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바닥글 바로가기
모바일 메뉴

서울미래유산서울미래유산

I.SEOUL.U
전체메뉴닫기

주메뉴

 
 

시민제안 미래유산

안동교회
작성자 : 문화지평대표 추천수2 조회수2108 작성일2015.01.30

[안동교회]



안동교회



안동교회는 1909년 서울 북촌에 설립된 106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교회다. 1909년은 대한제국(大韓帝國) 융희(隆熙) 3년, 순종 3년 때다. 일제가 조선 수탈을 위해 동양척식주식회사법을 공포(1908년)하고 설립한 이듬해다.



현제 김창제(1877~1947)의 집에서 가진 기도회를 모태로 안동교회가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김창제는 일제 강점기 때 활약한 YMCA 운동가, 기독교 교육자, 사회사업가이자 문필가이다. 1918년 함흥 YMCA 창설을 주도했고 이화여전과 YMCA 학관에서 교사로 봉직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신앙과 교육에서 찾은 김창제와 같은 선각자들에 의해서 안동교회는 설립됐다. 106년 역사 가운데 안동교회는 수많은 인재를 육성, 배출해 사회와 교회에 기여했다.



[건물의 역사]



안동(安洞)이란 이름은 안국동(安國洞)에서 유래했다. 당시 교회 이름은 세워진 동리 명칭을 따르는 것이 관례였다. 옛 문헌에는 ‘안국동교회’로 기록된 것도 있다. 이를 줄여서 안동교회라 했는데 대구 경북 안동시에 있는 안동(安東)교회와 다소 혼동이 있기도 했다.



한석진 목사는 1911년 ‘소안동예배당건축위원회’를 조직하고 예배당 건축을 본격화했다. 한 목사는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 7명 중 한명으로 1911년 목사로 부임했다. 1912년 준공된 예배당은 이듬해 완공돼 헌당예배를 드리게 된다. 벽돌조 2층 건물로 당시 상당한 웅장함을 자랑했다.



안동교회는 설립 당시부터 예배당 건축까지 선교사의 도움 없이 순수 우리 교인의 힘으로 건축됐다는데 의미가 크다. 특히 교회 설립 3년 만에 일궈냄으로써 기적 같은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회 창립 70주년 되던 해인 1979년 3월 낡아버린 회당을 철거하고 지금 예배당을 신축했다.



안동교회가 자리한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동네로 서울이 조선 왕조의 도읍지로 결정되면서 주거지로 형성된 곳이다.



[주요 인물]



제2대 윤보선 대통령의 집은 안동교회와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다. 윤 대통령은 선대로부터 이곳에서 살았고 평생을 안동교회에 출석한 신앙심이 매우 깊었던 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하에서 한글을 지키다가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전신)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순국한 한글학자 이윤재 선생은 안동교회의 장로로 시무했다.



1938년 7월 8일 50만 기독교인을 위한 신문인 기독신보가 창간됐는데, 사장은 안동교회 김우현 목사가 맡았다. 덕수교회를 세운 최거덕 목사도 안동교회 위임목사를 지낸바 있다.



예배당 설립을 주도했던 한석진 목사는 당시 보수적인 교회분위기를 일신하는 차원에서 교회안 남녀좌석을 구분하던 휘장을 걷어내면서 남녀차별을 없앴다.



또 박승봉 장로는 젊은 교인이 모친상을 당하고 형편상 장례를 치를지 못하자 직접 염습을 하고 장례를 치러주는 등 신분차별을 없앴다. 박 장로는 이준 열사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참석을 주선했고 오산학교와 기호학교 설립에 참여한 애국지사다.



이들 이외 안동교회는 수 많은 애국지사와 선구자를 배출한 구한말 혼돈의 시대 ‘정신적 요람’으로 역할을 다했고 지금까지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추천수2
탑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