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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게시물 : 30건   |   페이지 3 /4
서울에서 가장오래된 ㅇㅇㅇ 1부 - 제과점(태극당)

서울에서 가장오래된 ㅇㅇㅇ 1부 - 제과점(태극당)

작성자  |  미래유산
추천수5 조회수2708 작성일14.04.01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거...     내 얼굴 아니야?   약간 부패한 것 같은데. 자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멸종됐다고 하는데 닥쳐 내가 살아있으니깐.     인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생존신고했으니 이제는 서울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를 찾아서. . .                               태극당은 1945년 광복 이후 일본인이 운영하던 제과점 '미도리야'를 인수해 1946년에 개업했다고 한다. 장충동에 자리 잡은 건 1973년.     동대입구역 2번 출구로 나가는 계단을 중간쯤 올라가다 보면 왼쪽에 태극당 건물만 딱 보이는데 순간 지하철 타고 70년대로 거슬러 온 듯한 기분이 든다.        빨리 빵 먹고 싶은 마음에 셔터를 누르는 내 손은 급해지고. 앞에 있던 아가들을 앞질러 빵집 털이범처럼 문을 박차고 들어감.     손들어 빵 내놔             쟁반 들고 집게로 빵 집는 상상하면서 들어갔는데 나와 빵을 가로막고 있는 진열장.     부숴버려.         내부가 굉장히 넓고 고급스러우면서도 금붕어 어항, 돌 조각품, 액자 등 인테리어가 정말 옛날 그대로여서 태극당 안으로 들어가면 1970년대 그 시절, 그대로 시간이 딱 멈춘 느낌이 든다.           와 진짜 겁나 오랜만이다 이 어항과 이 금붕어... 왠지 나보다 나이 더 많이 먹어서 밤 되면 어항에서 걸어 나와서 빵 포장할 것 같아.       잠깐 가격은... 미래에서 온 것 같은데?           글씨체 하나로 40년대를 넘나들다니 그 정도야 뭐... 난 얼굴 하나로 원시시대를 넘나드는데.       우와 추억 떠오른다 진짜...   내가 정자였던 추억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저 때 난 태어나지도 않았어.       헐... 완전 커 저거 사서 다 먹는 사람 이해 못할 것 같음ㅋㅋㅋㅋ   그리고 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 했다.       요즘에는 거의 대부분 우유 생크림 케이크라서 근 5년간 버터케이크는 구경도 못해봤는데. 완전 추억 돋았다.    할머니 칠순잔치 때 볼 법한 세기말 디자인의 케이크.       글씨체가 다...했잖아요...   처음에 모니카 아이스크림인 줄 알았다. 모니카라는 선교사가 들여온 아이스크림인 줄 알고 조금 고마워했지만 헛짓거리였음.   개당 1500원이고 10개 20개 30개 등 묶음으로도 판다.               얘기해주시는데 난 이미 빵에 영혼이 팔려서   "주세요... 그냥 주세요... 계산...빨ㄹ리 계산이요..."     옛날엔 여기가 미팅의 핫플레이스였다던데   "제가 맘에 드시면 크림빵을, 맘에 안 드시면 다른 빵ㅇ...   "곰보빵!!! 곰보빵!!!!!"   왜 갑자기 이런 시나리오가 생각나는 거지.       클래식한 포장지가 제일 맘에 든다. 왠지 안 버리고 간직해야 될 것 같음.   이걸 한 입 먹기 전까진 붕어싸만X 같은 눅눅한 질감의 과자를 상상했다.       하지만 한 입 먹었을 때,   대박...뭐야 완전 바삭바삭하네?!! 와 맛있어ㅠㅠㅠㅠㅠ 헐 다 먹음. 왜 10개, 20개, 30개 묶음으로 파는지 깨닫는 순간.     태극당 빵은 전체적으로 크기가 크고 속이 꽉 차있다. 빵을 반쯤은 먹어야 속이 나오는 그런 빵 나부랭이와는 달라.       5000원...? 하지만 크기와 두께가 어마무시하다.   모나카만 여기 앉아서 먹고 나머지는 어무니아버지 드리려고 집으로 가져감.   가져가서 식탁에다 놨는데 하루가 지나도록 가족들 아무도 안 먹는 거 그래서 왜 아무도 안 먹느냐고 했더니   빵 봉지만 보고 어디서 불량식품 가져왔냐며... 내가 먹고 싶은 거 참고 가져왔더니 아무도 안 먹어 참나...     나이쓰.   [출처]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OOO -1부- | 작성자   20trend
서울에서 가장오래된 ㅇㅇㅇ 2부 - 중국집(안동장)

서울에서 가장오래된 ㅇㅇㅇ 2부 - 중국집(안동장)

작성자  |  미래유산
추천수5 조회수2903 작성일14.04.01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것들 찾아다니느라   자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추억팔이하러  다니는  조상님 된 기분. 이제 신문물이 낯설어 지려고 해... 왠지 한지에 붓글씨로 포스팅 해야 될 것 같아.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것들을 찾아다닐 때 맛집 탐방의 순간이 가장 설렌다.   아 내 심장 조용히 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은 1948년에 개업한 안동장이다.   오래됐다고 해서 낡고 중후한 분위기 일 줄 알고, 그냥 편하게 하고 나갔는데   세상에... 가게가 리모델링을 했네. 리모델링은 내 얼굴이 해야 될 거 같은데. 3층까지 있는 안동장. 주인아저씨께서 주문받으시다가 갑자기 다른 직원분한테 큰 소리로     "이열솨우디디 찍었어???" "!$#%@^*"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0개 국어를 하는 건가? 순간 주문을 손짓과 발짓으로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화교 출신인 분이  3대째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근데 이 정도 양이면... 내가 집에서 부엌 지나가다 식탁에 있는 음식  집어먹는 정돈데?   안동장에서 제일 유명한 메뉴는 바로 굴짬뽕. 이곳이 굴짬뽕이라는 음식을 처음 선보인 곳이라고 하는데, 이 사실을 뒤늦게 안 나를 반성해 본다.         이건 그냥 짜장면.     여기서 목격담 하나 텀. 어떤 여자가 짜장면 하나 다 먹고 좀 있다 그 여자 아빠처럼 보이는 분이  오셔서  송이 짜장면 시키셨는데, 딸이 그거 또 먹더라...ㅋㅋㅋ 좀 보기 그렇던데... 왜 저러고 사나 몰라ㅋㅋㅋㅋ       죄송합니다 아빠.     비록 전체적으로 서울에 서 가장 오래됐다는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맛은 진짜 담백하고 소박한  옛날 전통의 맛이었다.     옛날에는 졸업식이나 특별한 날에만  짜장면을 먹을 수 있었는데... 정말 그 아련했던 추억이 떠오르는 맛. 은 무슨 나 졸업식 날 소고기 먹음.     아 맛 표현하기 너무 어렵네... 솔직히 음식물 쓰레기 아닌 이상 다 맛있게 먹는데... [출처]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OOO -2부- | 작성자 20trend
서울시 도로원표

서울시 도로원표

작성자  |  미래유산
추천수7 조회수2664 작성일14.04.01
서울특별시 도로원표(道路元標)를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우연하게 보게 된 것입니다.     광화문에 있는 코리아나 호텔에 대기중이었습니다. 너무 일찍 도착하여 대기하면서 지루하여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 보고 있던 중 이 이정표를 보았습니다.   도로원표입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다가가 확인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도로의 시점은 서울 시청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 도로의 원점이 시청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라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고 또한 그것도 이 표지판을 보고 알게 된 것입니다.   바로 사진기를 꺼내 촬영한 것입니다.   위치는 코리아나호텔과 동화면세점 중간, 파출소 앞입니다.       이것이 바로 서울시 도로원표입니다.                   도로 원표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이런 동판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각 방향으로 지역과의 거리가 동판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동서남북 방향으로 말이죠.....     요즈음 독도 문제가 일본과 국제적으로 난리를 치고 있는 가운데 독도와 도쿄의 거리가 동시에 있는 동판을 보고 조금 의아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너무 대조적인 감을 느껴 촬영했습니다.       우리들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곳....   1시간 또는 2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곳이지만 갈 수 없는 곳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촬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각 방향으로 외국 도시와의 거리도 함께 동판으로 만들어져 있더군요.     도로 원표에 대한 자료 정리입니다.   도로원표(道路元標)는 도로의 기점(起點) ·종점(終點) 또는 경과지를 표시하는 것으로 도로법 제2조 제1항 4호에 도로의 부속물로 정해져 있고, 도로법시행령 제27조 및 도로법시행규칙 제16조에 설치와 관리에 관한 규정이 있다.     도로법시행규칙 제16조에 의하면 도로원표의 위치는 도청ㆍ시청ㆍ군청 등 행정의 중심지, 교통의 요충지, 역사적ㆍ문화적 중심지로 정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도로원표가 위치한 곳은 역사적으로도 도시의 중심, 교통의 중심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국 시·군간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점이다. 다만, 고속도로에서의 거리표시는 나들목(I.C)간 거리이므로 도로원표와 무관하다.   통상적으로 네거리중심점은 차도이므로 도로원표(조형물)를 설치할 수 없어 그 곳에는 도로노면과 같게 동판으로 도로원점(眞위치)임을 알리는 표식(진표)을 설치하여 관리하고, 인근에 조형물(이표)을 설치하여 도로원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의 도로원표(진표)는 세종로 네거리(세종로와 종로가 나누어지는 4거리 중심점, 교보빌딩 앞)에 있다.   이표는 세종문화회관 앞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서울특별시의 도로원표만은 도로법시행령 제27조 제2항의 규정으로 그 위치를 세종로광장의 중앙으로 정하였다. [출처] ■ 서울시 도로원표를 보다. (제 3의 인생) |작성자 정택열
한옥문화 혜화동주민센터

한옥문화 혜화동주민센터

작성자  |  미래유산
추천수7 조회수2749 작성일14.04.01
아름다운 절 성북동 길상사         벌써 법정 스님이 입적하신지 4년이 되었네요     길상사는 서울에 있기 때문에 인사동이나 삼청동 쪽으로 나가게 되면   맘 편히 자주 찾아가게 되는 사찰 중의 한 곳입니다.       길상사는 법정 스님이 원래 제3공화국 시절 국내 3대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의 주인인 김영한이란 분으로부터 시주를 받아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창건한 것으로는 알고 있었는데   그녀의 사연을 알고 난 뒤부턴 올 때마다 가슴 아프고 이 절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원래 이 요정의 주인이었던 김영한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몇 번씩이나 법정 스님을 찿아가 당시 시가로 천억 원이 넘는 대원각을 시주하겠으니 절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은 몇 번이나 고사하다가 마침내 1995년 대법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7년 길상사 창건 법회 때 김영한은 법정 스님으로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라는 법명을 받습니다.   그때 당시 그녀는 수천의 대중 앞에서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는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했답니다.        언젠가 그녀는 기부한 천억 원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천억 원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라고 말했답니다.   그녀가 말한 그 사람은 바로 천재 시인 백석이었고   그녀는 백석이 사랑했던 그녀 자야였습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20대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였지만 기생과의 만남을 못마땅히 여긴 백석의 부모로 인해   백석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고 그 이후로도 백석은 몇 번이나 김영한의 곁으로 돌아가다가   결국 같이 만주로 도망가자고 설득했지만 김영한이 이를 거절하고 혼자 만주로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의 이별이 얼마 후 남북이 분단되어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이별이 될 줄은....       김영한은 육신의 옷을 벗기 하루 전 목욕재계 후 길상사에 와서 참배를 하고 길상헌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첫눈 오는 날 길상사 마당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그리고 49재 후 첫눈이 도량을 순백으로 물들인 날 시와 사람을 사랑한 그녀는   하얀 눈이 되어 길상헌 뒤쪽 언덕 바지에 뿌려졌습니다.           주차장에서 길상사 정문으로 향하는 길   삼각산 길상사 입구 일주문   입구에 있는 조감도     길상사는 서울 시내에서 조용히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지요.       입구에서 안내판 작업을 다시 하고 있더군요.   아마도 많이 벗겨졌나 봅니다.     입구를 들어서서 오른 편에 보이는 설법전   극란전과 법종각   여기는 여느 사찰과 달리 대웅전이 없습니다.   예전 건물의 일부는 보수를 하였으나 대부분의 건물은 그 당시 대원각 시절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단청 하나 없는 전각이 더 의미있게 느껴집니다.        범종각   이곳에서 맑고 장엄한 종소리가 그녀의 소원대로 울려 퍼지겠죠     극락전     대웅전 대신 있는 곳으로 다른 절에서는 무량수전이라고도 불린다니 대웅전과 같은 개념인 듯합니다.     설법전을 거쳐 극락전으로 오르는 길       지장전과 도서관   2층은 지장전이고, 1층은 도서관입니다.     관세음보살상   길상 7층 보탑과 안내 표지판     여기 부처님의 사리도 봉안되어 있다니 역사가 짧은 사찰치고는 대단하지요.       200년이 넘은 수령의 느티나무 보호수     침묵의 집   여기는 누구나 들어가서 명상을 할 수 있는 곳이랍니다.   다음에는 우리도 아이들과 조용히 명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습니다.   적묵당     사찰에서 필요한 작업들이 이루어지는 곳이랍니다. 연등도 여기서 제작한다는군요.     스님들의 처소     스님들의 처소인데,  능인당, 죽림당, 반야당 등 각 방마다 머무시는 스님에 따라 모두 이름이 있더군요.       길상선원     선원인데, 여기는 침묵의 집과는 달리 수련을 거친 사람들에게만 개방된다고 합니다.       길상화 공덕비와 다리   길상화 보살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놓은 공덕비입니다.   길상사에서는 그녀의 유골이 뿌려진 그 자리에 조그마한 돌로 공덕비를 만들어서   그녀의 뜻을 기리고 매년 음력 10월 07일마다 기재를 모셔 그녀를 추모한다고 합니다.     길상헌   길상화 보살이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처소입니다.   곳곳에 있는 안내 표지판     사찰 곳곳이 현대에 지은 사찰임에도 고찰을 느낄 수 있어 더 좋습니다.   법정 스님의 좋은 말씀들   여기는 법정 스님께서 생전 아끼시던 시나 하신 좋은 말씀들이 곳곳에 있어 글을 읽으며 마음이 편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효제   길상사 정문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어 한번 들러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가게가 크지는 않지만 오목조목 예쁘고 수작업을 한 작품들을 구경하고 구입할 수 있어 구경할 만합니다.     부산에서 후배 부부가 놀러 왔을 때 여기를 꼭 가보고 싶어 해서 다녀온 기억이 납니다.         길상사는 무소유의 법정 스님께서 만드신 곳이어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사찰입니다.     다른 사찰에 비해 일반인 누구나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도 있어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또한 주변에 삼청각과 같은 유명한 식당이자 드라마 촬영장도 있으니  구경하시고,   삼청동에 내려와서 골목 구경도 하면서 산책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니 한번 가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bandipa님의블로그  |  반디아빠   http://blog.naver.com/bandipa/120208776161
서울에서 가장오래된 나무 방학동 은행나무

서울에서 가장오래된 나무 방학동 은행나무

작성자  |  미래유산
추천수3 조회수3194 작성일14.04.01
' 늦가을 이웃 동네 나들이 ~ 서울 방학동의 명소들 ' (방학동 은행나무, 양효 안맹담/정의공주묘, 목서흠 묘역) ▲  방학동 은행나무                                         ▲  양효 안맹담 신도비 늦가을이 절정을 이루던 10월의 마지막 주말, 이웃 동네인 방학동(放鶴洞)으로 마실을 갔 다. 방학동은 내가 사는 도봉동과 더불어 도봉구(道峰區)를 이루는 동네의 하나로 북한산 과 맞닿은 방학동 서부(방학3동)에는 연산군묘(燕山君墓)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 무를 비롯하여 속세(俗世)에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명소들이 많다. 이들은 모두 우리집에 서 도보 30분 거리로 무척이나 가깝지만 이웃 동네임에도 지금까지 겨우 3~4번 밖에 가지 못했다. (그에 비해 북촌이나 성북동, 부암동은 1년에 몇 번씩이나 갔음...) 본글에서는 서울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방학동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원당샘, 정의공주 부 부 묘역, 목서흠 묘역과 신도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연산군묘는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음) ♠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830년 묵은 노거수, 가을이 이곳에 있었구나~~ 방학동 은행나무 (방학동 은행나무 2013년 3월 28일에 서울시 지방기념물 33호로 지정됨) - 서울시 보호수 10-1호 ▲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본 방학동 은행나무의 자태 방학동 연산군묘 앞에는 도봉구(道峰區) 10대 명소의 하나이자 서울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방학 동 은행나무가 만추(晩秋)의 절정을 즐기고 있다. 지나가던 가을도 흠뻑 반하여 오랫동안 머물 렀다 가는 이 나무는 황금 옷으로 화사하게 갈아입으며 늦가을 은행나무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아무리 잘난 화가라 할지라도 그대로 흉내내지 못할 아름다운 은행잎들, 이제 가을이 꽤 깊어지고 겨울제국의 도래가 임박했음을 실감케 해준다.  이 정도의 휼륭한 나무면 국가지정 천연기념물로 삼아도 전혀 손색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화양 리(華陽里) 느티나무처럼 지방기념물로 삼아도 문제가 되지 않을텐데, 어찌하여 아직까지 보호 수 등급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그저 고개가 갸우뚱할 따름이다. 이 나무의 나이는 무려 830살을 헤아린다고 한다. 그런데 1990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안내문 에 800년이라 나와 있었는데, 2004년에 와보니 그새 30년이 더해서 830년이라 나왔다. 14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나무의 나이는 그 곱으로 더해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830년이라 나와있다. 정확한 나이까지는 헤아리기 어렵겠지만 대략 800년 이상 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의 높이는 25m, 둘레 10.7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이다. 은 행나무는 대부분 사람들이 심은 것으로 누가 심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로지 그만이 알 뿐이나 너무 어렸을 적이라 누가 심었는지 기억 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그 이후 이곳은 세종의 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의 땅이 되면서 그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았을 것이며, 그 이후 그의 후손과 외손인 신씨 집안의 나무로 부족함이 없이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의정궁주(義貞宮主)와 연산군 가족의 장례까지 말없이 지켜봤을 것이며, 묘역에 늘 시원한 그늘 을 드리워 그들과 함께 한다. 예로부터 지역 사람들이 특별히 아끼고 신성시하던 나무로 나무에 불이 날 때마다 나라에 큰 변 이 생긴다고 한다. 실례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서거하기 1년 전인 1978년에 큰 불이 나서 소방차를 동원해 간신히 불을 껐다고 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 주변은 밭과 논두렁이 널린 시골로 은행나무가 여기서는 단연 규모가 큰 존재였다. 허나 2000년 이후 주변에 빌라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나무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정말 독보적인 존재였는데, 이제는 인간들이 지어놓은 높다란 아파트의 위세 에 눌려 조금은 애처로워 보이기도 한다. 또한 무분별한 주택 건설로 나무의 건강에 빨간 불까 지 켜지게 된다. 다행히 동네 주민들의 강력한 민원으로 나무가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도록 아파트의 구조가 변경 되었으며, 주변을 정비하여 나무 주위로 은행잎이 마음 놓고 내려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하지만 경관을 배려하지 못한 인간들의 성냥갑 건축물들이 나무 동쪽과 남쪽을 막고 있고, 북쪽 에는 연산군묘가 있는 언덕까지 있어 그야말로 사방이 막힌 답답한 형태가 되버렸다. 정말 햇볕 이라도 제대로 받고 있는지 걱정이 들 정도로 말이다. ▲  은행나무의 아랫쪽에 둥글고 넓은 공간을 만들어 은행잎이 마음 놓고 떨어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대지를 가득 뒤덮은 은행잎에 귀를 기울이면 세월과 겨울을 원망하는 그들의 조용한 절규가 들려올 것만 같다. 지역 주민과 북한산 등산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그는 동네 정자나무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 역할도 마다하지 않으니 정말로 아낌없이 베푸는 소중한 나무이 다. 내가 제일 흠모하는 나무로 집 근처에 이런 아름다운 나무가 있다는 것에 그저 고마울 따름 이다. 게다가 근래에 도봉산 둘레길이 앞을 지나가게 되면서 그를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나무의 모습은 계절의 변화를 제외하고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 변함이 없다. 단 달라진 것이 있 다면 나무의 주변 풍경들, 그리고 나무를 찾은 사람들의 모습 정도, 우리나라 은행나무의 지존 으로 일컬어지는 양평 용문사(龍門寺) 은행나무도 시샘할 정도인 방학동 은행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는 나그네의 마음을 충분히 빼앗고도 남음이 있다. 인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우쭐거려도 그 나무 앞에서는 일개 초라한 두발 동물에 불과하다. 은행나무가 지금까지 장수(長壽)를 누리며 별탈없이 살아온 이유는 자연에 순응하며 조용히 살 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들도 이제 은행나무의 그런 철학을 배워야 되지 않을까? 겨울을 재촉 하는 바람이 불 때마다 은행잎들이 외마디 괴로운 소리를 지르며 별다른 저항도 못해보고 쓸쓸 히 땅으로 떨어진다. 사람들은 땅에 떨어진 그들 이른바 낙엽을 보며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지 만, 귀를 접은 은행잎은 내년 봄을 기약하며 서서히 땅속으로 흡수된다. 그렇게 겨울제국의 시 련을 준비하는 은행나무의 모습은 한편으로 이제 곧 나이 1살을 먹는다는 우울감을 던져주기도 한다. ▲  은행나무에서 만난 알록달록 묘공(猫公) 그도 나무 구경을 하러 온 것일까? 나무 주변을 한참 어슬렁거리다가 몹내 지쳤는지 한쪽 구석에 쭈그려 앉아 낮잠을 청한다. * 연산군묘 남쪽에 자리한 원당천(원당샘) 원당천은 이곳에 있던 원당마을의 식수로 600년이 넘은 오래된 샘터이다. 예전에는 우중층한 모습으로 수질도 많이 악화된 상태였으나 2010년 이후 샘터를 깨끗하게 정비하고 수질도 개선하여 동네 약수터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 원당천 샘터의 모습은 바뀌었지만 원당천 표석은 그대로이다. * 원당천 안내문 * 원당천 주변에 조성된 공원 - 이곳은 예전에 너른 채소밭이었음 원당천과 그 주변을 정비하면서 지금의 공원으로 변신했다.     * 방학동 은행나무 - 서울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이다. 2013년 서울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예전에는 서울시보호수로 830년 정도 묵은 것으로 전해졌으나 지방기념물 지정시 나이를 다시 재보니 600여년 정도로 나왔다.     ♠  양효공 안맹담(良孝公 安孟聃), 정의공주(貞懿公主)묘역 - 서울 지방유형문화재 50호 연산군묘로 들어가는 정의공주묘 버스정류장 북쪽에는 품위가 깃든 잘 정비된 묘역이 있다. 바 로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부부의 묘역이다. 묘역 주변에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녹색 철책을 둘렀는데, 묘역 전체가 밖에서도 훤히 바라보이므로 굳이 울타리를 넘을 필요는 없다. 이곳에 누운 안맹담(1415~1462)은 죽산안씨(竹山安氏)로 호는 덕수(德壽)이며, 1415년 가선대부 (嘉善大夫) 안망지(安望之)의 아들로 태어났다. 1428년 세종의 2번째 딸이자 동갑내기인 정의공 주와 혼인하여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졌다. 1432년에 연창군(延昌君)에 봉해지고, 1450년에 연 창위(延昌尉)가 되었다. 1457년 수록대부(綏祿大夫)가 되고 사육신(死六臣) 사건으로 그해 8월에 원종공신(原從功臣)이 책봉되었으며 1462년 47세의 나이로 병사하니 세조(世祖)는 매형인 그에게 양효공(良孝公)이란 시호(諡號)를 내렸다. 그는 활을 잘 쏘았다고 하며, 음악과 서예에도 매우 능했다고 한다. 안맹담의 부인인 정의공주(1415~1477)는 세종의 2째 딸로 세조의 누님이다. 소헌왕후(昭憲王后) 의 소생으로 훈민정음 프로젝트 때 큰 공을 세웠는데, 다음의 일화가 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 때, 변음(變音)과 토착(吐着)을 끝내지 못하여 왕자들에게 보내 풀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풀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정의공주에게 풀라고 하니 공주가 바로 풀어서 보냈다는 것이 다. 이에 부왕은 크게 칭찬하고 노비 수백 명을 내렸다. 남편이 죽은 이후 1469년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상,중,하를 간행했다. 이후에 뚜렷한 족적(族籍)은 없으며, 1477년 62세의 나이로 남편을 따랐다. 안맹담 부부의 묘역은 쌍분(雙墳)으로 봉분 앞에 묘비와 상석(床石), 장명등을 각각 두었고, 문 인석(文人石) 2쌍을 무덤 앞에 벌려 세웠으며, 그 바로 밑에는 아들인 안상계의 묘를 두었다. 안상계(安桑鷄)는 호가 전은(田隱)으로 작은 삼촌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계유정난(癸酉靖難) 을 일으키자 저자도(楮子島)에 은거했다. <저자도는 압구정동과 옥수동(玉水洞) 사이 한강에 떠 있던 섬이었으나 강남 개발로 폭파되어 사라짐> 그는 수양대군(세조)과 사이가 좋지 못해 그의 재위 시절에는 시와 술을 벗삼아 숨어 지냈으며, 성종 때는 수원부사와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 )을 지냈다. 그의 묘는 비석과 상석, 망주석이 전부인 단촐한 모습으로 묘역 동남쪽에는 안맹담의 행적을 적 은 신도비(神道碑)가 서 있다. ▲  양효공 안맹담 신도비 신도비는 보통 무덤의 동남쪽에 세우는데, 그것은 묘의 동남쪽이 풍수지리적으로 신도(神道)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도비란 존재는 왕족과 고위 관리의 무덤에만 쓸 수 있었던 정말로 특권층의 비석이다. 이 비석은 1466년에 세운 것으로 비신(碑身)에 새겨진 비문(碑文)의 내용은 정인지(鄭麟趾)가 짓고 글씨는 안맹담의 4번 째 아들인 안빈세(安貧世)가 새겼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약 5m, 귀 부(龜趺)의 높이 약 1.6m, 길이 약 1.7m로, 비석을 등에 맨 거대한 거북이 고개를 앞으로 쑥 내 밀며 서쪽의 북한산을 바라보고 있다. 귀부는 시원스레 뻥 뚫린 콧구멍이 인상적이며,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고, 눈은 약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머리 아랫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선이 새겨져 있고 땅바닥과 마주하는 양쪽 모퉁이 에는 거북의 발이 새겨져 있으나 축 늘어진 듯, 발과 다리가 몸에 너무 붙어버려 발가락의 일부 만 확인이 가능하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육중한 그의 등껍데기에는 비신이 세워져 있다. 비신 위에는 2마리의 이무 기가 여의주(如意珠)를 두고 다투는 모습이 새겨진 이수(?首)가 있다. 이수의 이무기는 여의주 를 우러러 보며 이렇게 외치는 듯 하다. "저건 내꺼야, 너는 건드리지 마라, 오직 나만이 하늘로 승천할 수 있다" 그들의 표정은 그런 희망으로 가득 부풀어 올랐다. 허나 저들은 죽었다 깨도 여의주를 차지하지 못한다. 그저 열심히 노려보며 신경전만 벌이다가 인생을 종치기 때문이다. 결국 여의주는 허공 에 떠 있는 허구일 뿐이다. 보주를 둘러싼 이무기들의 다투는 모습을 보니 오늘날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서로 아옹다옹 거리는 오늘날 인간들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성공의 자리에 오르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 이들 모두 허공에 뜬 저 여의주와 같거늘.. 그저 티끌의 욕심도 없이 동글동글하게 살다 갔 으면 좋겠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3-1 ♠  도봉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 충정공 목서흠 묘 역(忠貞公 睦?欽 墓域) - 서울 지방기념물 27호 ▲  충정공 목서흠 묘 정의공주 부부 묘역에서 도봉산 둘레길로 인도하는 좌측 흙길로 들어서면 커다란 기와집이 나온 다. 그 집은 사천목씨(泗川睦氏)의 재실(齋室)로 그 재실로 들어가지 말고 그 우측에 넓은 공터 로 쭉 들어서면 재실 뒤쪽에 목서흠 신도비가 모습을 내민다. 그 신도비에서 왼쪽, 그러니까 북 쪽을 보면 묘들이 주렁주렁 자리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목서흠 일가의 묘역으로 묘역 제일 위 쪽에 목서흠의 묘가 묘역을 굽어보고 있다. 목서흠(睦?欽, 1571~1652)은 사천목씨로 자는 순경(舜卿), 호는 매계(梅溪), 시호는 충정(忠貞 )이다. 이조참판을 지낸 목첨(睦詹)의 아들로 1603년 음보(蔭補)로 내시교관(內侍敎官)이 되었 고, 1610년 알성시(謁聖試)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병조정랑(兵曹正郞)이 되었다. 1623년에 함경도선유어사(咸鏡道宣諭御史)가 되어 인조반정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살폈으며, 광 주목사(廣州牧使)와 좌승지(左承旨)로 승진,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 때는 인조를 호종했다. 그 이후 참찬관(參贊官), 우승지(右承旨), 한성부 좌우윤(左右尹)을 지내고 1642년 개성유수(開 城留守)로 있으면서 병자호란 뒷수습에 나섰다. 또한 상소를 올려 붕당(朋黨) 정치의 폐해를 지 적했다. 1650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70세 이상의 관원만 들어갈 수 있는 기로소(耆老所)의 당상관 이 되었다. 그는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고 청렴하기 그지 없던 인물로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 났다. 목서흠 묘역은 조선 중기 무덤양식이 잘 반영된 점이 인정되어 2009년 6월 신도비와 함께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목서흠 묘역 외에도 방학동과 도봉동(道峰洞)의 도봉산 자락에는 조선 왕족/귀족들의 무덤이 엄청나게 많다. 예로부터 명당자리로 명성이 나있기 때문이다. 목서 흠묘는 그중에 하나일 뿐이고, 그보다 더 괜찮은 묘역도 많은데 왜 이곳만 문화재로 지정되었는 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곳 묘역의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목서흠묘는 그의 부인인 연일정씨와 같이 묻힌 합장분(合葬墳)으로 봉분의 크기는 조촐하다. 봉 분 앞에 묘의 주인을 알리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이 있고, 그 좌우로 작은 동자상(童子像) 1쌍 이 두손을 가슴 앞에 모으며 서 있는데, 그 모습이 귀엽다. 무덤 좌우로 망주석이 1쌍 있을 뿐, 그 흔한 문인석도 없어 간소하기 그지 없다. ▲  400년 나이에도 정정한 모습을 자랑하는 목서흠 신도비 묘역 아래 재실 뒤쪽에는 목서흠의 신도비가 있다. 비문은 그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명문장가 조경(趙絅)과 이정영(李正英), 조위명(趙威明)이 쓴 것으로 그들의 글씨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 한 비문이다. 앞에 나온 안맹담 신도비와 달리 귀부가 없고, 그냥 비석을 세우는 비좌(碑座)만 있다. 지붕도 현란한 조각의 이수 대신에 지붕돌로 조촐하게 마무리를 지어 청렴했던 그의 명성을 가늠케 해 주며, 비신 밑부분이 좀 검게 그을려진 것을 제외하고는 건강상태도 양호하다. ▲  정면에서 바라본 목서흠묘 (묘비와 상석, 동자상) ▲  목서흠묘에서 바라본 사천목씨 묘역 늦가을이 곱게 봉숭아물을 들인 숲 너머로 방학동 신동아아파트가 보인다. ▲  목서흠의 선조인 목진공(睦進恭)의 묘 목서흠묘 아래쪽에는 그의 조상인 목진공의 묘가 있다. 그는 조선 초기에 활동했던 인물로 태종 때 우부대언(右副代言)과 참판(參判)울 지냈다. 1417년 부평부사(富平府使, 인천 부평)를 지낼 때 우희열(禹希烈)과 함께 들판을 개간하여 농업에 크게 기여했으며, 그 당시 부평(富平) 지역 의 논이 450결에서 1,000결로 크게 늘어났다. 목진공의 묘는 목서흠의 묘와 비슷하나. 동자석 대신 조그만 문인석이 있다는 것이 다르다. 600 년 세월의 떼가 입혀진 문인석과 비석에서 무덤이기에 앞서 고색의 멋이 풍긴다. ▲  목림일(睦林一)의 묘 목서흠의 묘에서 우쪽 산길로 들어가면 목림일의 묘가 있다. 목림일은 목서흠의 아들로 그의 딸 은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의 생모이다. 무덤의 구조는 앞의 2개의 묘와 비슷하며, 동자석이 없다. ▲  사천목씨 시조단소(始祖壇所) 목진공의 묘 왼쪽으로 숲으로 들어가는 산길이 있다. 그 길로 들어서면 비석 6개가 늘어선 공간 이 나오는데, 사천목씨 시조에게 제를 지내는 단소이다. 모두 근래에 만든 것으로 비석 앞에 길 쭉한 상석을 눕히고 문인석 1상과 망주석 1쌍, 장명등을 세워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목서 흠 묘역과 단소가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사천목씨의 성지(聖地)와 같은 곳이다. 이렇게 하여 늦가을 방학동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2 가져온 곳  : 블로그 >도봉산고양이의 여행공간| 글쓴이  : 박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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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미래유산
추천수4 조회수2547 작성일14.04.01
[기자단] 100년을 이어온 최고(最古)의 가게, 구하산방   몇 대를 이어 같은 업종을 이어온 가게를 '노포(老鋪)' 라고 합니다. 이러한 노포가 특히 많은 곳이 일본인데요. 이들은 적어도 50년 정도 된 곳이 아니면 노포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하니 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지요. 그렇다면 이 조건을 그대로 적용했을 때 우리나라의 노포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놀랍게도 100곳은커녕 50곳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관심과 지원까지 줄어들다 보니 오랜 시간 가게를 지탱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그나마 음식점은 유명세를 타면 안정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 있지만 전통 공예나 미술 등에 관련된 업종은 갈수록 손님이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터전을 지키며 무려 1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가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종로 인사동으로 달려갔답니다.   종각역 3-1번 출구로 나와 아트센터에서 우회전한 뒤 쭉 직진하면 바로 모습을 보이는 구하산방 입니다. 길거리에 흔히 보이는 '30년 전통 김치찌개'라든가 '60년 비법이 들어간 불고기'같은 플랜카드가 거창하게 있는 게 아니라 질박한 모습 그대로 인사동 어귀를 지키고 있었답니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보인 건 벽에 걸린 제품들이었습니다. '어라? 빗자루?' 하실 분들도 있으실 텐데요. 이게 빗자루가 아니란 사실은 다음 사진이 증명해줍니다.     벽에 빽빽하게 전시된 붓들을 보니 아까 본 것도 비로소 붓으로 보이지 않나요? 네, 구하산방은 바로  서화재료를 파는 전통필방 이랍니다. 특히 붓과 함께 유명한 게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안료들인데요. 이곳의 홍수희 대표님은 안료에 대한 높은 식견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숭례문이 복구된 후 급격히 훼손되고 있는 데 대해 여러 매체를 통해 깊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답니다.     조심조심 다니지 않으면 옆의 물건을 툭 칠 만큼 빽빽한 서화재료의 산 속에 들어가 홍수희 대표님 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 안녕하세요, 대표님? 구하산방의 명성을 오늘 드디어 확인하게 되네요. 사람들 말로는 70년이 넘었다, 90년이 넘었다, 100년이 넘었다 하던데 이곳이 설립된 건 정확히 언제인가요?   -여긴 1913년에 충무로 진고개에서 처음 열었어요.  그러니까 햇수로 따지면 딱 100년 전이지요. 그 뒤로 코스모스 백화점이 있던 명동, 시청앞, 안국동 같은 곳으로 옮겨다녔지. 한국전쟁이다 1.4후퇴다 하는 난리가 계속 나니 안 옮길 수가 있나? 그러다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 이곳이에요.   Q. 역사가 깊다 보니 그간 이곳을 거쳐간 손님이 정말 많겠네요. 옛날하고 비교해 보면 찾아오는 손님에 변화가 많은가요?   -옛날엔 고종 황제, 순종 황제도 우리 집 서필을 썼어요.  그때부터 유명해져서, 지금까지 동양화나 서예 하는 사람들은 다 우리 집 문지방 넘어본 적 있다고 보면 돼요. 운보 김기창 화백이라든지, 이당 김은호 화백이라든지 하는 분들. 그분들이 어려울 적에 우리 집에서 공짜로 재료 챙겨주고 도움도 많이 줬는데 지금은 이렇게 대가가 되셔서 정말 감사하지요.     Q. 이곳의 방침은 연중무휴던데, 이유가 있으신가요?   -옛날부터 이곳엔 지방에서도 많이들 오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오는 시간이 일요일이다 보니 시간이 부족했지. 그래서 일요일도 영업하다 보니 그게 굳어져 버렸지요. 사람들도 이젠 일요일에 문 당연히 여는 줄 아는데, 이제 와서 닫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Q.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건 역시 붓일 텐데요. 구하산방에서는 붓의 생산부터 수선까지 모두 하고 있는 건가요?   -그렇지요. 그리고 그게 중국, 일본과 우리의 차이점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판매도 따로, 생산도 부분별로 나눠서 하고 있는데 우리는 한두 사람이 재료 수집부터 생산, 판매까지 모두 하고 있으니 정말 고생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곳도 종업원을 안 쓰고 우리 가족이 하고 있어요.   Q. 그러셨군요. 그런데 재료 조달이라면 어떻게 하시는 건가요?   -사실 붓 재료를 우리나라에서 조달하는 건 사실상 힘들어졌습니다. 옛날 최고로 치던 건 쥐 수염을 뽑아 만든 붓이었는데 지금은 이런 걸 만들 엄두도 낼 수 없지요. 그래서 누가 정말 만들어내자 방송에 나갈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소의 귓털이나 족제비털, 양털 같은 걸 쓰는데 재료를 구하기 힘드니 중국에서 OEM 방식으로 들여오거나 재료만 수입해 여기서 만들거나 하고 있어요.     -오랜 기간 이곳을 운영하시면서 애로사항도 많으셨을 것 같네요.   -항상 많았지요. 오래된 가게라고 해서 사람들이 다들 '장사 오래했으니 잘 나가겠네?'하는데, 실상은 전혀 달라요. 인사동이 갈수록 유명해지면서 임대료는 계속 올라가지만 매상은 늘 그대로다 보니 버티기가 힘듭니다. 지금 이사를 가면 손님들이 떨어져 나갈 테니 이사가기도 힘들고요. 이런 상황에 대해 정부가 더 잘 알아줬으면 좋겠고, 경제적 지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가 우리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간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Q. 그렇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날로 변해가는 우리 사회에 대해 대표님께선 어떤 처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예전에 서예교육이 활성화되었을 땐 여길 찾는 중고등학생도 참 많았는데, 이젠 미대생이나 화가들 아니면 잘 오질 않아요. 서예교육이 인성을 다스리는 데 그렇게 효과적인데, 그게 잘 되질 않으니 젊은이들에게서 충효 사상이 사라지고 웃어른에 대한 예의가 없어지고 있는 게 늘 걱정됩니다. 한자를 혼용해 학생들이 자기가 쓰는 말의 정확한 뜻을 알 수 있게 하고, 그 속에 담긴 충효 사상을 저절로 깨우칠 수 있게 하면  뉴스에 나오는 흉악한 사건들을 예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100년을 이어온 가게답게 구하산방에는 '지켜져 내려온 의지'가 뚜렷했습니다. 단순히 이익을 내고 가게를 확장해 오래 살아남는 게 아니라 조상부터 내려온 의지를 간직하고 이를 사회에 퍼뜨리는 것이야말로 노포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죠! 부디 이곳이 언제 찾아가더라도 항상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기를, 그리고 구하산방이 바라는 대로 험악해져가는 사회의 분위기가 붓과 먹으로 다스려질 수 있기를, 이곳을 나오며 간절히 소망해 보았답니다.   [출처] [기자단] 100년을 이어온 최고(最古)의 가게, 구하산방 | 작성자 중소기업청  
동대문 평화시장 헌책방 거리

동대문 평화시장 헌책방 거리

작성자  |  미래유산
추천수4 조회수3315 작성일14.04.01
  추억의 책을 만나다 동대문 평화시장 헌책방 거리  서울여행 / 청계천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 있는 헌책방 거리를 돌아봤습니다. 헌책방 거리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30여개의 헌책방이 밀집된 곳입니다.        예전에는 더 많았는데 대형 서점에 밀려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지금은 30여곳 정도 남았다고 합니다. 헌책방 사이에도 다른 업종의 상점들이 하나둘 끼어들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저렴하게 책을 구입하고, 일반 서점에서 사라진 책을 구입하기 위해 자주 이용하던 곳인데 이제는 관광용 서점으로 전락한 느낌이 듭니다.         가게마다 4~5평 남짓한 조그만 책방은 책으로 가득합니다. 아주 오래된 소설책부터 최신 책들까지 일반 서점에서 구하기 힘든 책들이 적지 않습니다. 오래된 외국 잡지와 도감들, 사진책자도 눈에 들어옵니다.   역시 눈길이 가는 책은 여행 관련 책과 화보입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도서관이 전면적인 조사를 했는데 서울 25개 자치구에 100여곳의 헌책방이 있다고 합니다. 서울도서관 홈페이지에는 헌책방 100여곳 위치 및 전화번호 등의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제공되는 서비스는 헌책방 위치(리스트와 지도보기), 전화번호, 이용시간, 휴일 등 기본적인 사항들입니다.           [평화시장 헌책방 거리 목록은 서울시 자료를 참고한 것입니다]    세월의 흐름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오래된 책들....  누렇게 변해버린 책들을 하나둘 들춰보며 추억도 되새겨 보았습니다.                 평화시장 헌책방 가는길 동대문 평화시장 헌책방은 청계천변에 있는 청계천6가 사거리 평화시장 입구에서 시작합니다. 청계천변 오간수교와 버들다리(전태일다리) 사이에 있습니다. 지하철 4호선 8번 출구에서 청계천 오간수교를 건너면 있습니다.              이웃님들도 도심에 나가실 때 한번 다녀오세요...^^*    Tournote | 투어노트  http://tournote.net/20197802686
악기의 무릉도원, 낙원악기상가

악기의 무릉도원, 낙원악기상가

작성자  |  미래유산
추천수100 조회수3397 작성일14.04.01
      안녕하세요. 키팡의 하현지입니다! 여러분들 낙원상가를 아시나요? 악기들의 천국이라고 불리우는 낙원악기상가, 제가 한 번 다녀왔는데요. 낭만적인 통기타 선율, 낭랑한 피아노 소리로 가득한 낙원악기상가로 지금 같이 떠나보아요~!       낙원상가는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악기상가입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음악인들의 성지로써, ‘못 구할 악기가 없고, 못 고칠 악기가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역사도 깊은 곳입니다. 이 곳에는 전통 악기에서부터 현대 악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악기가 모여 있어 있는데요, 세계 어딜 가도 낙원상가처럼 악기만을 파는 대형 쇼핑몰은 없어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낙원악기상가에 찾아가기 전에 먼저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았는데요. 연관검색어로 “낙원상가 기타매장 추천”, “낙원상가 통기타”, “낙원상가 영업시간” 등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것! 낙원상가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0시까지 입니다.  오후 7시 30분이 넘으니 매장을 정리하기 시작하시더라구요. 느긋하게 구경하고 싶으신 분들은 일찌감치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연관 검색어를 살펴본 후 페이스북을 통해 제 지인들을 대상으로 ‘낙원악기상가’ 하면 생각나는 것에 대해 물어보았는데요. 댓글을 남겨주신 30여명 중 다수가 ‘악기’ 와 ‘기타’ 라고 대답해주셨습니다. 연관 검색어에 이어, 낙원악기상가 하면 ‘기타’가 떠오르는 경우가 압도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말로만 들어서는 잘 와 닿지 않으시죠? 이제부터 낙원악기상가를 본격적으로 파헤쳐보도록 할게요~! 낙원악기상가 여기저기를 구경하면서 눈에 가장 많이 띄었던 것은 역시 색색의 기타였습니다. 음악인들이 애용하는 악기 전문 상가답게, 평소에 자주 볼 수 없는 디자인의 악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는데요.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매력이 느껴지는 이 곳, 낙원악기상가를 방문한 사람들을 인터뷰해보았습니다. 낙원악기상가에 방문한 이유, ‘낙원악기상가’하면 떠오르는 것, 낙원상가에서 매장을 고르는 기준, 일반 악기 매장과 다른 낙원악기상가만의 매력 등에 대해 여쭈어보았습니다. 실용음악과 학생(22) “저희는 기타 구경하러 왔어요. 낙원악기상가는 한 마디로 하면 ‘기타 천국’이 아닐까 싶어요. 상품 종류가 여러가지여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요. 또 가격도 저렴하고, 음악 전문가들이 있다는 점이 낙원악기상가를 방문하게 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중학생(16) " 저는 기타리스트가 꿈이에요. 낙원악기상가 하면 기타가 바로 떠올라요. 지금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는데, 호객 행위를 하지 않는 매장 위주로 들어가보고 있어요. 그리고 낙원악기상가는 악기 가격이 저렴해서 더 좋아요.“ 입시 준비생(21) “저는 피아노 사려고 방문했어요. 여기 오기 전에 네이버 검색했어요.(웃음) 음악이 하고 싶은데, 이 곳에 오면 직접 악기를 연주하시는 분들이 보여서 더 자극을 받는 것 같아요.” IT 계열 종사자(27) “기타 구매하려고 왔어요. 낙원악기상가는 국내에서 가장 크고, 어느 곳보다 여러 악기들을 볼 수 있어요. 저는 미리 알아보고 왔는데도 눈길을 끄는 악기들이 많아서 끌리는대로 들어가게 되더라구요.” 직원분께도 간단히 인터뷰했는데, 낙원악기상가의 매력에 대해 물어보니 “가격!”이라고 거침 없이 대답해주셨습니다^^! 인터뷰 결과, 낙원악기상가는 악기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 전문가들이 있다는 점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 같아요^_^   여러분들, 어떠세요? 낙원악기상가, 방문해보고 싶은 생각이 마구 솟구치지 않으시나요?(^^) 상가 자체가 빈티지한 느낌이 물씬 나서, 다른 세련된 악기 매장들과는 달리 색다른 매력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냥 구경만 해도 눈으로 보는, 귀로 듣는 재미가 있는 곳이에요. 여러분들도 꼭 한 번 방문해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럼 포스팅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J)   <낙원상가 약도> 종로3가 역에서 내리면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낙원상가 사이트 주소> http://www.enakwon.co m    네이버 검색광고 공식블로그  |  행운   http://blog.naver.com/luckeyword/70165459145
남산 석호정 국궁장

남산 석호정 국궁장

작성자  |  미래유산
추천수6 조회수3604 작성일14.04.01
남산 이색데이트 코스 남산 석호정 국궁장     안녕하세요 이웃님들 ~ ! 엔토니아입니다, 오늘은 엔토니아가 그동안 소개해드렸던 남산데이트코스가아닌 조금은 색다른 남산데이트 코스 를 소개해드리려고해요     혹시 국궁장이라고 들어보셨나요 ~? 엔토니아도 국립극장에 오기전에는 몰랐던 곳인데요, 남산 공원내에 위치한 국궁장은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 뒷편 으로, 또는 남산 산책로 에서 찾아가실 수 있어요 ~★       울창하진 않지만 산길로 들어가야하는 남산국궁장 가는길 은 그래도 도심에서 벗어난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데요~ 이제 본격적인 봄이되었으니 좀 더 화사한 길이 되었겠죠 ^ ^? (엔토니아가 국극장을 찾았던 시기는 3월이니 참고하세요) 산책하면서 앞으로는 나무도 많고 꽃도 많이 심어져 있으면 더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남산 국궁장 가는길에 주변을 둘러보다보니 저기 국립극장 이 보여요, 손을 흔들흔들 ~~~ 아무도 보진 못하겠지만 괜시리 반가운 마음이 들더라구요 ㅋㅋ   남산데이트코스 로 국립극장에서 공연관람하고 국궁장으로 산책가시는 것도 좋겠죠?      @ 남산 석호정 :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2가 산 14-21         ◎ 남산공원 국궁장 이용안내   1회이용 _ 5발당 1,000 원 (1일 2회 10발 이내로 제한) 1일이용 _ 3,000원 (1일 45발 이내 , 최대 3시간 ) 1월 이용 _ 4 0,000원 (1일 45발이내, 최대 3시간, 월별 50명이내로 인원초과시 추첨)   ※ 70세 이상 신분증 지참시 무료로 이용 가능 ※       TIP   현재 1회 체험 이용은 안전상의 문제로 중단된 상태라고 하는데요, 문제되는 안전부분이 해결되면 다시 진행될 예정이라고해요~!! 실제로 1회 이용보다는 1일 이용권이 조금 더 이득인것 같으니 편하게 선택해보세요~~         국궁(國弓)의 요람인 석호정       활터 석호정은 조선조 인조임금때인 서기 1630년경 창정된 유서깊은 국궁도장이다. 1970년 서울특별시와 '서울정도 600년 남산제모습 찾기 100인 고증위원회' 배려로 현재의 자리에 새터를 닦았다.   서울특별시 중구에서 탄생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270여차례 활쏘기 기록이 나올만큼, 국궁은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나라사랑의 무예이다. (중략)               남산공원 국궁장 이용자 수칙도 확인해주고, 잘 숙지해서 본격적으로 활을 쏘러 Let's GO !!       어이쿠 , 생각했던 것 보다 멀더라구요 ^^;;; 그래도 처음 해보는 활쏘기라 시작하기 전부터 기대가 되는데 과연 엔토니아가 활을 잘 쏠 수 있을까요 ~?     전문가의 포스가 풍기는 분~ 뉘신가 했더니 석호정 관계자 분이네요 ㅎㅎ 옆에 중년의 신사분(?)이 열심히 배우고 계시네요!!   엔토니아도 오늘 한번 해보고 재미있으면 월이용권 이용할까 했는데.. 실제로 해보니까 쉽진 않더라구요.. ㅠ.ㅠ 그래도 과녁 맞추기는 성공했답니다  +_+ !!     그나저나 활쏘는게 나름 운동이 되는 것 같아요~ 자세도 잡아야되고 활도 받쳐줘야되고 힘껏 활도 땡겨줘야하고.. 다음날 팔뚝이 살짝 땡길정도로 운동량이 상당하더라구요~!!   과격한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기회되시면 오셔서 한번 체험해 보셔도 좋을 것 같은데요 ~ 우리 이웃님들도 기존에 다니던 남산데이트코스말고 이런 색다른 장소에서 이색데이트 를 즐겨보세요 ~ ♩           TIP   남산공원은 충무공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2006년부터 석호정에서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인 '청소년 체험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서울 시민과 외국인들도 누구나 활쏘기 체험에 참여할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국립극장 공식블로그 BY 엔토니아  |  엔토니아   http://blog.naver.com/ntok2010/70165009222
선유도공원

선유도공원

작성자  |  미래유산
추천수9 조회수3088 작성일14.04.01
  조이걸의 서울데이트 "물水의 공원" 선유도공원 ?         서울은 생각보다 즐길거리가 많지만... 막상 주말에 '어디가지?' 고민은 끝이 없곤 합니다. 그래서 조이걸이 준비했어요 :D 나들이 가기 좋은 따뜻해진 날씨! 영등포에 위치한 국내최초 환경재생 생태공원이자 "물의공원"인 선유도공원 입니다.                   선유도공원 어떻게 가나요?   9호선 선유도역 2번출구에서 도보로 7분, 9호선 당산역 13번출구에서 5714번 버스 2호선 당산역 1번출구에서 760, 5714번 버스를 타고 선유도공원 정문에서 하차.   선유도 역에서 내리거나, 당산역에서 버스를 타면 쉽게 올 수 있긴 하지만. 당산역 4번출구에서 쭈욱~ 한강이 나올때까지 걷다가 선유교를 건너면, 선유도 공원이 나옵니다. 물론 오래걸리지만... 초여름 정도엔 한강구경하며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걸으면 딱 좋을 듯 해요 :)         -선유도공원에 들어가기 전 한강풍경. 멀리보이는 콘래드호텔 -자전거와 흡연은 절대 금지!   선유도공원의 즐길거리&볼거리?   선유도 공원은 과거 정수장 건축구조물을 재활용하여 국내 최초로 조성된 환경재생 생태공원입니다. 온실, 수질정화원, 시간의 정원, 수생식물원, 녹색기둥 정원, 선유도 이야기 등 다양한 즐길거리 및 볼거리가 있어요. 수생식물원에서는 수생식물들이 물을 정화시키는 과정과 다양한 수생식물을 볼 수 있으며, 각 정원들에서는 다양한 식물로 이루어진 테마정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선유도 이야기에서는 선유도공원의 역사와 사계, 한강의 옛모습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선유도이야기 전시관 내부 -높게 뻗은 나무들 -봄은 언제 오려나요~ -담쟁이가 푸릇푸릇해지면 녹색기둥이 됩니다 :) 담쟁이로 뒤덮인 모습이 궁금해져요. -꽃이 피면 더욱 예쁠것 같죠? -아직은 앙상한 나무         커플스냅사진 찍기에 좋아요.   아름다운 한강과 야경이 아름다운 선유교 , 푸르른 대나무 숲과 정수장이 있는 신기한 풍경들. 왠지 모를 빈티지함도 있고, 선유도의 매력적인 풍경들 덕에 셀프웨딩이나 커플스냅사진을 종종 찍기도 합니다. 살짝 검색해서 스냅사진을 봤더니 정말 예쁘더라구요 :) 초여름정도가 되면, 꼭! 연인과 가족과 쏠로라면 슬퍼하지 말고 친구와! 멋진 스냅사진을 찍는것도 추천드려요.       -밤이되면 형형색색 조명으로 아름다운 선유교 -선유교 다리에 있는 낙서들도 왠지 정겨워요. -빈티지함이 느껴지는 철제다리       아이들과 함께 하면 좋은 생태체험 교실이나, 식물을 이용한 만들기 교실도 있으니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가기에도 정말 좋답니다 :) 물론 체험교실은 사전에 시간과 인원을 확인해주세요!     Joy Girl's Blog_호텔N조이걸의 즐거운 호텔이야기♥  |  호텔N조이걸   http://blog.naver.com/hotelnjoy/20205737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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