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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용원
추천수0 조회수228 작성일2018.10.19
자막
이 인터뷰는 서울시 미래유산 심층 영상기록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일시는 2018년 6월 8일이며 장소는 종로구 혜화로 7 문화이용원 내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구술자는 문화이용원 대표 지덕용님 입니다. : 1.문화이용원은 언제 개업을 하셨습니까? 개업한 날짜는 1940년도 79년 됐죠 2. 79년부터 이 자리에서 계속 영업하고 계신가요? 처음에는 옆에 이거 짓기 전에 이 옆에 있었어요. 그때 그 당시는 건물들이 없으니까 하꼬방에 있었잖아요. 건물을 지으려고 하니까 이전서 나가라고 하니까 이 이발소에서 짓고 이쪽으로 이사 온 건데 그것이 인저 57일 있다가 55년도에 이쪽으로 온 거여. 그 시작한 거는 1940년도에 시작한 사람은 6.25때 인민군이 데려가 버렸어요. 요 뒤에 아파트 자리에 병원이 있었어요. 서울여자의과대학 병원이 있었어요.그래서 여의정이라고 불렀죠. 인민군들이 왔을 때 인민군이 있었고 병원에, 군인들 왔을때는군인들이있었고,병원이니까 환자들 머리깍아주라고 여기 이발소가 있으니까. 인민군이 주인을 데리고 가서 환자들 머리깍고 하다가 갈적에 데리고 갔어요. 그 담에 인민군들이 들어가고 나서 육군병원이 있을적에 육군병원에 이발사가 그때는 군인들이 이발사였으니까 군인들이 제대하고 문을 열어 또 시작한거죠. 저는 이 동네에 살면서 지방에서 6살 때 서울로 왔어요. 공부하러. 서울로 와 가지고서울에 와서 형님 먼저오고 누님오고 내가 6살 때 와가지고 형제들하고 정착을 하고 있는데 전쟁이 나가지고 인저 이렇게 있다가 내가 머리를 깍으러 다녔어요. 어렸을 때 여기로 머리를 깎으러 다녔어요. 머리를 깍고나서인저 전쟁 지나가고 나서 휴전, 휴전이 되가지고 어려서 그때 학교를 머리를깍고학교를 다니는데 상급학교를 못가고 인저 놀고 있으니까 주인아저씨가 너 이발 배울래... 가르쳐주면 배우겠습니다. 그때는 이걸 배울 적에는 월급이라는 건 없었어요. 그냥 먹여주고, 먹여주고 그냥 여기서 집니 근방인데도 집에 못 들어가고 여기에서 잤어요. 가게에서 겨울에 왜 여기에서 자게 만들었냐면 그거 모를거에요. 겨울에 물을 길러야되요. 물, 공중수도가있어요.집집마다 수도가 흔하지 않으니까 뽐뿌물, 뽐뿌 알아요? 뽐뿌로 해가지고 뽐뿌물은 물이 짜가지고 머리에 때가 잘 안가, 그러니까 수돗물하고 섞어가지고 물을 끓여서 와가지고 머리를 감아야 되거든요. 근데 그 밤이면 한 10시까지 일을 해야 하거든요, 일을. 직원들 다가고 난 대개 저쪽에 가서 물을 12지게를 길러야 되요. 도람뿌깡 2개에다 물을 채우는거에요. 꼭 12지게가 들어요. 도람뿌깡 2개를 채울려면. 그 담 아침부터 그걸 또 퍼다 섞어 뽐뿌물하고 섞어가지고 물을 데워가지고 인저 머리를 감는건데 그것부터 시작해서 아침이면 그때는 십구공탄 그런게 없었잖아요. 하두 때는 것이 많다보니까 난로가 이런 쇠난로가 있는데 쇠난로에다가 장작을 갔다가 불을 피는데 아침에 5시 6시에 5시에 일어나요. 6시부터 난로를 피워야지 인저 직원들이 오면 일을 하게 되거든요.. 난로를 피우고 인저 계속하면서 머리를 감는 거 배우는 거에요. 청소하는 거 배우고 머리 감는 거 배우고 그걸.. 그 담에 고데, 그땐 드라이가 없었어요. 드라이는 그 후에 60년 후에 드라이들이 나왔는데 우리나라 거는 없고 일제들, 그걸 하는데 배워야지. 면도 이걸 하나 배울래면 밑바닥에서부터 쭉 단계 단계로 올라가면서 배워야했어요. 인저 그 하나 마스터 끝내면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가요. 그 담 단계 한 3년이 되면 머리 깎는걸 배우게 되요. 도구 갈을거 가위, 그때는 칼을 갈아서 써야되요. 지금은 그냥 1회용을 쓰지만 그때는 칼을 전부 갈아요. 그 직원들 나오기 전에 다 갈아줘야 되요. 그니까 얻어 맞아가면서, 고데할적에 고데를 연탄불에 넣어가지고 그걸 식혀줘야 돼, 적당하게 온도를 맞춰줘야지. 기술자들이 고데를 하는데 뜨거우면 머리가 딱딱 잘라져 버리거든. 잘못되면 그러면 그거 한번 잘못했다하면 뜨거운 고데자루로 한 대씩 맞아, 머리를 꼭 머리를 때리더라고 머리를 꼭 때려요. 그게 기술이니까 그때는 뭐 돈이라는건... 그때는 한달에 한번 놀았어.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꾸준히 참아가면서 배우고 한3~4년 배워가지고 여기 직원으로 올라가게 됐죠. 직원으로 되니까 그제서부터 월급이 나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나이가 차니까 군인을 가야하잖아요.군인을 가서 인저 연장 나오기전에 해병대를 지원했죠. 해병대를 지원해서 3년을 복무하고 다시 여기 와서 일을 해 가지고 정식적으로 직원이 되가지고 버는대로 인저~ 그러다가 한참 몇 년을 일을 하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연세가 들고 몸이 아프니까 할 수가 없으니까 니가 이걸 맡아가지고 하면 니가 여기 오래 있어서 다 아니까 괜찮을거다 하면서 , 그땐 직원들이 맣고 여기 바쁘니까 이걸 살 돈이 없습니다 하니까 내 친구 교수하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공부를 같이하던 친군데 참 도움을 많이 줬죠. 이거 사는데 도움을 많이 줘 가지고 내가 주인이 된거 53년째 된거에요. 그 후로 인수를 맡아가지고 그때부터. 근데 그 친구가 돈을 빌려주면서 통장을 하나 만들어주더라구요. 먹고살고 이 통장에다가 조금씩 조금씩 넣어서 그걸 갚으라고, 한꺼번에 갚으면 고생하니까. 그래 먹는거 집에서 살림하는거 어쨌든 둘째가랄하고 그거 먼저 얼른, 그걸 고마우니까 갚고 , 이자도 받는게 아니고 그냥 빌려준건데. 먹고 살아야 하는데 뭐 이리 빨리 갚았느냐고, 돈 많이 벌렀구나 그러면서 그런말까지 했는데. 그래서 여태까지 그러니까 제대하면서 쭉 여태까지 평생을 여기서 있는거에요 63년 동안을. 3. 다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으셨어요? 내가 가끔 가다가 좀 삐딱할 적이 있죠.. 화날적도 있고 근데 이게 딴 걸로 달래가면서 내가 이걸 하루 내가 일을 안 하게 되면 일을 안하면 돈 들어오는 데가 없는 거야, 이런 거는 월급 받는 사람이 아니니까. 노르믄 돈 안 들어오고 일을 해야 되거든요. 가족들이 결혼을 해서 가족들이 있으니까. 가족들 먹여살릴려고 더 열심히 해야죠. 여태까지 꾸준히 인저 아이들 셌다 낳고 낳아가지고 다 공부, 하나는 박사 끝냈고 둘은 석사 끝내고 하나는 행정고시 패스한 사람이 있고. 하나는 큰 기업에 팀장으로 있다가 지 사업을 하고있고 하나는 학교강의 나가고 그러구 우리 지금 사는거는 혜화동 집에서 안사람하고 둘이만 살아요. 네, 집에서 둘이만 살고 이렇게 꾸준히 평생 손님을 위해서 살았어요. 노는날이고 놀면 돈이 안들어오니까. 노는날도 지금이야 일주일에 하넌 놀았지. 그 전에는 한달에 두 번 놀고 그랬거든요. 그래도 바빴거든요. 엄청. 직원이 6명 있엇는데 그 사람들 다 먹고 살았거든요. 근데 지금은 어느새 7,80년대 90년대 넘어가니까 인저 이게 갈라지는거야. 저 청년처럼 바가지 머리깍는거 바가지 머리깍는게 유행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이발소 청년들은 이발소 하고 거리가 멀어졌어요. 이발소에서 머리깍는거 자체를 몰라요. 미장원에 가서 엄마들이 미장원을 다니면서 깍아주니까, 이발소가 자꾸 없어지구. 그러니까 이발소가 동네에 옛날에는 이발소가10개면 미장원은 하나둘 밖에 없었거든요. 요새는 거꾸로 이발소는 하나밖에 없는데 미장원은 수십개가 되버렸어요. 그걸 거역할 수는 없는 거에요. 유행을 거역할 수는, 순리를 따라가야지.그러니까 인저 직원 하나하나 나가고 여기 혜화동 명륜동에 이쪽에 이발소가 12군데가 있었어요. 12군데가 있었는데 다 없어지고 저두 8~9명이 일하던데가 저두 하나가 하구. 근데 이게 내집이니까 하고있지 임대료 줄거 같으면 벌써 없어졌죠. 임대료 주고나면 하루에 몇푼 번다고 사람을.. 그 전에 5~6년전까지 여 종업원이 하나 있었어요. 근데 여종업원 월급이 자꾸 올라가잖아요.. 그니까 이제 지금은 생각지도 못하죠. 나보다 더 가져가야되고 그러니까 내가 혼자서하고, 적게벌어서 적게 먹고 내가 혼자서 열심히 하면 신경을 안쓰잖아요. 첫째 신경을 안쓰니까 나니 먹어가니까 신경을 쓰면 병이 되더라구요. 1명을 안쓰니까 직접 보양을 먹는거 보다 좋죠. 혼자 힘은 들어도 혼자 깍고 면도하고 머리감고 드라이하고 다 혼자, 바닥도 다 혼자 살아가니까 세월이 자꾸만 그렇게 되더라구요.언젠가 내가 관둘라고 문을 닫았었어요.몸도 아프고 그래서요. 3-1.언제쯤 아프셨나요? 몸이 많이 아파요. 산을 원체 좋아해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가지고 다 망가지고 내 몸은 지금 전부 쇠덩어리가 들어가 있어요. 산에서 두 번 헬리콥터 두 번 탔어요. 그래도 이렇게 마음 한가지 올바로 먹고 사니까 살고 있잖아요. 열심히 일하거든 내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해야지 짜증이 안나지. 손님 땜에 먹고 살잖아요. 손님이 최고잖아요.. 나보다도 우선은 손님이 그러니까 내가 몸이 조금 불편했어도 오늘 단골손님이 멀리서 왔다 그냥 가면 어떡하나 가면은 미안하잖아요. 그 다음에 와서도 꼭 얘길해요. 왜 언젠가 왔더니 문을 닫았더라고 어디 아프시냐고 그런 분들 얘길 들으면 마음이 아프잖아요. 여기까지 나를 위해서 찾아왔다가 그냥 가시면 주인으로서는 도저히 기술자론 용납이 안돼. 그래서 웬만하면 문을 안 닫아요. 병원에 갔다오는날도 잠깐 병원에 갖다오고 그러고 또 문 열고 오전에 병원 갖다오면 오후에 열고 이렇게 해 가지고 손님이 그걸 아니까 내가 어디 치과에 가더라도 손님이 계시면 못가요. 그걸 내일 오세요 이럴수가 없어요. 딱 그분이 나를 먹여 살리는 분들 아니에요. 그렇게 마음이 그렇게 정해지구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까 그게 더 편해요. 노는 것 보다 그렇게 살아온 것이 내 인생에 81살까지 살아온거에요. 3-2. 손님을 위해서 이 가게를 계속 운영하신 거에요? 손님이 왕이죠, 손님이 최고죠. 손님땜에 내가 먹고 살았는데 손님이, 손님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손님은 거절하면 안되고, 손님한테는 냉대하면 안되죠. 어떤때는 손님이 이런 손님이 있죠. 안왔으면 좋겠다는 손님이 있죠. 그런 손님이 있죠 별별 손님이 다 있죠 아.. 저 손님이 별로다... 4.기억에 남는 손님이 꽤 많으신거 같습니다. 여기 오시는 손님이 참 유명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3대 총리 이회창씨 이수성씨 김상엽씨 이분들 유명하시잖아요. 또 학자로서는 이희승박사님 이병도박사님 최재희박사님 권오애박사님 조병오박사님 뭐 우리나라 학술, 학술원 1세대들 이분들이 다 다니셨어요. 군인들은 장도영준장, 아세요? 혁명 박정희 대통령하고 같이 그때 참모장하던 장준영준장 김상복장군,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된 김상복장군. 한전에 사장하시던 돌아가셨지만 또 김정호장군, 최정오장군 장군들이 우리나라 쓰리스타 포스타 다섯 분이 그러구 장관들이 20~30명됐고. 기업인들 저는 기업인들 출장만 다녀도 먹고 살았어요 한동안. 기업인들은 집에 시설이 다 되있거든요. 애들도 깎고 이러느라 전화 오면 차가 와서 날 데려가면 애들도 깎고 지금도 2세들이 오십니다. 2세들이 지금 80대, 지금 2세들이 그룹회장으로 계시고 3세들이 회장으로 다.. 그런분들 입니다. 여기에 삼성 부회장님, 옛날에 조웅동 부회장님이 이병철씨 살아계실 때 그분은 여기 38년을 다니셨어요. 사모님이 지금도 살아계세요 99세. 그분이 삼성 조웅동 부회장님이 103세로 돌아가셨어요. 효성, 두산, 현대 뭐 우리나라 유명한데 많이 했죠. 내가 그분들 덕에 먹고 살았으니까. 2세들이 2세들이 지금 다 찾아오고 지금은 3세들 세상이니깐.. 3세들은 또 거리가 멀어졌어요. 3세들이 몇 명 오지만 아버지 손 붙잡고옥 할아버지 손 붙잡고 오고 그러던 사람이 아직도 와요. 얼마나 보람 있습니까 참 보람 있죠. 어저께도 재벌 손자가 자기 아버지 손 붙잡고 온사람이 중학교때서부터 온 사람이 70세가 됐는데도 기다리다가 이발을 하고 가셨죠. 그러니까 난 그만큼 행복한 사람이죠. 날 찾아와주고.. 네.. 이런분이 편해요. 그 분 머리 스타일을 알고 다 아니까 와서 앉으면 그대로... 근데 사람이 머리를 잘못 깍아놓으면 기분이 나쁜거거든요. 어느 사람이나 마찬가지에요. 마음에 안들게 하면 그게 찜찜한 거에요. 지금 머리들은 찜찜한 것이 없어지고 그저 유행스타일, 연예인들도 많이 왔어요. 며칠전에도 연예인들 와가지구 몇 시간을 들볶고 가 가지고 몇시간을 문을 잠가 버리고 그랬어요. 연예인들이 오면 여자들이 따라와 가지고 바깥에서 문을 자꾸 두드리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난 얼마나 보람있냐 행복한 사람이죠. 직업하나 잘 선택해 가지고 이렇게 많은 저거 메스컴도 타고 또알아주구 그러니까 얼마나 내가 행복한 사람이야. 보람을 느끼고 한자리 한우물을 파가지고 이렇게 됐으니까 , 나같은 사람을 누가 이렇게 해주겠어요. 그만큼 난 고맘고, 아~ 내가 이걸 배웠기때문에 참 내가 잘했구나 하고 나이 먹어서도 이렇게 할 수가 있잖아요. 아프지만 않으면 할 수 있고 나는 고마운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고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이죠. 5. 오래된 물품들이 많은데 지금 창업을 하고 나서 지금까지 계속 바뀌지 않은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바뀌지 않은 것은 아마 연세가 어떻게 되실지 모르지만 예날에는 이 관에서 주도를 했어요. 요금을 관에서.. 구 위생과 이렇게 결정해서 갑,을,병 이렇게 등급을 매겨서 시설 좋은데는 갑을주고 그렇게 해가지고 중간중간 등급을 매겨서 요금이 달랐어요. 저희는 갑을 받았는데 그때는 시절이 참 좋았죠. 그 당시만 해도 갑을 받아서 요금이 얼마.. 요금표가 화폐교환 하기 전에 요금표가 있어요. 환으로.. 그것이 이거이 여태까지 쭉 모아놓은 것을 보관하고 있어요. 개인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으로 가져 갈거에요. 예약이 되있어요. 내가 꼭 이거 끝나면은 박물관으로 가져갈게 많아요. 그런 거 무심코 버리지 않습니까, 근데 저는 그걸 차곡차곡 다 쌓아놨거든요. 내가 쓰던 도구, 우리가 여기서 쓰던 도구, 세상은 기계라는 건 자꾸 변하지 않습니까. 과거에는 볼래야 볼 수가 없어. 박물관에나 가야지. 근데 그거 하나하나 내가 쓰던거 한가지씩만 놔놔도 그게 많아지잖아요. 그게 아~ 과거에 내가 이런걸 가지고 어떻게 썼나 지금의 도구가 얼마나 좋습니까. 그걸 내가 상상하면서 이렇게 과거엔 이렇게 이런것도 썼는데 지금은 내가 얼마나 행복요. 참 과거에는 주물로 가위 같은거 하면 그걸 매일 기름에 수건에 기름을 묻혀서 닦아줘야 녹이 안슬어 6. 마지막으로 문화 이용원이 오래되어서 불편한 점은 어떤게 있으신가요? 근데 몸에 배 가지고요 여기서 평생을 지내왔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어요. 그 하는 일이니까 맨날... 딴 것이 불편하죠. 딴 것이 나하고 맞지 않는 것이 불편한 거거든요. 내가 맞으면 불편한건 아니에요. 딴 시설에 가서 하면 불편한 거죠. 내가 평생을 여기서 다듬고 모든 것을 다 여기서 아침에 눈만 떨어지면 여기 와서 내가 집보다 더 여기서 오래 살은 건데 불편하면 안되죠. 도 이럭게 하던일이니까 계속하다보니 변경이 안되는거니까. 지금 사람들은 음.. 기술은 갔다 우숩게 생각해가지고 지멋대로 이게 이발이란게 원래가 일본사람한테 들어온거 아닙니까. 일본사람들한테 일본사람들은 뭐 하나 가지면 철두철미하게 완벽하게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래가지고 바뀌는걸 새로운사람은 바뀌죠, 물론 바뀌여야죠. 바뀌는 것도 좋지만 또 가지고 있는걸 써먹을줄 알아야 되는거거든요. 과거거를 좋은거는 써먹어야되더든요. 뭐 버리고 새로 들어온걸 자꾸 쓸려고 하면 맞지 않는거에요.내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지 그 사람이 몸 전체가 어울리는거랑 마찬가지고. 저는 직업이 이 일이기 때문에 방송을 보던가 사람을 길에서 보던가 머리를 먼저 보게되요. 직업관을 못 속이는 거거든요. 머리를 딱 보면 저 사람은 얼굴이 저렇게 깍아서 멍청이가 되버렸어. 얼굴이 바보가 되버리는거야. 자기가 바보를 만들고 다니는거야. 근데 저렇게 딱 저 사람은 머리가 어울려 이걸 먼저 보게되요. 패널들을 보면 머리 괴상하게 깍고 나오는 사람들, 왜 방송에 저렇게 하고 왔나 이런 생각이 드는거에요. 근데 그건 내 생각이고 그 사람들은 그게 좋으니까 하는건데 그걸 뭐라 할 수는 없는거지만 그 사람이 어울리고 안어울리고 내가 볼수있거든요. 근데 어울리지 않은걸 하게되면 좀 그 사람이 망가져 버려요.망가져도 좋다 이걸 어쩔수 없는거죠. 그걸 느끼고 살아요. 6-1. 언제까지 운영할 계획이신지요? 근데 그거는 저 자신도 앞날을 예측할 수는 없는거거든요. 바람이 있으면 건강해 가지고 하는 날까지 하고 끝냈으면 좋겠는데... 이걸 이렇게 해 놓고 어디 아파서 잠깐 문 열고 잠깐 또 하고 그러면 손님한테도 내가 죄 짓는거 같고 하는 날까지 내가 건강해 가지고 문 닫는날까지 열심히 하는게 내 바람인데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인간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니까. 저도 그걸 느끼는거거든요. 손님이 몰릴때는 확 몰려서 미안해 가지고 기다리는 손님, 미안해가지고 내 마음이 불편하듯이 마찬가지에요. 그건 마음대로 안되는게 그거니까 그건 어쩔수 없는거요. 손님이 몰려올때는 확 몰려오는데 한 손님 한 손님 들어오면 그 분도 좋고 나도 좋고 다 좋잖아요. 그게 바램이지만 그게 안되는걸. 그럼 순서를 따라가도 고수하고 살아야죠, 어쩔수없이. 불편한건 그때 그때 불편한거지 그건 딴 적응을 하면 불편하겠죠.
개요
동영상 제목의 개요 : 구분, 지역, 분야, 시기, 출처
구분 인물 지역 없음 분야 시민생활
시기 2018.08.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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