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 박종철 기념전시실 | 소재지 |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 (경찰청 남영동 인권센터 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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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연도 | 2013 | 인증번호 | 2013-105 |
건립시기 | 1976년 | 건립용도 | 치안본부 대공분실 간첩수사실 |
이력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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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필요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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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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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지하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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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 유 | 주차대수 | 40 |
주차비용 | 무료 | 주차시간 | 08시 ~ 18시 |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한 조사실과 사망 당시 입고 있던 옷, 관련 신문과 사진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 1층, 지상 5층의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으며 1976년에 준공되었다. 1983년에 기존 5층 건물을 7층으로 증축했으며 5층의 15개 고문실 가운데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했던 509호 조사실만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이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한 후 2005년 10월 4일, 경찰청에서 과거청산의 의미로 경찰청 인권센터를 개소했다. 2008년 6월 10일, 시설 일부를 리모델링하여 4층에는 ‘인권교육자료실’과 ‘박종철 기념전시실’을 마련하고, 5층에는 당시의 취조실을 재현하여 박종철 기념전시실을 개관,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박종철(朴鍾哲, 1964~1987.01.14.)은 부산광역시에서 출생하여 1983년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입학, 언어학과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1986년 노학연대 투쟁에 활동하던 중 4월 11일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요구 시위로 구속되었고 1986년 7월 15일 징역 10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출소했다. 1987년 1월 13일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연행되어 이튿날 사망했다.
경찰은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 관련 수배자 박종운(朴種雲, 서울대 사회학과 4년 제적)의 소재 파악을 위해 그의 후배 박종철(서울대 언어학과 4년)을 체포했다.
그가 사망한 후 1987년 1월 15일, 치안본부는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발표했고 부검의의 증언과 언론보도 등으로 의혹이 제기되자 사건발생 5일 만에 물고문 사실을 공식 시인했다.
이 사건은 1987년 6월항쟁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여 민주화운동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