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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20.08.12 티티엘뉴스] 서울관광재단, 광복절 75주년 맞이, 역사와 문화가 함께하는 중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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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화정책과 작성일 2020.08.12 조회수 99

[티티엘뉴스] 아름다운 묘지 망우리공원에서 보내는 특별한 시간여행


잃어버린 일상 속에서 방역과 싸우고 때아닌 장마로 전국에 비가 쏟아지는 8월의 여름, 우리는 75주년 광복절을 맞이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국민으로서의 일상을 되돌리고자 싸웠던 그 절실함을 다시 상기해보자. 




▲서울관광재단이 소개하는 망우리공원을 중심으로 역사와 자연을 품은 중랑구의 모습 


서울관광재단(대표이사 이재성)은 8.15 광복을 맞아 애국지사들이 잠들어 있는 ‘망우리공원’을 중심으로 역사와 자연을 품은 중랑구를 소개했다. 


근심을 잊는다는 뜻을 가진 ‘망우’, 근심과 걱정을 조금 내려 두고 산바람과 함께 애국지사들의 묘역을 둘러보고 나면 오히려 묘하게 힐링 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으로 알려진 용마산과 대형마트가 늘어선 가운데에서도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우림시장까지 다양한 매력이 볼거리를 더한다.



●호젓한 숲길 따라 애국지사의 묘역을 만날 수 있는 망우리공원


▲망우리공원_공원을 산책 중인 가족


일제는 1933년 미아리의 공동묘지가 가득 찰 것을 대비해 망우리 고개에 70만 평에 달하는 대규모 공동묘지를 조성했고, 1973년까지 서울시의 공동묘지로 사용됐다. 


공동묘지로 일반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했던 망우리는 2005년 망우묘지공원 조성계획을 수립하면서 정비되었고,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며 숲과 산책로를 따라 애국지사의 묘역을 만나는 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망우리 고개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현재의 동구릉을 능지로 정하고 돌아오면서 “이제는 근심을 잊게 됐다”라고 말했다 하여 망우(忘憂)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고 전해진다. 




▲망우리공원, 님의 침묵을 집필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한용운 시인 묘역


이성계가 먼 미래에 조국의 광복에 대해 열망과 근심이 가득했던 애국지사들이 망우리에 잠들 것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현재의 망우리 공원과 어울리는 작명을 한 셈이 됐다.  망우리의 양지바른 곳에 묻힌 애국지사들은 발전한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이제는 조국에 대한 근심을 내려놓지 않았을까.


망우리 공원에 잠들어 있는 가장 유명한 애국지사는 만해 한용운 시인(1879~1944)이다. 안창호 선생의 묘가 도산공원으로 이장되면서 현재 망우리 공원의 유일한 최고훈격인 대한민국장 수여자이다. 




▲망우리공원, 독립 운동과 해방이후 정치활동을 한 조봉암 선생 묘역


우리에게는 님의 침묵이란 시로 잘 알려진 한용운 시인은 민족대표 33인으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시인이자 스님이었던 그는 불교도들이 비밀리에 조직한 단체에서 항일운동을 지속해 나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광복을 1년 남겨놓고 별세하여 망우리 묘지에 안장됐다. 


한용운 시인의 묘소와 멀지 않은 곳에 조봉암 선생(1898~1959)의 묘소가 있다. 조봉암은 청년 시절 3.1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른 후 독립운동을 했다. 




▲망우리공원, 어린이날 창시자 방정환 선생 묘역, 묘비명 동심여선


일제강점기에는 사회주의 진영에서 활동하였으나 해방 후 중도파의 길을 걸었다. 대한민국의 제헌국회의원과 농림부장관을 지냈고, 제2대 및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대통령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1959년에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하여 망우리에 묻혔고, 2011년 대법원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비문조차 없는 묘비가 오랜 세월 동안 침묵의 소리로 항변한 세월을 대변하는 듯하다. 오세창 선생(1864~1953)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서예가로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으로 활약하여 3년간 옥고를 치렀다. 




▲망우리공원_전망대에서 본 북한산과 중랑구 풍경


한성순보 기자를 지내기도 했으며 천도교에서 일제에 비타협적인 보수파 노선으로 활동했다. 근처에 있는 방정환 선생의 묘소 묘비에 ‘동심여선(童心如仙)’이라 새겨진 글자가 오세창 선생의 글씨이다. 


어린이날로 대표되는 방정환 선생도(1899~1931) 망우리에 묻혀있다. 그는 어린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어린이 교육을 강조하고 소년운동을 주도했다. 


‘아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라는 묘비명 동심여선(童心如仙)이 그의 삶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방정환 선생이 청년 시절에 3.1운동 소식을 알리는 독립신문을 몰래 인쇄하여 배부하다 체포되고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전개하려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꾸준히 감시를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선생의 묘소 앞에 서서 조국에 대한 충심을 다했던 일생에 감사함을 전해본다.




▲망우리공원 전망대에서 본 중랑구 일대 풍경


많은 가산을 독립운동 자금에 동원하였고 언론인이자 사학자로 문화운동 형태의 독립운동을 실천했던 문일평 선생(1888~1939), 안창호 선생의 비서로 상해 임시 정부에서 일했고, 의사로서도 많은 업적을 남긴 유상규 선생(1897~1936), 1920년 의열단 단원 박재혁이 부산경찰서장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중상을 입혔는데 그가 거사하도록 도왔던 오재영(1897~1948) 등의 애국지사도 망우리 공원에 묻혀있으니 함께 들러 볼 만 하다.


▶망우리공원 정보
▷찾아가는 법: 1호선 청량리역 4번 출구, 청량리역환승센터에서 경기버스 65번, 167번, 51번을 타고 약 20분 이동, 동부제일병원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15분. 또는, 경의중앙선 망우역 1번 출구로 나와 용마공원 방향으로 도보 약 20분, 용마랜드를 지나 산책로 진입.



●근·현대사의 생생한 역사~시간이 멈춘 듯한 용마랜드까지 역사문화코스


▲역사문화코스 13도 창의군 탑 모습 


망우리 공원을 즐길 수 있는 탐방코스는 역사문화코스, 인문학길 사잇길, 서울 둘레길 2코스로 나뉘어 있다. 이중 서울 둘레길2코스는 용마산과 아차산까지 아우르는 장거리 코스이고 온전히 망우리 공원을 즐기는 코스는 역사문화코스와 사잇길이다. 


두 코스 모두 총 길이는 2.7km, 1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구간으로 망우리 공원에 잠들어 있는 유명인사를 만나면서 녹음이 우거진 공원을 천천히 산책하기 좋은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문화코스의 산책로 모습 


오늘 소개할 역사문화코스는 13도 창의군 탑을 시작으로 박인환 묘와 이중섭 묘를 지나 어린이 모험 놀이터를 통해 용마 테마공원으로 내려와 충익공 신경진 신도비에서 끝난다. 


망우리공원 아래 체육시설이 있는 곳으로 가면 뾰족하게 선 13도창의군탑을 만난다. 1907년 일본이 정비7조약을 내세워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자 전국적으로 의병을 일으켜 서울로 진격하기 위해 결성된 의병부대인 13도 창의군의 정신을 기리는 탑이다. 




▲역사문화코스, 박인환 시인의 묘소에서 바라본 풍경


전국에서 양주로 집결한 창의군은 선발대를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했고, 일본군과 혈전을 벌이다 퇴각했다. 하지만 총대장이었던 이인영이 부친상으로 인해 지휘권을 내려놓고 3년 상을 치르러 귀향하면서 창의군은 해산되어 다시 전국으로 흩어졌다. 결과는 실패했지만, 그들이 국가를 위해 의로 뭉쳤던 그 날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해본다.


탑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 망우리 공원으로 올라가면 공원의 메인 산책로로 들어가기 전 오른쪽으로 박인환 시인의 묘소로 가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박인환 시인은 도시적 감성인 개인의 특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때로는 문명이 인간을 황폐하게 만든다는 비판적인 인식을 담고 있는 모더니즘 시를 썼다. 




▲역사문화코스, 이중섭 시인의 묘소, 묘비명 대신 그가 그린 가족화가 작게 새겨져 있다


그의 묘비에는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라는 세월이 가면 시의 일부가 적혀있다. 시인이 작고하기 일주일 전에 지은 마지막 작품임을 알고 다시 시구를 되새기니 그리운 이에 대한 애달픔이 더욱 사무치게 다가온다. 


박인환 시인의 묘를 지나 이중섭 화가의 묘로 향한다. 한국 서양화의 대표로 뽑히는 이중섭 화가는 일제에 지배받던 우리 민족의 한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소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문화코스, 어린이 모험 놀이터 시설 중 개미터널


그는 한국전쟁 이후에 부인과 자녀들을 일본에 보내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그림을 많이 남기기도 했다. 그의 묘비에도 헤어진 가족과 떨어져 보낸 시간을 채우려는 듯 아무런 글도 없이 그가 그린 가족화가 조각되어 있을 뿐이다. 이중섭 화가의 묘를 지나면 용마산 약수터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산책로를 따라 하산 방향으로 내려가면 어린이 모험 놀이터가 나타난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철이나 플라스틱이 아닌 자연 친화적 소재로 만들어진 놀이기구가 많아 눈길을 끈다. 개미터널, 짚라인체험, 미끄럼틀 등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과 더불어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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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티티엘뉴스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ttlnews.com/article/KOREA/8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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