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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미래유산
[9월의 미래유산]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마포석유비축기지」
게시글 정보 :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첨부파일
작성자 문화정책과 작성일 2020.09.01 조회수 321
석유도 문화도 한가득, ‘마포석유비축기지’ (2013-087)
 
마포 석유비축기지는 1970년대에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는 중, 안정적인 석유 공급을 위하여 1978년에 조성되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경기 개최 당시 안전상의 문제로 용인으로 석유를 이송시킨 후 용도폐기 되었고, 2017년 9월에 ‘문화비축기지’로 재탄생하여 시민들에게 문화공원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마포석유비축기지
사진제공: 문화비축기지


▶ 오일쇼크와 서울의 역사
 
1) 1차 오일쇼크 (1973~1974)
1973년 10월 6일,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며, 전쟁에 참여한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여러 중동국가들이 손잡고 석유 생산량을 줄이는 동시에 원유 가격은 인상하였습니다. 이 결과, 1973년 10월에는 3달러 수준이던 국제 원유 가격이 1974년 1월에는 12달러로 4배 가까이 상승하게 되었고,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당시 경공업 중심에서 중공업 중심의 산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다른 나라에 비해서 피해는 적은 편이었습니다. 오히려 중동으로 건설업이 진출하여 위기를 기회로 삼는 모습을 보이고, 이에 따라서 1973년도에는 14.8%라는 경제성장률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2) 마포석유비축기지의 건설
그러나 다른 나라의 패닉상태를 본 이상, 무방비 상태로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정부는 그렇게 1976년부터 건설을 기획하여 1978년에 마포석유비축기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유사시에 1개월간 서울시민이 소비할 수 있는 6,907만 리터의 석유를 저장할 수 있었습니다. 총 5기의 석유탱크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시에는 1급 보안시설로 분류되어 시민의 접근과 이용이 통제되었습니다.
 
3) 2차 오일쇼크 (1979~1981)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차 오일쇼크가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란 내전으로 정세가 불안해지자, 석유 생산량을 크게 줄이며 석유의 전면 수출금지 조치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대한민국은 중공업 위주의 경제성장정책을 추진 중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은 1980년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물가상승률은 29%까지 급등하였습니다. 이후 타 국가들의 석유 생산량 개입이 늘어나며 서서히 유가는 안정되었고, 기타 세계 정세의 여파로 1985년에는 3저호황(저달러, 저금리, 저유가) 까지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 마포석유비축기지의 재탄생
 
석유를 보관하던 탱크들은, 2002년 월드컵을 위해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이 건설되며 안전상의 문제로 2000년도에 폐쇄되었습니다. 그 후, 2013년 시민 아이디어 공모전을 통해 시민의 문화생활을 가득 담아둔 문화비축기지로 재탄생이 결정되었고, 2017년도 9월에 재개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문화비축기지의 야외 공원 공간은 연중무휴로 개방되어 있으며, 다양한 동식물을 볼 수 있는 자연친화적 둘레길로 가꾸어져 있습니다. 또한 실내 공간은 공연장, 전시관으로 재탄생되어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생산자들을 위해 열려 있습니다.

마포석유비축기지의 재탄생 마포석유비축기지의 재탄생
사진제공: 문화비축기지                          사진제공: 문화비축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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