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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미래유산
[10월의 미래유산] 한글날을 기념하는 「세종대왕기념관」
게시글 정보 :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첨부파일
작성자 문화정책과 작성일 2020.09.29 조회수 766
세종대왕의 업적을 알아보러 떠나는 ‘세종대왕기념관’
 
세종대왕기념관은 1973년 10월 9일, 한글날에 맞추어 동대문구 청량리동에서 개관하였습니다. 이름 그대로 세종대왕의 업적을 추모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건축되었고, 건축가 송민구가 한국 고전 건축의 모습이 잘 표출되도록 설계하여, 건물 자체의 보존가치도 높다고 평가됩니다. 미래유산인 세종대왕기념관에서는 문화유산인 우리나라의 보물과 유형문화재 등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세종대왕과 한글

조선시대의 성군을 꼽으라면, 보통은 세종, 성종, 정조를 꼽을 것입니다. 세분 모두 문화적으로 조선을 번창시켰고 태평성대를 이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모두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1위를 꼽으라면 대부분은 세종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훈민정음 창제’일 것이고요.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왜, 어떻게 한글을 창제하기에 이르렀는지 한글날이 있는 10월을 맞이하여 알아봅시다.

세종 이전까지 우리 민족은 글자 없이 생활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평민은 글자 없이 생활하였고, 양반을 비롯한 지도계층만 중국의 한자를 사용하여 우리말을 표현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우리말을 표현할 글자가 없음으로 인해 일반 민중은 관청에 호소하려 해도 호소할 길이 없었고, 억울한 재판을 받아도 바로잡아 주기를 요구하지 못했으며, 부모자식이 떨어져 생활해도 편지 한 통 보낼 수 없었습니다. 평민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농경에 관한 기록 또한 할 수 없었으니,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선대의 경험과 본인의 감으로밖에 일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세종대왕은 이를 딱하게 여겨, 새 글자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훈민정음 언해본’에는,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 여덟글자를 만든다”라고 세종이 직접 작성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종의 의지만으로 새로운 글자를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학문을 좋아하며 주체적이고 혁신적인 세종의 성격 외에도, 집현전에 있는 수많은 학자들, 운학에 대한 선행 연구 등이 모두 훈민정음을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훈민정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제자 원리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적혀 있는데, 자음은 소리가 날 때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뜨고 이를 가획하여 만들고, 모음은 천지인(天地人)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한글은 자연의 모습을 본떠서 만든 상형문자 등과는 전혀 다른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한글자모의 이름인 ‘기역, 니은, …’의 이름은 세종대왕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 이름들은 16세기에 나온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천자문 학습서였는데, 이 책에 ‘언문자모’라 하여 그 당시 한글의 체계와 용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는 부분이 들어가 있던 것입니다. 실제로 책에는 ‘ㄱ (其役), ㄴ (尼隱), …’  과 같이 표기되어 있어 한글을 한자로 배워나가는 형태를 보였습니다.


▶ 한글날의 기원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우리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입니다.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양력을 쓰지 않던 조선시대에 실제로 10월 9일에 훈민정음을 반포했을까요?

한글날의 시초는 1926년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어문말살정책’에 맞서, 독립운동가들은 한글을 사용함으로써 독립의지를 다졌습니다. 이 일환으로 독립운동 단체 중 하나인 ‘조선어연구회’에서는 세종실록을 기준으로,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480년이 되던 음력 1926년 9월 29일을 가갸날로 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뒤, 1940년에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을 발견하였습니다. 서문에는 정인지가 ‘정통 11년 9월 상한’에 한글을 반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한글을 반포한 날을 상순의 끝날인 음력 9월 10일로 잡고 이 날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여 기념하게 된 것입니다. 광복 이후 1946년, 한글날 기념행사를 시작하였고, 1970년에는 한글날이 공휴일로 선포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91년에는 10월에 휴일이 너무 많아 산업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의견에 따라 단순 기념일로 전락했습니다. 이후 한글 관련 단체의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운동의 결과로, 2006년부터는 한글날이 국경일로 정해지고 2013년부터는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 세종대왕기념관 탐방 ※ 코로나19관련 휴관
 
1) 실내전시실
일대기실, 한글실, 과학실, 국악실 등 다양한 전시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일대기실에서는 세종대왕의 어진과 집현전 학사도, 훈민정음의 반포도 등 세종대왕의 일대기와 관련된 자료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글실에서는 당시에 편찬된 도서류, 과학실에는 조선시대 과학과 관련된 자료, 국악실에서는 다양한 국악 관련 악기류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입장료는 3천원입니다.


보시는 그림들을 비롯한 다수의 유물을 세종대왕기념관 일대기실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어떤 유물이 있을지 세종대왕기념관 홈페이지에서 만나보세요
(http://sejongkorea.org/)






훈민정음 반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