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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화랑
추천수0 조회수46 작성일2020.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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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화랑 - 심층인터뷰 최초의 공예화랑

이 인터뷰는 서울시 미래유산 심층기록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일시는 2020년 8월 18일 장소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32입니다.
구술자는 통인화랑 김완규 주인입니다.

1. 통인화랑에 대해서?

통인화랑은 전신이 통인가게인데 통인가게가 1924년에 제 선친이 시작을 하셔서 60년대 말 맡아가지고 운영을 했어요. 화랑을 하게 됐던 것은 이제 우리가 전통이나 고미술을 쭉 하다보니까 한계가 있단 말이에요, 세계화시키는데 한계가 있더라고. 그래서 고미술을 하면서 우리가 상설화랑이라는걸 만들어서 싱글 아이템(single item), 가령 표주박이나 장도나 이런 걸 전시하는데. 일반 대중이 그걸 볼 수 있는 기회가 없거든요, 한번에 100개라든지 200개라든지 모아서. 상설화랑을 만들어서 대중들한테 우리나라 공예나 미술을 알리기 위해서 상설화랑을 해서 운영을 했어요. 그 다음에 75년에 들어서는 우리가 공예화랑으로서 우리가 공예운동을 쭉 하다가, 세계화를 시키고 싶은 것은 우리가 현대미술로 해야 되겠구나라는 그런 생각을 했는데. 왜냐면 서양화는 우리가 아무리 잘 그린다고 해도 100년 200년 된 서양화, 뭐 고흐나 이런 오래된 화가들 토착화가를 따라갈 수 없죠 한국 사람들이 아무리 잘 그린다 하더라도. 그런데 현대미술은 처음 우리나라에서나 일본이나 이런 가까운데서 시작을 했던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고. 또 그 시조로 시작하신 분이 우리나라 박서보 화백이 제일 먼저 단색화라는 걸 시작을 해서 어떤 형태가 안 보이는 미술을 한거죠. 어떤 형상을 그렸던 것과 아주 다른, ‘현대미술이 도전할 수 있는 그런 종류다’ 해서 이 방에서 우리가 시작했어요 화랑을. 박서보씨나 이런 전시를 시작으로 해서 지금까지 한달에 한 번, 한달에 두 번씩 초대전 위주로 쭉 해왔죠.

2. 호텔 갤러리와 통인화랑의 차이점은?

우리가 73년도 말에 74년도에 이 빌딩을 완성했거든요. 그때는 지하 2층에 지상 7층인 이 동네 건물이 없었어요. 또 그리고 우리가 초기에는 고미술만 위주로 했기 때문에 공간이 또 남기도 하고, 그런데 이제 일반 화랑들은 현대미술 한다니 뭘 해도 호텔에 일부를 빌려서 쓰니까 사실 작가들이 봤을 때 위태롭지. 그게 임대료를 내고 과연 있을 수 있는지, 우리는 초창기부터 우리 건물이었으니까 작가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었죠. 그리고 서양사람들이 이 동네를 가지고 Mary's Alley(메리의 골목)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모든 나라에 가면 Mary's Alley(메리의 골목)라는게 사실 좀 어두컴컴하고 그런 유물이 모여있고 이런 동네를 얘기하거든요. 인사동인 그런 곳이거든, 그래서 인사동에서 하는게 미술의 근본이 된거에요.

3. 가구에서 미술품으로?

화가들이 그때는 콜렉터들이 거의 화가들이었거든요. 화가들이 늘 4시 이 시간만 되면 다 모여오니까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이 김종학이라던지 윤중식이라던지. 이런 유명한 화가들이 우리 집에 콜렉션을 하면서 자꾸 그런 관계가 유지된거죠. 다른 화랑에서 화가를 불러들인다는건 쉽지 않잖아요 지금도. 근데 이미 그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통인가게를 고객으로 들락날락했었으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위 취급 물건에 대한 밸류(value)나 고객의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죠.

4. 문화의 메카?

외교관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또 주한 외국인 대사들도 이런 사람들도 통인가게를 방문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우리가 문화를 알리는 메카 노릇을 하다보니까 우리 화랑에서 이런 그림만 파는 것이 아니라 오페라를 한다던지, 지금까지 우리가 오페라를 한 102번 정도 했거든요 그 다음에 판소리같은, 조선 판소리 같은거 40여년동안 해왔고. 또 통인미술이라는 잡지를 만들어서 일반인들한테 알리는 작업을 쭉 해왔죠. 그 때 통인가게에 오면 누가 부르지 않아도 김환기씨나 고희동씨나 이런 화가들이 모여서 차도 마시고 미술품에 대한 감상도 하게 되고, 그 시간들이 주로 저녁 시간까지.

5. 뉴욕갤러리 2002년?

내가 뉴욕에서 전시하면서 한 달에 한 작가씩 매번 바꾸니까 그 작가들이 세계시장에서 외국 기사도 될 수가 있고 더 많이 알리는 계기를 원했죠. 한국 내에서 하는 것 보다 또 우리가 홍콩에서도 또 했었거든요. 홍콩하고 주위에도 그런 작업을 했었어요.

6. 미술계의 변화?

미술이 참여하는 미술로 바뀌고 있거든요. 파이브 센스(five sense)라든지 만지고 느낌을 갖고 어떨 때는 냄새까지도 자기가 그 미술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이래야만 유지가 되는 때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정체되어 있는 유물이나 보고 그림만 보고 하는 시대는 아니다. 많이 바뀌어야되겠죠. 우리 통인이 생각하는 것은 그 모든 미술이나 이런게 근본이 되겠다는 생각이거든요.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고 변화에 맞춰 잘 해왔고, 또 앞으로도 그런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문화로 접할거에요. 그것이 그림 한 번 보는게 아니라 영상이 될수도 있고, 미디어를 플러스(plus)한 그런 걸로 바뀌어야 하지않나 봅니다.

7. 통인화랑의 미래?

1단계로 내가 처음 장사했을 때는 우리 문화의 훌륭한 것을 해외에 알려서 외국인들이 봤을 때 ‘한국이 문화가 수준이 있는 나라다’ 이런 것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었거든. 또 그 대목을 가지고 그걸 가지고 우리가 제 입장에서는 가구도 만들고 공예품도 만들고 공예를 전시하기도 하고 그걸 수출하는 작업도 해서 한 시대를 갔어요. 근데 미래에는 우리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게, 모든 미술의 근본이 되어야 되겠다 통인이. 우리 식구들은 우리나라의 문화를 보존하고 또 창조하고 그런 역할을 해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죠. 후손들이 맡아서 할 때도 그런 소위 전통을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고. 또 우리 저는 늘 소원하는게 통인의 예전이나 지금이나 손님들이 통인가게를 자유로운 장소로 여기고 물건을 사고 파는 것에서 보고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이용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갖죠.

개요
동영상 제목의 개요 : 구분, 지역, 분야, 시기, 출처
구분 건물/가옥 지역 종로구 분야 문화예술
시기 2020.08.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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