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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미래유산

독서당터
작성자 : 라라랜드 추천수1 조회수29 작성일2019.07.15

젊은 학자들을 사가독서(賜暇讀書)하게 하던 독서당이 있던 곳

일명 호당(湖堂)이라고 하는데,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에게 휴가를 주어 사가독서를 하게 한 것이 그 효시였다.

독서당은 성종 23년 용산 청암동에 있는 절을 수리하여 마련된 남호독서당이 첫 정식 장소였으며, 연산군 때 일시적으로 폐쇄되었다가 중종 12년부터 두뭇개 동호당, 즉 동호독서당이 완성되면서 지금의 옥수동 244번지 동쪽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호독서당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며, 이후에는 한강별영에서 독서당의 명목이 이어지게 되었다.

독서당의 당원은 한 번에 평균 6명 정도를 선발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당원으로 선발되는 과정이 매우 엄격하였다. 또한 독서당은 많은 인재를 배출해 내어 그 권위가 높았는데, 조선 최고의 학자 중 한 명인 율곡 이이(李珥)도 이곳 독서당의 당원 중 한명이었다.

독서당은 숙종 35년에 이르러 폐지되면서 350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폐지된 후에는 부군당이 세워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서당 터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서울 문화재 기념표석들의 스토리텔링 개발), 2010.,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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