달려있는 가로 그런 것들 모든 구조물들이 다 콘크리트가 들어가 있고 안에 강철 핀 같은 게 들어가 있어서 연결을 해서 매달아 놓은 거 거든요. 글쎄요. 나무로 만들었다면 보신각은 더 없이 좋았겠죠. 참된 복원이었겠지만. 그 당시 역사적으로 콘크리트로 지을 수밖에 없었던 그런 배경도 하나의 근대사적으로 봤을 때 그것도 하나의 단편적인 유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면담자 : 관리하시면서 애로점이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은데, 노숙인 분들이라든가 집회나 시위를 주변에서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거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일이라든가 애로점이라든가. 구술자 : 많죠. 집회와 관련 돼서 바로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어요. 이천 칠-팔(2007-8)년도에 그때 광우병 관련해서 파동이 나서 집회가 크게 난 적이 있어요. 보신각 앞에는 광장이 있잖아요? 거기가 꽉 차면 천 오백(1500)명 정도가 들어차요. 그런데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를 하다가 천 오백(1500)명되는 인원들이 다 보신각 안으로 넘어온 적이 있어요. 바리케이트가 없죠. 담이 되게 낮잖아요? 여기 있는 보신각 터는요 담이 있다고 해도 없다고 보시면 되요. 여성분도 다리 하나 걸쳐서 넘어오면 쉽게 넘어올 수 있는 그런 곳이었기 때문에 천 오맥(1500)명 되는 분들이 집회를 하다가 다 넘어오는 거예요. 넘어왔는데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 당시 인원이 기간제 근로자분 한분 계셨고, 저 한명 있었고. 제가 마침 당직을 서던 날이었었어요. 막 들어와서 경찰과 대치하고 경찰과 몸싸움 벌이는데, 제가 가서 하는 일은 다른 거 없습니다. 올라가는 계단을 지켰어요. 콘크리트 건물이니까 일단 올라가는 계단은 목재거든요. 올라가는 계단이 뚫리면 이(2)층에서 종을 칠 수가 있어요. 집회하시는 분들이. 물론 종을 치는 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특정집단의 목적을 위해 종을 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을 해요. 모든 국민과 모든 시민들이 어울리는 분위기 속에서 그분들을 위해 종을 쳐야지 좋다고 생각 하거든요. 그래서 입구를 막고 몸싸움하고. 얼굴도 맞고 돌도 던져서 머리도 깨지고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면담자 : 그럼에도 그 종을 끝까지 지키셨고. 구술자 : 네 계단을 한 분 저쪽에 지키고 저 이쪽에 지키고 해서 끝까지 사수하고 나중에 다 나가실 때 까지. 한 네 시간동안 거의 바깥에 야간에. 밤 열두시 한시 까지 계속 대치를 했었으니까요. 제일 심했죠. 그때는. 면담자 : 종지기로서 가장 큰 위기였을 것 같아요. 구술자 : 그렇죠. 사고로 따지면 그때가 제일 컸던 것 같아요. 그때 저도 남자이긴 하지만 천 오백(15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군중들이 동시에 넘어 온다고 생각해보세요. 어휴. 그 당시 제가 뭘 차고 나갔냐면 기가폰을 차고 나갔어요, 문화유산 해설할 때 쓰는 기가폰을 차고나가서 마이크로 방송을 했어요. 여기 카메라가 있으니까 얼굴 찍히시면 불이익을 당하실 수 있으니까 뒤로 넘어가시라고. 여기 계시지 말고 뒤로 넘어가시라고. 뒤로 유도해서 뒤로 다 빠져나갔어요. 그 인원들이. 면담자 : 굉장히 지혜를 발휘하셨네요. 구술자 : 어쩔 수 없죠 저는 그분들을 위해 이야기한 거잖아요. 사실은, 내면은 보신각 지키기 위해서 한 것도 있지만 서로가 좋은 거죠. 그래서 최대한 빨리 정체되지 않고. 여기서 몸싸움 일어나봤자 문화재 훼손만 있을 뿐이니까. 그렇게 해서 다 내보낸 기억이 납니다. 면담자 : 노숙하시는 분들하고 실랑이가 있거나 하지는 않나요? 구술자 : 많죠. 처음에 저 여기 왔을 때 육(6)개월에서 일 년 동안은 세 가지 하루에 전쟁하다시피 몸싸움을 한 적이 있어요. 이제 뭐랄까요. 첫 번째가 노숙인. 두 번째가 불법부착물. 세 번째가 이동 상인이었어요. 처음 왔을 때 그 당시에 스승님 계실 때는 스승님과 사모님이 두 분이서만 지켰어요, 다른 직원분도 없고 기간제 근로자분도 없고. 와서 보니까 너무 열악했던 거죠. 관리도 잘 안 되어있었고. 그분들 하고 그 세 가지를 문화재 지역을 정화하기 위해서 육(6)개월에서 일(1)년 동안 진짜 많이 힘 들었는데 노숙인분 같은 경우는 종각역이 화장실 공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분들이 화장실 그리로 갔었는데 밤에 야간에 새벽에 다른 상점들 다 문 닫았을 때, 공사를 몇 개월 동안 하는데 그동안 노숙인들이 계속 들어와서 녹지대에다가 볼일을 보시는 거예요. 큰 거 작은 거 다. 한 번은 들어와서 좋게 말씀을 드리고 내보냈어요. 그런데 그다음에 또 들어왔어요. 같은 한 사람에 대한 것만 말씀드리는 거예요. 같은 노숙인 두 번째 들어왔을 때는 제가 강하게 이야기했죠. 문화재 보호구역이라 들어오시면 안 된다. 들어오시면 처벌도 받을 수 있고 하니까 넘어가시라고. 볼일은 저기 지하보도나 다른 상가 가서 보시라고. 그랬는데 나중에 세 번째 또 넘어왔어요. 두 번째 이야기할 때 사실 방송 멘트긴 하지만 강하게 이야기 했어요. 경찰도 불렀고. 그때도 경찰 앞에서 약속을 했는데, 세 번째 넘어올 때는 제가 갔어요. 갔는데 그때가 새벽 다섯(5)시 정도 되었을 거예요. 여름이니까 해가 일찍 뜨잖아요. 여름이었는데 아, 아니 구나. 가을쯤 되었나 봐요. 다섯(5)시쯤 어두웠을 땐가 봐요. 제가 가서 이야기하면서 아니 오지 말라 하는데 왜 또 왔냐 하니까 앉아서 볼일보고 있는 거예요. 큰 거 볼일보고 있는데 손을 주섬주섬 주변을 이렇게 더듬더라고요. 더듬어서 가까이 가니까 뭘 딱 집어요. 집었는데 보니까 칼날이 있는 거예요. 손잡이가 없는 칼날인데 그걸 청 테이프를 어디서 구해서 감았더라고요 그거를. 이만한 칼날을. 잡아서 드는데 순간 저도 모르게 발로 손을 찼어요. 칼을 떨어뜨리고 나서 그대로 딱 못 일어나게 한손을 붙들고 어깨를 짓누르고 한 손으로 핸드폰 꺼내 경찰에 연락을 해서 왔어요. 올 때까지 그러고 있었어요. 딱 들고 이렇게 하려 하는데 오 순간, 갑자기 애들 얼굴이 지나가더라고요. 그때 진짜 힘들었어요. 정신적으로 저도 좀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그때 그 노숙자 분. 일단은 볼일을 다 본 상태로 나가서 신분확인 하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원래 넘기겠다고. 칼도 들고 왔다고 다 말씀드렸는데, 노숙인이잖아요? 자기 보호를 위해 들고 다녔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고. 그래서 진짜 다시는 안 들어 오겠다고 약속을 하시면 돌려 보내주시라고. 교육 좀 잘 시켜서 돌려보내주시라고. 그런 적도 있고. 그리고 강도가 들은 적도 있어요. 제 스승계실 때 이 관리 동이 지은지 얼마 안 됐어요. 오(5)년밖에 안됐어요. 면담자 : 그전엔 그럼 어떤? 구술자 : 그 전에는 상당히 열악한 여섯(6)평정도 되는 벽돌 슬레이트에 기와 얹은 화장실 같은 여섯(6)평 되는 공간에서 저도 5년 동안 생활을 했는데. 거기에 창고, 화장실, 숙직실, 사무실 있고 네 개가 다 있어요. 문이 화장실 바로 옆에 있어서 화장실 냄새가 심하게 날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거기에서 강도가 들어와서. 똑똑 두드리더래요. 스승님이 저한테 말씀해 주신 건데, 누구냐고. 야밤에 당직 서시는데 누구냐 하니까 아니 화장실 급하다고 좀 이용하게 해달라고 해서 문을 열자마자 칼을 들이대서 지갑을 다 갖고 갔는데, 저 역시도 마찬가지로 그 건물. 짓기 전 건물에서 한 번 그런 경험을 당한 적이 있어요.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뭐 그 당시에는 씨씨티비도(CCTV) 없고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많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들이 많이 있었어요. 면담자 : 그러네요. 단순히 종을 지키면서 보람만 있고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그런 어려움도 있고 .심지어는 생명의 위협도. 말씀 하시는 중간 중간에 당직이야기를 주셨는데. 당직근무도 하시나요. 밤새 여기서? 구술자 : 네. 과거에는 저 말고도 다른 직원분이 계셨는데 다른 데로 발령 나시고 정직원은 저 혼자인데 옛날 계실 때는 그분들하고 돌아가면서 매일같이 당직을 섰었어요. 일주일에 두 번도 서고 많을 때는 휴가거나 직원분이 휴가가거나 그러면 세 번도 서고 그렇게 당직을 밤새서 보신각을 지키고 종님을 지키고 이랬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만 섭니다. 주중에 금요일 토요일이 가장 복잡해요. 아마 긍요일 와보시면 아실 거예요. 인산인해 발 디딜 틈이 없어요. 어떤 때는 이게 제야의 종 행사 때인가 의심이 갈 정도로. 여기가 만남의 장소거든요. 그만큼 약주 드시고 넘어오는 분들도 많아요. 이런 이야기를 다른 분들께 동료 분들께 말씀드리면 실감을 못하세요. 하다못해 저희 사무실 직원 분께 말씀을 드려도 실감을 못하세요. 오늘 당장 별로 몇 건 안 들어왔지. 기록상으로 별거 없네. 생각하시는데 막상 취객 분들을 상대를 하다보면 많은 참을 인자를 여러 번 써야 합니다. 욕하는 거는 기본이고 멱살 잡고 흔들기도 하고 경찰서도 왔다 갔다 하고. 사실 저희가 당직을 서는 이유는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서잖아요? 사실 저희가 여기 지키고 있는 거는. 종지기도 그렇지만 기간제 근로자분들도 마찬가지지만 항상 여기 지키고 있는 이유는 다른 거 없습니다. 숭례문 사고와 같은 사고가 나지 않게끔. 언젠가는 어떻게 일어날 지도 몰라요. 오늘 당장 지금까지 사고가 없다 하더라도 내일 어떻게 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여기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물론 타 경비 업체 분들도 훌륭한 경비업체 분들이 많으시지만 직접 사람이 지키는 게 저는 제일 확실하다 생각을 합니다. 면담자 : 그럼 주중에는 당직 근무는 없고. 주로 주말? 구술자 : 네. 주로 금요일 또는 토요일. 주로 금요일에 많이 서고 토요일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지금 그렇게 운영을 하고 있어요. 서고 나면 그 다음에 행사 보고 그러고 퇴근합니다. 면담자 : 그러면 쉬는 시간이 거의 없겠어요. 당직 하면서. 구술자 :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당직을 서면 대체휴무 하루를 줘요. 그러면 월요일에 하루를 더 쉬어요. 면담자 : 말씀하시는 중간 중간에 종님이라고 존칭을 붙이세요. 저희들에게 되게 생소한 표현이기도 한데. 종님이라고 하게 된 특별한 연유라든가 의미가 뭐가 있을까요? 구술자 : 저도 똑같이 선생님처럼 스승님께 여쭤봤어요. 아니 왜 종님이라고 그러십니까. 처음에 스승과 제자라기보다 업무적으로 만났을 때는 그랬어요. 그때는 대답을 안 해주셨어요. 나중에 제자처럼 가르쳐주실 때는 ‘마음가짐이다. 종을 관리하는 보신각터를 지키는 종지기의 마음가짐을 님자로 표현한 거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알았어요. 아 이런 마음가짐으로 지켜오셨구나. 면담자 : 그러면 스승님의 선대에서도 계속 그런 마음가짐들이 이어져 왔고. 지금 주무관님께도 그런 것들이 전달이 돼서 부르시는 거로 저희가 알면. 구술자 : 네. 면담자 :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은 대략 여쭤본 것 같은데. 보신각 혹은 보신각 종지기와 관련해서 시민들이 알아 줬으면 하는 것. 그 다음에 여러분들도 이런 것은 몰랐을 것이다 하는 것들, 혹은 바람이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구술자 : 어떻게...행사 홍보를 해야 하나요? 하하하. 면담자 :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타종행사에 대해서 사실 잘 몰라요. 정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찾아보면 알겠지만 일반 시민들은 잘 모를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도 열두시 언저리에 종소리가 나는데 시청 인근에서 종소리가 들리면 성공회성당에서 들리는 건가? 뭐 이렇게 헷갈릴 때도 있었거든요. 구술자 : 성공회 성당에서 들리는 게 맞습니다. 여기 종소리는 거기까지 안가요. 지금은. 보신각 종소리는 과거에는 남산 봉수대 까지 소리가 들렸어요. 그때는 높은 건물이 없었잖아요. 도심 소음공해도 없었고. 그래서 잘 들렸는데. 지금은 청계광장이나 아니면 조계사 정도까지는 들을 수 있는데, 아까 말씀하신 거를 말씀 드리면 일단 보신각 터는 멈춰져 있는 곳이 아닙니다. 여기는 시민들과 함께 공감하고 숨 쉬고 소통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저도 그렇게 발전해 나가고 싶어요. 제가 여기 와서 만든 행사들이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행사는 상설 타종행사입니다. 열두시에 진행하는 행사고, 시민여러분 국민여러분 누구나 다 신청해서, 서울시 홈페이지 들어오셔서 문화코너에 들어가시면 바로 오른쪽에 보신각 타종체험 문구가 있어요. 그거 클릭하시면 신청하실 수가 있어요. 누구나 다 열두시에 오셔서 친구단위 가족 연인단위 직장동료 단위로도 다 타종할 수가 있습니다. 면담자 : 상설 타종은 몇 번 치나요? 구술자 : 낮 열두 시에 열두 번을 치는데요. 한 이(2)년 전 부터는 보신각을 해외에 알리고자, 여섯(6)번은 예약하신 분들 타종하시고 나머지. 여섯(6)번은 외국 분들이 타종하세요. 매일같이 외국 분들 관광객 분들이 올라오세요. 그분들 사실 신청할 수 있는 루트가 편하지는 않잖아요? 언어를 잘 모르십니다. 그분들은 예약 없이도 현장에서 희망을 하시면 바로 줄 서서 종 칠 수 있게 마련을 해 놨어요. 그분들에게 여섯(6)번을 할애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타종에 참여 하시면 아마 좋은 일들 많이 생기지 않을까 싶고요. 아울러 보신각에는 항상 종지기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오시면 제 얼굴을 기억을 하신다면 종지기님 아시냐 한번 물어봐 주시면 진짜 기쁠 것 같아요. 저 아는척 해주시고 격려도 많이 해 주시고. 제가 스승님의 손자이신 예비 육(6)대 종지기 친구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많은 성원과 아낌 그리고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면담자 : 네 알겠습니다. 가까이 있으면서 몰랐던 보신각의 의미. 타종의 의미. 그리고 보신각과 타종행사를 관리하고 의미를 불어 넣어주는 종지기가 있다는 것. 사실 이번기회에 저희도 처음 알게 돼서요. 이런 것들이 시민들 혹은 국민들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고 한국의 전통문화로 잘 자리 잡고. 사실 이러한 종지기의 일이 계속 이어져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너무 감사드리고요. 오늘 해주신 좋은 말씀들은 잘 편집해서 서울시에서 많은 시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끔 잘 작업을 하겠습니다. 구술자 : 한 가지 희망사항이 더 있는데, 제 업무에 보신각 터 관리업무 총괄이라고 되어있어요. 이건 사담입니다 진짜. 제 업무에 오(5)대 종지기의 업무도 같이 딱 문구를 넣고 싶은데, 사실 공직 사회가 조직 사회다 보니까 한 개인의 역사를 사실 업무에 집어넣기는 싶지 않더라고요. 나중에 잘 되겠죠? 면담자 : 이런 말씀들 혹은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더 알게 되면,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한 상세한 설명 안에도 몇 대 종지기 이런 것들이 엄연히 필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설명을 했을 때 ‘아 이분이 어떤 일 하시는 분이구나.’ 하고 정확히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게 단순히 어제 오늘 만들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역사를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개요
동영상 제목의 개요 : 구분, 지역, 분야, 시기, 출처
구분 없음 지역 종로구 분야 시민생활
시기 2017.09.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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