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바닥글 바로가기
오늘 하루 열지 않기오늘 하루 열지 않기
모바일 메뉴

서울미래유산서울미래유산

I.SEOUL.U
전체메뉴닫기

주메뉴

 
 
이달의 미래유산
[12월의 미래유산] 강남개발의 상징 「한남대교」
게시글 정보 :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첨부파일
작성자 문화정책과 작성일 2020.11.30 조회수 996
강남개발의 상징, ‘한남대교’
 
한남대교는 유사시 서울시민이 한강을 건널 수 있도록 건설되어 1969년 12월 26일 개통한 한강의 네 번째 교량입니다. 이 다리가 건설됨으로 인해 본격적인 강남개발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강남뿐만 아니라 경부고속도로와도 연결되어 서울과 전국 사이 소통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강남개발시대

조선시대의 수도는 왕이 있는 사대문 안쪽으로 국한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서울은 25개의 자치구를 포함하여 한강의 남쪽 지역까지 모두 포괄하는 거대 도시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강남시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1945년 해방 및 1960년 6.25 전쟁 직후, 해외동포와 피난민들의 귀환 및 전후세대의 베이비붐으로 인해서 남한은 계속적인 인구 증가 추세를 보였습니다. 특히 서울의 인구는 1945년 90만 명에서 1970년에는 550만 명으로, 다섯 배 이상 증가하였습니다. 더 이상 사대문 안에만 인구를 수용하기에는 벅찬 것이죠.



이에 박정희 정권은 강력한 ‘강북 억제, 강남 개발’ 정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1900년 최초로 지어진 한강철교와 1917년 지어진 한강 인도교(한강대교) 외, 1965년 양화대교와 1969년 한남대교를 추가로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물리적인 이동 기반시설이 갖추어진 후부터는 시민들이 강남으로 가고 싶어 할 유인책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따라 강북 도심부에 대규모 백화점, 시장, 대학교 등의 새로운 입지를 제한하는 정책이 만들어 졌습니다. 반면 강남 지역의 건축물에 대해서는 등록세와 취득세를 감면하는 등의 혜택 조치가 주어졌으며, 이에 따라 새로운 문화시설도 강남지역에 많이 건립되기도 하였습니다.
 
강북 사람들을 강남으로 이전시키기 위한 또 다른 유인책은 교육이었습니다. 강북에 있던 명문고들을 강남으로 이전시키는 방안입니다. 대표적으로 중구에 있던 배제고등학교를 강동구로 이전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전된 많은 건물 중, 아펜젤러 기념관은 건립 당시 사용되었던 벽돌을 그대로 사용하며 원형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 배재고등학교 아펜젤러 기념관(강동구 소재)

이러한 정책의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강북의 인구는 1970년 430만 명에서 1999년 520만 명으로 1.2배 증가한 데 반해, 강남의 인구는 120만 명에서 510만 명으로 4.2배정도 증가하였습니다.


▶ 한강의 다리들

한강에는 총 32개의 교량이 있습니다. 28개의 대교와 4개의 철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중 서울 시내를 지나는 교량만 총 27개라고 합니다. 한강의 다리와 관련된 재미있는 정보들을 만나보러 갈까요?

1) 한강에 지어진 최초의 다리는?
한강의 최초 다리는 ‘한강철교’로, 무려 1900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120년 전, 경인선을 현 서울역까지 연장하기 위해서 건설된 철도 전용 교량이었던 것입니다. 한강철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서울에서 인천까지 육로로 12시간, 배편으로 8시간이 걸리던 것이 완공 뒤에는 1~2시간으로 축소되었습니다. 최초로 건립된 한강의 다리라는 건설사적 가치는 물론,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산업·경제 발전의 역사성까지 담고 있다는 점에서 2006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 자동차 통행량 1위인 다리는?
한강 다리에는 평균적으로 일일 10만대의 차량이 통행합니다. 평균 수치를 올리는 통행량 1위 교량은 한남대교로, 올해 기준 매일 약 19만대의 차량이 통행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왕복 차로도 가장 많은데, 한남대교는 가장 넓은 12차로인 반면 가장 좁은 광진교와 잠수교는 2차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