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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미래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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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게시물 : 58건   |   페이지 1 /6
사직터널

사직터널

작성자  |  미래유산17
추천수1 조회수149 작성일21.01.29
  사직터널이 건설되며 서울 도심을 두르는 순환선의 마지막 구간이 개통되었습니다. 이로써 독립문과 경복궁 간의 교통이 절반도 못 미치는 거리로 단축되었고, 도심을 거치지 않게 되어 교통 혼잡이 완화되었습니다.
삼일로창고극장

삼일로창고극장

작성자  |  미래유산17
추천수0 조회수141 작성일21.01.29
삼일로 창고극장은 창립 이래 수많은 배우와 연출가 등을 배출해내며 대한민국 소극장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유서 깊은 극장입니다. 그러나 1980년대 연극의 중심지가 명동에서 대학로로 이동하면서 삼일로 창고극장은 운영난에 빠져 1990년 폐관, 이후 김치공장과 인쇄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1996년 극단 창작마을이 인수해 명동예술극장이란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폐관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2004년 정대경이 인수해 삼일로 창고극장으로 재개관하였으나 누적된 적자로 인해 2015년 10월 폐관하였다. 서울시가 건물주와 협의를 통해 2017년 5월 서울문화재단과 민간위탁 협약을 체결하여 2018년 재개관하였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프로듀스시스템의 도입과 젊은 연극인들의 발굴과 양성에 크게 기여한 소극장이자 대한민국 소극장운동의 상징적 존재로서 의의가 깊은 곳입니다. 이 창고극장은 프로듀서 시스템에 의한 창작극 발굴과 신인 양성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극장으로, 젊은 연극인들에게 실험 연극의 장이 되어주는 등 1970년대 소극장 운동의 열정과 정신이 녹아 있는 곳 소극장이 거의 없었던 시절 연극인들의 &lsquo사랑방&rsquo역할을 한 곳입니다. 창고극장의 초기 아레나 스테이지는 관객이 사방에 앉아서 관람할 수 있는 독특한 무대유형으로 무대미학의 발전에도 기여하였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 경농관

서울시립대학교 경농관

작성자  |  미래유산17
추천수0 조회수133 작성일21.01.29
서울시립대 경농관은 1937년 경성공립농업학교가 전농동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건립한 연와조의 학교 건축물입니다. 전형적인 일제 강점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로써 연와조의 벽체, 목조 트러스 지붕 등을 건립하였어요~ 당시의 모습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어 건축사적인 측면에서 보존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서울시립대학교는 1918년 5월 1일 개교한 경성공립농업학교를 모체로 합니다. 1937년 3월 31일 경성공립농업학교가 청량리 교사에서 현재의 전농동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박물관과 함께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서울시립대로 163에 지상 1층으로 건립했습니다.   현재는 각종 전시실과 서울학연구소 등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국기원

국기원

작성자  |  미래유산17
추천수0 조회수83 작성일21.01.29
국기원은 우리나라 고유의 무술인 태권도의 수련과 보급을 위한 재단법인체가 경영하는 상설 태권도 체육관이자 태권도를 발전 확산시키기 위해 설립한 세계태권도본부입니다.   국기원은 1971년, 강남구가 생기기도 전에 &39대한태권도협회 중앙도장&39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했습니다. 이 국기원은 강남의 &39랜드마크&39 로 기능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수시로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와 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 국제태권도심판강습회 등 국제적 행사를 치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종 국내대회, 지도자교육, 외국인 수련 및 승단심사대회, 승품심사대회, 외국귀빈을 위한 연무시범, 외국인태권도수련생 특별교육, 사회봉사를 위한 행사 등 다양한 행사와 교육활동을 벌이고 있어요! [국기원 입구] 국기원은 태권도의 위상을 제고하고, 태권도 문화를 정립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 태권도의 전통적 정신과 기술을 전 세계에 보급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만리창터

만리창터

작성자  |  라라랜드
추천수7 조회수837 작성일19.07.15
공물로 거두어들인 쌀, 베, 돈의 출납을 맡았던 선혜청의 별창 만리창은 현재 용산구 효창동 199번지에 있었다. 갑오개혁 전까지도 효창동, 도원동 일대에 만리창(새창, 신창)이 있었기 때문에 만리창계(契)라고 칭했다. 만리창은 선혜청의 별창고로서 본래 진휼(賑恤)을 실시하던 곳으로 해서(海西)와 호남을 구관(句管)하였다. 본래 설진(設賑)하던 곳이었던 것을 지금은 해서(海西)ㆍ호남(湖南)의 구관으로 하고, 혹은 만리창(萬里倉)이라 칭하였다. 만리현(萬里峴)에 있음. 고가 58문. 진청(賑廳) 35문 ○ 해서 3문 ○ 호남 20문. [네이버 지식백과] 만리창터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서울 문화재 기념표석들의 스토리텔링 개발), 2010., 한국콘텐츠진흥원)  
창회정터

창회정터

작성자  |  라라랜드
추천수3 조회수510 작성일19.07.15
조선시대 정자로 군사 훈련을 사열(査閱)하는 곳으로도 사용됨.    
수표터

수표터

작성자  |  라라랜드
추천수3 조회수500 작성일19.07.15
조선조 세종때 한강의 수위(水位)를 재기 위해 제천정(濟川亭) 아래에 세웠던 수표터  
청파배다리터

청파배다리터

작성자  |  라라랜드
추천수4 조회수659 작성일19.07.15
조선시대 도성에서 청파 ? 원효로로 통하는 주요 길목인 만초천에 놓였던 돌다리 터 청파신교(靑坡新橋) 숭례문 밖에 있는데, 민간에서들 주교(舟橋 배다리)라고 한다. 청파 배다리는 청파와 원효로를 통하는 길목에 있는 만초천에 놓였던 돌다리이다.배다리를 지나는 큰 길을 ‘주교대로’라고 했다. 남대문에 걸려있던 숭례문이라는 현판이 임진왜란 때 없어져서 다른 사람의 글씨로 쓴 현판을 걸었지만 자꾸 떨어졌다. 광해군 때 청파 배다리가 있는 웅덩이에 이상한 기운이 비쳐서 그 웅덩이를 팠더니 양녕대군이 친히 쓴 숭례문의 현판이 나왔는데, 그 현판을 건 뒤로는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또 서계동은 서울역 뒤 쪽 일대에 위치한 곳인데 조선시대에는 배다리골로 불렸다. 그 이유는 이 근처에 청파 배다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천일정터

천일정터

작성자  |  라라랜드
추천수3 조회수636 작성일19.07.15
조선 성종기 문신인 김국광(金國光, 1415∼1480)이 지은 정자 천일정이란 이름은 당나라 왕발(王勃)의 [등왕각(藤王閣)] 서문에 있는 ‘추수공장천일색(秋水共長天一色)’이란 구에서 취하여 지었다 한다. 천일정은 지금의 용산구 한남동 459번지로, 고려시대 때에는 절이 있었던 곳이다. 때문에 천일정 주변으로 절터였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고 하며 강화의 쑥돌로 된 양길이 2.1m와 1.8m, 깊이 0.8m의 큰 돌연못이 남아있었다. 천일정은 김국광에 의해 처음 지어진 이후, 오성부원군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후 두세 차례의 변천이 있은 후 한때는 민영휘(閔泳徽, 1852∼1935)의 소유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다 1950년 6·25전쟁 때 폭격을 맞아 없어졌고, 지금은 그 부근에 한남대교가 놓여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천일정 터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서울 문화재 기념표석들의 스토리텔링 개발), 2010., 한국콘텐츠진흥원)  
제천정터

제천정터

작성자  |  라라랜드
추천수3 조회수344 작성일19.07.15
조선시대 정자 터로 한강가 절경지의 하나 한남당과 보광동 사이 아래 기슭에는 조선시대의 제천정이 있었다. 제천정 터전의 정자는 모두 나라의 소유였다.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반드시 이 곳에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고려 때부터 한강루, 한강정이라 불리우던 작은 정자로 조선 초에 중국 사신을 위해 주연(酒宴)을 베풀던 장소이기도 했는데 성종때 크게 고쳐 짓고 『제천정』라 하였다. "이괄의 난" 때 인조가 공주로 피난하는 길에 이 정자를 태워 그 불빛으로 무사히 건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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