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바닥글 바로가기
모바일 메뉴

서울미래유산서울미래유산

I.SEOUL.U
전체메뉴닫기

주메뉴

 
 
미래유산 체험코스
  • 광희동에서 장충동까지, 한양도성 따라 만나는 지난 100년
    광희동에서 장충동까지, 한양도성 따라 만나는 지난 100년

동영상

명동화교거리 서울화교협회
추천수0 조회수74 작성일2018.10.19
자막
이 인터뷰는 서울시 미래유산 심층 영상기록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일시는 2018년 6월 27일이며 장소는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52-13 서울화교협회 회의실 내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구술자는 서울화교협회 회장 이보례님 입니다. : 1. 한성화교협회는 어떤 곳이고 언제 설립이 되었습니까? 화교협회가요 1884년 설립이 됐어요. 그 당시에는 화상회 라고 장사하는 사람 있잖아요. 화상, 장사하는 사람들. 나중에는 화교회라고 바뀌었어요 이제. 바뀌어가지고 5.16 혁명 때 이제 화교협회 자치구로 바뀌었어요. 바뀌어 가지고 슬슬 돌다 보니까 화교협회로 바뀐거죠. 왜냐하면 이제 화교가 모이는 장소가 없어요. 화교협회를 만들어야 화교들이 지방에나 뭐 이렇게 화교협회에 와서 옛날에는 그렇잖아요. 점심때 끝나면 갈 곳이 없으면 화교협회로 놀러 왔어요. 이제 화교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요새는 괜찮지만 전에는 그랬어요. 화교협회로 명칭을 개칭해 가지고 이제 단체, 화교단체 뭐든지 협회에서 하라고 화교를 많이 도와주고. 사실은 화교가 호적도 다 우리 여기 협회에서 다 해주잖아요. 그리고 민간단체니까 우리 저기 대표부나 대사관이나 협회에서 그 역할을 하죠. 중간에 왔다 갔다 역할을 하죠. 화교가 괴로운 일 있으면 못하는 일이 있으면 협회에 와서 협회가 다 일을 하죠. 처리보다는 해결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2. 화교협회의 주요업무나 활동은 무엇입니까? 화교협회 제일 중요한 업무는 대만하고 똑같아요. 이 호적등본이. 지금 다 컴퓨터식이에요. 요새는 저기 중국남자 한국여자 이렇게 많이 결혼하죠. 그 중국여자 한국남자 국제결혼 그거 해 주고 뭐 나쁜거는 이혼수속 같은 거 법정으로 가지만 그거는 여기서 다 증명서를 띄어야 되니까. 그런거 다 해주고. 이제 뭐 화교들 굉장히 힘든거 이제 요새 중국에 놀러 가면 여행증 만드는데, 기본적으로 인터넷 등록하고 가야되잖아요. 그러면 굉장히 3개월 동안 기다려야 되거든요. 그러면 화교협회가 대사관가서 협조해 달라고 해서 16일날,5월16일날 여기서 했어요. 여기서 다 바로 해주고 갖고 들어가서 서류를 만들고 이제 한 달후에 해주기로. 왜냐하면 그 사람들 다 컴퓨터로 집어넣고 해야 될거 아니에요. 일단은 편리하게.. 우리 협회가 하는 일이 그것 밖에 없어요. 그리고 화교가 이제 사건 사고 나면 대표부나 대사관에서 우리한테 전화 오면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처리하고 만약에 범죄자 같은 거는 안되지만 조그만 일은 얘기하면 한국 법무부나 이런 데서 많이 협조 해주죠. 그런걸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3. 협회가 언제 명동에 자리를 잡았나요? 청나라 때.. 1882년에 화교가 한국에 왔어요. 말하자면 137년 됐어요. 137년 됐는데 화교협회가 자리 잡는 것이 1884년 명칭이 생긴 거였어요. 그때 당시는 명칭이 그 화상회 라고 그때 제가 알기로는 수표동쪽에 있었던 거 같아요. 내가 알기로는.. 뭐 정확히는 잘 모르겠는데 책을 보니까 수표동에 있다가 이리로 이사 오면서 여기에 화교협회를 만들었어요. 4. 1884년 당시의 거리 모습은 어땠는지 아시나요? 그 당시 거리는 판자촌이었어요. 다 판자촌이었어요. 여기가 말하자면 우리 시골 가면 한국 사람이 짓는 나무 판자집 있잖아요 지붕이 나무로 된거 그런 집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건 사진이 있거든 지금은 못 찾는데 지금 말씀하시면 다 나와요 그게. 여기 다 판자촌이고 이 빌딩은 우리 화교들이 도와줘서 이 빌딩을 지은 거거든요. 이 지금 도서관빌딩을 .. 5. 예전에는 이곳에 화교분들이 많이 사셨다던데? 박대통령 얘기하면 안되잖아요. 잘라 주세요. 그 당시에 그 화교들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래 가지고 재직이 있었어요. 재직. 그래가지고 화교들이 그때 당시 한 10만명이 있었어요. 근데 재직이 있어가지고 뭐 이것도 못사고 저것도 못사고 그래가지고 대만 미국 제일 많이 갔을거에요 이민. 뭐 돈 벌어도 땅도 못사니까. 다 이제 대만하고 미국 캐나다 호주 많지는 않은데 제일 많은곳은 대만이고 미국이에요. 그래서 명동에 화교가 인구가 작아졌어요. 지금 화교가 전 대한민국에 17000명 밖에 안되요. 그렇게 줄었어요. 6. 명동에 화교거리라는 명칭은 들어보셨는지? 이 화교거리는요 옛날에 화교가 여기 모여 살아가지고 식당, 모포점, 잡화 이렇게 했었어요. 하다보니까 이제 한국 사람들이 여기를 막 몰렸어요. 몰려가지고 화교의 거리는 이 한국 사람들이 만들어 준거에요. 왜냐하면 여기가 여기만 오면 차이나타운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옛날에. 왜냐면 옛날에 대표부 있을 때 대표부가 있었잖아요 대사관 들어오기 전에. 대표부가 있을 때는 여기 다 모여 있어 화교들이. 모든지 다 거기 가서 일 해야 되고 협회에서 뭐 하나 띄어가지고 바로 가서 해 주니까 여기 다 모이다 보니까 한국 사람들이 중국거리로 놀러가자 이랬었지요. 차이나타운을 형성을 못해서 그렇지 너무 작아가지고. 7. 협회 건물은 누가 관리하나요? 지금 현재 저 끝에서 이 끝까지 개인 땅이 없어요. 다 우리가 관리해요. 여기 빌딩 밑에도 다 상가 있잖아요. 다 우리가 집세 받고 관리하고 저쪽에 가면 또 개화 같은 식당 같은데 있잖아 거기는 우리 협회가 관리하고.. 두군데에요. 여기는 도서관 빌딩 우리는 협회잖아요. 우리는 그쪽 관리하고 수표동 관리하고 도서관 빌딩은 도서관빌딩이 관리해요. 8. 명동 화교거리의 경제적 타격은 언제였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대사관이 한번 이사 갈 때는 저기 집 질 때 저기 효자동인가 글로 이사갔어요. 몇 년도인지는 잘 모르겠고 제가 보기에는 한 4~5년 됐나? 2002년도에 이사 갔나요.. 그 이사 가면서 이제 여기 공사 들어갔잖아요. 들어가서 다시 들어 왔는데 그때 당시는 괜찮았는데 알다시피 1998년 IMF 가요? IMF 겪고 이 경제적으로 이 장사가 참 괜찮았어요. 옛날에, 인구가 많기 때문에. 그리구 또 사드문제도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원래 이 명동은 알다시피 관광손님 많이 오는 데에요. 그 사드 문제 때문에 중국에서 조취를 하니까 관광손님이 안 들어오니까 일단 명동이 지금 옛날보다 많이 죽었죠. 그런데 지금은 또 인내심 갖고 계속 하니까... 지금 또 슬슬 돌아오고 있어요. 9. 중국대사관 이전과는 연관성이 별로 없는건가요? 제가 이걸 앞에두고 함부러 말을 못하는데.. 뭐 현재는 대사관들어가면 우리 화교한테 참 덕이 많아요. 제가 방송이라 함부러 말 못하는게 옛날에는 우리가 마음대로 못했어요. 근데 중국대사관 들어오고 나서 할거 다 해요. 많이 뒤에서 많이 도와주죠. 뭐 또 모르게 힘이 생기더라구요. 10. 명동화교거리의 관리 필요성은 느끼십니까? 이 거리가 원래 중구청에서 관리하는게 아닌가요. 중구구청이요. 제가 알기로는 한 3년 전에 제가 감사장할 때 그 구청장이 한번 여기 차이나타운 하면 어떤가 한번 건의한 적이 있었어요. 근데 차이나타운 하기에는 너무 작은 거에요. 지금 이게 차를 타고다니게 길고 관광손님들도 오고 막 돌아다니게 토산품이나 뭐나 다 있어야 되는데 여기서 여기만 가면 끝나니까. 그거를 지금 보류중인지 해지고 있는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건의한 적이 있었거든요 여기 상인들이 있었어요. 그걸 우린 참 좋다고 얘기했거든요. 우리도 그걸 한번 하려고 했었어요. 그걸 하게 되면 중국대사관 문 앞에다가 중화기예라고 그 중국에서 가져와서 달아준다고 얘기했는데 , 지금 너무 짧어 길이 너무 짧다보니까 그게 아마 승인이 안된거 같아요. 11. 화교거리를 관리하는 조직은 없습니까? 없죠... 없어요. 우리 화교협회가 예전에는 요식업도 했었어요. 요식업도 있는데 지금 알다시피 그 시 자체 지방마다 다 요식업 따로 있잖아요. 옛날에 우리 협회도 요식업이 있었어요. 원 중국집에 식당이 지금은 괜찮지만 옛날에 가게가 다 허술하고 지저분했잖아요. 그러면 다 가서 조사 위생검사 나오면 요식업에서 다 알아서 처리해주고 그 덕을 많이 봤죠. 근데 지금은 구 마다 다 있으니까 구 마다 서로 도와주니까 뭐 상관없죠.. 그리고 와서 뭐 영전시키는것도 아니고 이게 명동 빨리빨리 수리하라 고치라 뭐 어디 나쁘다 이러면 개선하라고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다 괜찮아요. 지금 장사는 옛날 보다는 편해요 사실은. 12. 화교거리의 개선점은?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관광 손님 모이게 하려면 이 밑에 상가 있잖아요. 다 중국식으로 해야 되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괜히 또 우리 세입자들 한국분도 계시는데 괜히 기분 나쁘면... 우린 사람을 안 쫒아요. 명동에서도 안 나오겠지만 집세 제일 싸요. 뭐 점포하나 30만원 40만원 그렇게 받고 있어요. 그러니 안 나가려고 하죠. 지금 어디가나 점포하나에 평당 얼만데요 그죠. 부동산도 우리한테 그래요, 집세 좀 올려서 받아요. 자기가 받아준다고. 필요 없다 그랬어요. 왜냐하면 사실은 이게 우리 선조들 땅이지 우리 땅은 아니잖아요. 선조들이 모여가지고 이 빌딩을 지었거든요. 세를 주면서 그 세를 받는 걸 갖고, 1년에 우리 행사 2번해요. 우리 노인들 행사 또 화교의 날 행사 10월22일 좀 크게 해가지고 노인들 보면 한 700명 나오거든요. 추첨도 하고 상품권도 주고.. 이번에도 이십 몇일 날이야 저기 용문사 갔다왔거든요. 700명 모시고. 그러고 나중에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죠, 서른 몇 군데 소속의 단체 있다고 그랬잖아요. 체육대회 하면 스폰서 해주고 그러기 때문에 그 소소한 단체들이 무슨 체육회 아니면 농구대회, 볼링대회 뭐 이런거 있잖아요. 우리가 조금씩 스폰서 하고 자기들이 걷어서하고. 우리 목적은 화교 노인들 도와주는 거에요. 저기 부인회원이나 뭐 이렇게 젊은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좀 있으니까 조금만 도와주면 되니까. 13. 화교거리의 규제는 있나요? 지금 이 수질 같은거는 모르겠어요 모르겠는데 다만 이 거리에 규제가 있어요. 집은 못 지어요. 왜냐하면 집을 질수 있으면 옆에도 좀 미화, 미화 땜에 깨끗하게 좀 올려야 되는데 아마 좀 있다 내려가시다가 보면 옆에 개화 식당 같은 거 2층 집이거든요. 그거 옛날 집이에요. 리모델링하고 맨날 장사해요. 비 샌다고 전화가 와 그러면 공사해 주고 어쩔수 없잖아요 세 받아 먹을라면. 근데 못 짓게 하니까 14.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많으시겠어요? 사실은 우리는 아까 말씀드렸지만 3년 명예직이잖아요. 제가 협회에 16년 몸을 담고 있는데 처음에 들어 올 때는 아무것도 몰라요. 부회장 하면서부터 조금 알게 되요. 왜냐하면 이사들은 그냥 일 시키면 일만하고...모르니까 부회장서부터 제대로 배우고 있는데 저두 이거 한다니까 이거 아까 대충봤거든요. 굉장히 힘든줄 알았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면 답해주는데 하나씩 콕 집어서 물어보면 답을 못하잖아요. 제가 아는거 까지는 제가 언제든지 답변을 드릴수 있는데 모르겠어요. 지금 만약에 동네가 잘되면 저도 좋겠죠. 현재는 답이 없거 계획이 없으니까 답변을 못드리겠네요. 15. 서울시 미래유산에 대해 동판과 인증서를 드릴수 있는데 받으실 의향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주면 받겠죠. 고맙게 생각하겠죠. 다만 지금 받아보면 화교협회가 더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노력해야되지 않나 본인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16. 이 주변을 협회에서 관리하고 계시고 행사도 주관 하시고 중심적인 역할을 하시는데? 1년에 행사가 2번이 아니라 행사가 많은데 제일 큰 행사가 2번이라고 했죠.
개요
동영상 제목의 개요 : 구분, 지역, 분야, 시기, 출처
구분 인물 지역 없음 분야 시민생활
시기 2018.08. 출처 - -
연관 자료
동영상 1건  |   VR영상 0건  |   사진 0건  |   음원 0건  |   카드뉴스 0건  |   기초현황조사서 1건  |   기타자료 0
  • 동영상파일 명동화교거리 서울화교협회
    명동화교거리 서울화교협회
  • PDF파일 명동 화교거리
    명동 화교거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제1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추천수0
탑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