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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숙 문학관
추천수0 조회수35 작성일2020.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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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항정 한무숙 문학관 - 심층인터뷰 해방 후 문학도를 품은 공간

이 인터뷰는 서울시 미래유산 심층기록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일시는 2020년 9월 20일 장소는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9길 20 -한무숙문학관입니다.
구술자는 한무숙문학관 김호기 관장(한무숙 작가 장남)입니다.

1. 한무숙문학관에 대해서?

1993년에 돌아가셨으니까 벌써 27년이 됐네요. 돌아가신 담에 곧 저희 가족이 상의하고 또 고인의 뜻도 그래서 문학관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15년전에 돌아가신 그 후로도 우리 선친이 13년을 혼자 사셨어요 집에. 돌아가시기 전에 이 집에 기반을 다 만들어놓으셨어요 한무숙 재단도 만드시고. 문학관 이 골격도 거의 다 해놓으셨어요. 노인이 전시실 설계같은 것도 다 하셨어요. 노인이 직접 다 그래놓고선...이집에 53년부터 환도하고 부산 피난 3년, 4년 살다가 환도하고 40년을 꼬박 살다 가셨으니까.

2. 한무숙 작가에 대해서?

저희 어머니라고 해서 그런게 아니라 여성으로서 그 이상 완벽한 분은 못봤어요. 다른 유명 작가들하고 다른, 작품 만들라면 수선을 떨고 그런 분들도 많잖아요. 뭐 깊은 산을 찾는다든가 뭐 골방을 찾던가, 이분은 여성으로서 본분을,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본분을 다 하는 후에 창조를 하신 분이에요. 많은 가르침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생활은 평범하게 사고나 창작은 비범하게’ 그렇게, 그렇게 하셨어요. 하나의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집안의 며느리로서, 남편으로서, 어머니로서 본분을 다 한 연후에 있는 창조물이 아무렇게나 살면서 하는 창조물하고 비교해볼 때 어떻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작품이 인간 내면을 표현하고, 또 카톨릭이셨어요. 인간 구원에 대한 그 추구에 대해서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깊습니다.

3. 한무숙작가의 집필 스타일에 대해서?

항상 작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셨어요. 그래서 일하다가도 생각나면 거기다 기록하셨고, 길가다가도 세상을 보면서 생각을. 어떤 아이가 이쁜 얘기를 했다든가 그러면 다 노트에 쓰셨어요. 삶이 어떻게 보면 창조셨어요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겠지만

4.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단편에 ‘돌’이라는게 있어요. ‘돌’의 마지막 부분에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두고 떠나는 젊은 여성이 “선도 악과 같이 함께 벌을 받는거네요” 그런 말이 있어요. 이 말을 설명하면 철학가들도 오래 생각해보니 말 자체가 괜찮잖아요. 그런 돌같은 작품이 좋았고. 또 마지막 작품인 ‘만남’ 이라는게 있어요. ‘만남’은 우리나라 천주교의 박해사를 쓴 건데. 거기 나오는 주연이라고 할까 하는 분이 다산 정약용 선생과 그 조카 하상 바오로예요. 그 작품은 아주 대작이죠. 이 작품은 얼마전에 돌아가신 장면박사 셋째 아드님 장익 주교님이 요한 바오로 교황 2세한테 이 책을, 이 책이 우리나라 소설 중에 최초로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번역이 나온 거에요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 그 책을 보냈더니 아주 좋아하시고 비서실장 추기경님 이름으로 그 격려의 편지도 보내주셨어요. 이 책은 외국에도 많이 그 20세기에 블란서의 양대 지성이라는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라고 철학가가 있어요. 그 분의 생각이 서양 철학의 한계를 고대 동양 철학에서 보완해야 된다고 말했어요. 보완해야 된다는게 지론이었는데, 블란서 번역판을 보시고 90이 넘어서 무릎을 치면서 바로 블란서나 서구의 지성들이 이런 책을 읽어야 된다 하는 일화도 있어요.

5. 해방 후 문학도를 품은 공간?

이 집에 왔을 때 부모님이 이 근처 서울대학교 문리대생이라든가, 성균관대 학생이라든가 지방서 온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그분들이 하숙집에서 고생하는게 안되서 학생들이 마음대로 기거하고 먹고 하도록 내놓으셨어요. 그 중에 유명한 분들이 많아요, 뭐 각계에 많아요 근데 특히 문화계에 많아요. 문학쪽이 많고, 미술 음악도 많고 문학 쪽이 제일 많죠. 뭐 천상병 박재상같은 분들 뭐 내 방에 같이 와서 구르고 같이 자고 그랬어요. 몇 년동안을, 너무나 유명한 이어령 선생같은 분도 자주 와서, 그분은 자고 그러지는 않았어요. 근데 자주 오셔서 잡수시고 그랬죠. 지금도 이 집을 얘기하면 청춘 시설을 회고를 하고 그러세요.

6. 한무숙 재단과 문학상 제정이유?

한무숙 선생 살아계실 때부터 우리 다 가족끼리 이야기가 된 거에요. 한무숙 문학의, 인간 내면의 묘사라든가. 인간 구원의 추구에 대한 정신은 우리가 오래도록 유지,발전해야 된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이 집을 사수하는 것입니다.

7. 한무숙 문학관의 운영방침은?

저는 옛것을 유지하며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신봉자입니다. 그래서 저희 선친도 마찬가지였고. 인간은 옛것을 지키면서 그 안에서 미래가 창조되어야 된다는 건 저희의 신념입니다. 바꿔질수는 없죠, 물론 신기술같은 것은 같이 들어와야겠지만 그런 기본 정신은 그냥 유지하렵니다.

8. 미래세대에 대한 바람은?

여기에 학생들 드나들 때 같을 때 사람들 마음이 전쟁으로 폐허되고 힘들었지만 지금처럼 냉랭하고 이웃도 모르고 그러진 않았습니다. 내 글에 제목이 ‘경제 난국인가 정신의 난국’인가 였어요. 오늘 우리나라가 오늘날 어렵잖아요, 너무 서로 탓만 하고 하니까. 그냥 우리가 너무 바쁘게 살아 그래서 좀 잠깐 바쁘게 살다가도 잠깐 이런데 옛것을 느낄 수 있는데 와서 잠깐 앉아서 세상을 다시 돌아보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들이 우리 이웃 서울 시민들이 많이 가졌으면 합니다.

개요
동영상 제목의 개요 : 구분, 지역, 분야, 시기, 출처
구분 건물/가옥 지역 종로구 분야 도시관리
시기 2020.09.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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